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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낙랑 토광묘 가평서 발굴

吾心竹--오심죽-- 2010. 9. 3. 13:33

고조선·낙랑 토광묘 가평서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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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 무렵 고조선·낙랑토기가 한데 매장된 ‘초기 낙랑

·고조선계 토광묘’가 북한강 중류인 경기도 가평지역에서 처음

으로 발굴됐다. 이는 고조선문화가 한반도 남부지역 고대국가 형

성에 직접적 영향을 준 고고학적 단서로 학계의 큰 관심을 모으

고 있다.

한림대박물관(관장 노혁진교수) 조사단은 6일 “경춘선 복선전철

화사업 제6공구지역인 북한강 중류 경기 가평군 가평읍 달전2리

일대를 발굴한 결과 낙랑·고조선계 토광묘에서 전형적인 고조선

토기인 적갈색 화분형(花盆形·심발형무문)토기와 낙랑계토기인

회색 연질타날문토기(배부른단지)가 극(戟)으로 불리는 가지창��비롯, 낫·대소 철부등 철기와 함께 출토됐다”고 밝혔다.

평안도·황해도등 서북한지역의 대표적인 낙랑·고조선계 토광묘

가 멸악산맥 이남에서 토기와 함께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고고

학계는 이 유적이 위만조선 멸망후 낙랑등 한군현에 살던 고조선

계 유민이 한강 상류를 거쳐 남하한 이동경로를 밝힐 결정적인

고고학적 단서로 주목하고 있다.

최몽룡(서울대)교수는 “가평 달전리유적은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에 기록된 위만조선의 존재를, 문헌이 아닌 고고학적 발

굴로 밝혀낸 남한 최초의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발굴을 주도한

박성희(한림대 연구원)박사는 “삼국사기·삼국유사·삼국지등

문헌에서 기록된 대로 한군현 지배하의 고조선계 유민이 한강상

류지역을 거쳐 남하했음을 입증하는 것은 물론, 삼한과 삼국시대

등 고대국가가 고조선유민과 고조선문화를 직접적으로 계승했다

는 유력한 단서”라고 밝혔다. 박박사는 “토광묘의 주인은 토착

세력이라기보다 남하하던 고조선계 유민들로, 토광묘 조성연대는

기원전 1세기 전반기∼중엽까지로 추정된다”며 그 근거로 “1

만평의 발굴현장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41기의 청동기시대 마을유

적이 발견된 데 비해 토광묘는 4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들었

다.

낙랑 고고학전공의 윤용구(인하대)교수는 “무덤구조나 유물이

놓인 상태등을 볼때 북한 서북쪽 지역에서 발굴돼온 초기 낙랑고

분과 흡사하다”고 밝혔다. 김성태 기전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은

“중국 평원지역의 주요무기인 가지창이 함께 출토돼, 이 토광묘

가 한족(漢族)등 낙랑 지배세력과 밀접히 연관됐을 가능성을 배

제할 수 없다”고 말해 낙랑군이 초기 한강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했

는지 여부를 두고 뜨거운 논란이 예상된다.

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