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捺文 土器

남한산성서 2-3세기 백제 구덩이유적 확인

吾心竹--오심죽-- 2010. 9. 3. 13:29

<남한산성서 2-3세기 백제 구덩이유적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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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이제까지 뚜렷한 백제 흔적을 찾을 수 없던 남한산성에서 백제토기가 다량 출토된데 이어 백제토기를 부장한 성격 미상의 구덩이 유적 8기가 발굴된 것으로 28일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경기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남한산성내 조선시대 인조 때 별궁인 남한행궁지(南漢行宮址)를 발굴중인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조사보고서 `남한행궁지'에서 드러났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실시된 행궁지 일대 2천700여 평에 대한 제5차 조사결과 한성시대 이른 시기에 속하는 구덩이 유적 8곳이 확인됐다.

이 구덩이들은 풍화암반층을 뚫고 내려간 원형 혹은 타원형으로, 일부에서는 적갈색을 띠는 연질(軟質) 혹은 경질(硬質) 타날문 토기류가 출토됐으며 지름은 대략 1-2.3m 정도로 짐작됐다.

구덩이의 기능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부분이 곡식이나 토기 등을 저장하기 위한 공간으로 추정됐으며 일부 1-2기는 주거지나 가마터 흔적으로 파악됐다.

한편 지난 2001년 4-5월에 실시된 제4차 조사에서는 이렇다 할 유적없이 한성시대 백제토기만이 다량 출토됐었다.

이들 구덩이 및 이 일대에서 확인된 백제 토기들은 한성도읍기 백제왕성으로 강력히 지목되고 있는 인근의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발굴 성과를 대비할 때 대체로 2-3세기대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화재위원인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백제 유적과 유물이 남한산성에서 확인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향후 이 유적이 풍납토성 등 인근 다른 백제유적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제시대 유적.유물 외에 통일신라시대 인화문 토기, 고려시대 주거시설과 유물 및 조선초기에서 근대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자기류가 확인됐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그 기능은 확실치 않으나 남한산성 일대가 최소한 백제시대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단절없이 지속적인 생활공간으로 점유되어 왔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사진있음>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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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유적 포문 연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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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고고학계와 고대사학계에서 남한산성을 둘러싼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가 이렇다 할 만한 백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남한산은 북한산과 더불어 건국 당시부터 백제에 가장 중요한 산이었음에도 말이다.

백제 건국 사정을 전하고 있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조는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 일행이 기원전 18년,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한강변에 인접한 강남 벌판에 도읍지를 정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이 때 선택된 도읍지의 지리적 환경에 대해 "북쪽에는 한수(漢水)가 띠처럼 두르고 있고, 동쪽으로는 높은 산을 의지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벌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에 막혔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산 부아악은 곧 북한산이며, 온조가 이곳에 올라 확정한 백제 도읍지 동쪽편 높은 산이 바로 남한산이었던 것이다.

이후 남한산은 백제가 475년 고구려 3만 대군에 왕도(王都) 한성(漢城)이 함락되어 개로왕이 참살되는 비극을 맞아 웅진(공주)으로 천도하기까지 약 500년 동안이나 지리적 위치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산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남한산성 일대에서 백제 소식은 감감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남한산성이 최근 '백제 갈증'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2001년 4-5월 한국토지박물관이 경기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남한행궁지(南漢行宮址)에서 실시한 제4차 조사에서 백제토기가 다량 출토됐던 것이다.

이는 남한산성에서 뚜렷한 백제 유물이 처음으로 확인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조사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적지않은 유물은 찾았으나 유적이 없었기 때문.

이에 조유전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장과 장경호 기전문화재연구원장 등은 백제 유적 확인을 위한 주변 일대에 대한 확대조사를 요청했다.

그 결과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실시된 제5차 조사에서 한성시대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음이 분명한 구덩이 유적 8곳을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 구덩이들은 풍화암반층을 뚫고 내려간 원형 혹은 타원형으로, 일부에서는 적갈색을 띠는 연질(軟質) 혹은 경질(硬質) 타날문(打捺文) 토기류가 출토됐다.

아직 그 정확한 용도는 미상이지만 이러한 구덩이는 최근 이천 설성산성을 비롯한 한성시대 백제 산성들에서 사례가 보고되기 시작했다.

조 전 소장은 "그동안 남한산성에서 백제 유물을 참으로 오랫동안 학수고대했는데 마침내 그러한 흔적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면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등 인근 한성시대 다른 백제 유적들과의 비교검토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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