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태의 '조선역사 바로 잡기'에서 찾은 글입니다.
․․․조선시대의 이수(里數)는 태종 때 조정되었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이수에 맞추어 주척(周尺)으로 6척을 1보(步)로 삼고, 매 360보로 1리를 삼았으며, 3600보를 10리로 삼고, 매 30리를 1식(息)으로 정했다. 1식은 한 참(站)이라고도 한다. ‘한 참 걸었으니 쉬다 가자.’는 말에서의 한 참은 30리를 말한다. 1식도 비슷한 말인데, 어느 정도 걸었으니 한 번 쉬자는 뜻이 1식(息)인데, 역시 30리이다. 따라서 1식과 한 참은 같은 거리인 것이다. (p223)․․․
주척 세종 척도 20.81㎝ 경국대전 21.04㎝ 영조 척도 20.83㎝ 순조 척도 20.81㎝ 수표교 척도 20.81㎝ 창덕궁 후원 기둥 20.68㎝ 조선말 척도 20.48㎝
양전주척 세종 척도 21.79㎝ 경국대전 21.82㎝ 영조 척도 21.79㎝ 순조 척도 21.78㎝ 수표교 척도 21.79㎝
위 표에서 보듯이 주척의 길이에는 각각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가장 기초가 될 주척이 일정하지 않으니 조선시대 10리도 일정할 수가 없다. 세종 때의 양전주척을 참고하여 10를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1보의 길이 : 21.79㎝(주척 1자의 길이) × 6자 = 130.74㎝ 1리의 길이 : 130.74㎝(1보의 길이) × 360보 = 47,066㎝(470m) 10리의 길이 : 130.74㎝ × 3600보 = 470,664㎝(4706m≒4.7㎞) (p224)
위의 계산대로 한다면 조선시대 10리는 4.7㎞이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 기록되어 있는 서울 거리를 실제로 조사해보면 위 이수와는 차이가 생긴다. 김정호가 쓴 <대동지지>에 의하면 돈화문을 기점으로 동대문까지는 1489보이고, 종루에서 동대문까지는 1408보라고 적혀 있다. 이 거리를 현재의 지도상으로나 자동차 미터기로 재보면 대략 돈화문에서 동대문까지는 2390m이고, 종루에서 동대문까지는 2370m이다. 이를 역으로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돈화문에서 동대문까지 2390m(실제의 거리) ÷ 1489보(<대동지지>에 기록된 길이) = 1.6m(1보의 길이) 10리의 거리 : 1.6m(1보의 길이) × 3600보(조선시대 10리 보수) = 5.7㎞
종루에서 동대문까지 2370m(실제의 거리) ÷ 1408보(<대동지지>에 기록된 길이) = 1.68m(1보의 길이) 10리의 거리 : 1.68m(1보의 길이) × 3600보(조선시대 10리 보수) = 6.04㎞
위의 계산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시대 10리는 실제로 5.7㎞나 6.04㎞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미터법은 19세기 말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부터 사용했고, 조선시대에는 우리 나라 고유의 도량형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10리와 조선시대의 10리는 분명히 그 거리가 달랐다. 시골길의 10리는 아직도 조선시대의 풍습이 남아 4.7㎞나 5.7㎞, 또는 6.04㎞인 것이다. 지구의 둘레는 4만㎞인데, 이를 360도로 나누면 1도는 111.1㎞가 된다. 이를 조선시대 위도 1도를 200리라고 했으므로, 111.1㎞를 200리로 나누면 5.5㎞가 된다. 이와 같이 계산해도 조선시대 10리는 5.5㎞이다.(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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