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捺文 土器

기원전후 북한강유역 최대 주거유적

吾心竹--오심죽-- 2010. 9. 3. 13:31

기원전후 북한강유역 최대 주거유적



대성리 유원지서 呂ㆍ凸자형 20여기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춘선 복선전철 구간에 포함된 경기 가평군 외

서면 대성리 국민관광단지 일대에서 기원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대규모 주

거지가 확인됐다.

이곳에서는 한강유역 일대 중부지방에서 확인되고 있는 이 지역 특유의 평면 형

태인 凹자형, 혹은 凸자형 주거지가 집중적으로 드러났다.

대성리역사가 들어설 이 일대를 지난 3월1일 이후 발굴조사 중인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원장 장경호)은 북한강변을 따라 형성된 충적지인 이곳에서

凹ㆍ凸자형 등의 각종 주거지 28기와 관련 유적을 다수 확인했다고 16일 말했다.

주거지를 평면 형태로 구분했을 때, 凸자형 12기, 呂자형 5기 정도로 파악되고

있으며, 2기는 기둥 아래에 주춧돌을 설치한 고상식(高床式) 건물로 드러났다.

건물 몸체로 연결되는 입구에다가 口 자형 출입시설을 별도로 마련한 呂자형 주

거지는 규모가 대체로 길이 9-11m, 폭 4-7m에 이르고 있으며 바닥은 황갈색 점토를

다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화덕 시설이 발견됐다.

이 중 제8호로 명명한 주거지는 화재로 건물 몸체와 지붕을 형성했던 건축 부재

들인 도리와 보, 서까래가 고스란히 내려앉은 모습으로 출토됨으로써 당시 주거지

양식을 연구하는 데 요긴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이들 주거지에서는 기원전후 중부지방에서 고르게 출토되고 있는 양대 토기류인

중도식(中島式) 무늬없는 토기와 타날문(打捺文) 토기가 함께 확인됐다.

중도식 무문토기란 80년대 초반 춘천 중도 유적에서 많이 발굴된 토기라고 해서

얻은 명칭이지만, 실은 1964년 풍납토성 조사에서 처음 그 실체가 확인된 것으로 풍

납동식 무문토기가 더욱 정확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성리 유적에서는 또 기원전후 이 한반도 중부지역 다른 유적과는 매우 다르게

풍부한 철기류가 출토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철기류로는 괭이, 도끼, 낫, 칼, 끌, 철솥, 낚시바늘이 있으며, 특히 철 슬래그

와 철기 제작을 위한 도구로 추정되는 부재들이 출토됨으로써 이 일대에서 단야( 鍛

冶) 등의 철기 제작이 이뤄졌음을 추정케 하고 있다.

장경호 원장은 "발굴지역이 확대되면 유적은 대폭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현재까지 성과만으로도 대성리 유적은 북한강 유역에서 확인된 초기 삼국시대 마을

유적 중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사진있음>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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