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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축성 소요 토량은 220만t

吾心竹--오심죽-- 2010. 9. 3. 13:26

"풍납토성 축성 소요 토량은 220만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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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성도읍기(BC 18-AD 475년) 백제 왕성으로 지목되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을 쌓는데 투입된 흙 총량은 1.5t 트럭 13만대 분량인 226만6천t이라는 연구결과가 제출됐다.

한국고대 성곽 전문가인 대전 한밭대 심정보 교수는 동양고고학연구소(대표 이형구)가 2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주최한 '서울 풍납동 백제왕성연구 국제학술세미나'에 발표한 '풍납토성 축성기법에 관한 고찰'이란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심 교수에 따르면 총둘레 3.5㎞. 폭 43m. 높이 11m인 풍납토성 축성에 들어간 총 흙량은 139만㎥이며, 이를 t로 환산하면 226만6천t라고 말했다.

이같은 토량과 「통전」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구체적으로 풍납토성 전체를 쌓는데 투입된 전체 연인원은 445만명이 된다고 심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이어 이같은 계산과 중국 고대성곽 등과의 비교 검토를 근거로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왕성임에 틀림없으며, 그 축조시점은 기원전 1세기에 시작한 이후 475년 한성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약 2차례 정도 큰 규모의 증개축이 있었다고 결론내렸다.

이 자리서 신희권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사는 풍납토성 출토 각종 토기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하면서 굽다리잔.세발토기.흑색마연토기와 같은 새로운 기종의 토기가 출현하는 시점을 3세기 중.후반으로 보아 그 이후 토기를 '백제토기'로 분류하는 기존 통설을 부정했다.

신씨는 "새로운 양식의 토기 출현을 곧 국가단계로서의 '백제토기' 성립과 직결시킬 수 있다는 기존 주장은 공감할 수 있으나, 새로운 토기가 흔히 말하는 고배 등이 될 수 없음이 풍납토성 출토 토기 분석 결과 드러났다"면서 '백제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도입되는 기원전후와, 서북한 지역 유민이 대거 유입되는 2세기 중엽경을 각각 획기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백제토기'는 그 출발이 기원전후 타날문토기에서 찾을 수 있으며, 2세기 중엽에는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날 학술대회 기조강연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 발굴한 풍납토성 서쪽 성벽이 인공의 성벽이 아니라 자연제방이라는 학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이 자리에서는 바이윈샹(白雲翔)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부소장이 '사스' 여파로 직접 참석은 못한 채, 풍납토성 축조기술이 중국에서 유래했음을 주장하는 논문이 발표됐으며, 일본에서는 나카오 요시하루(中尾芳治) 교수가 오사카 고대 왕궁유적인 나니와노미야(難波宮)의 발견과 보존 정책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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