伽 倻

다라국의 실체를 밝힌다

吾心竹--오심죽-- 2010. 2. 2. 13:24

이름: 강동욱
2005/12/11(일)
다라국의 실체를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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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과 경상대학교 박물관이 합천 옥전고분군 발굴 20주년 및 합천 박물관 개관 1주년을 맞이하여 오는 9일 오전10시 합천군 종합사회복지관 대강당에서 제1회 다라국사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지난 1985년 여름 경상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 과정에서 확인돼 1992년까지 5차례 발굴조사 되었던 옥전 고분군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및 연구 성과를 토대로 옥전 고분군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날 조영제 경상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는 ‘옥전고분군의 조사과정과 조사성과’라는 기조 발표를 통해 “다라국(多羅國)의 역사를 밝히는데 있어서 옥전 고분군이라는 매장유적만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서 많은 한계가 드러난다”며 “객관적인 역사상을 찾기 위해서 토성(土城)과 생산유적(生産遺蹟)을 조사하고, 나아가 바로 인근에 같은 시기일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고분유적(多羅里, 烏西里, 上浦里古墳群 등)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날 조영제 교수는 먼저 옥전 고분군의 발굴 성과로 ▲가야 고분의 변천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 ▲서부경남 가야고분 연구에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 ▲갑주자료가 다량으로 발견됨으로써 이 방면의 연구에 획기적인 공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을 말한다. 또 다양한 종류의 목곽묘와 개석의 미사용, 그리고 당시 최고의 수장층(왕)이 아니면 가질 수 없었던 많은 자료들을 통해 합천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던 다라국의 실상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 ▲ 5세기 4/4분기 대가야의 실상과 그를 둘러싼 한반도 남부의 역사변동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는 점 ▲옥전고분군 출토 자료를 같은 시기의 경주나, 공주, 부여지역 고분 출토 자료들과 비교해 봄으로써 지금까지 미지의 고대왕국으로 남아있는 가야의 참모습과 삼국시대 속에서의 가야의 위상을 밝히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로는 ▲우리나라 고분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던 용봉문황두대도(龍鳳文環頭大刀)가 7점이나 한꺼번에 발견됨으로써 지금까지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중국(위진남북조)과 주변제국 사이에 전개된 소위 책봉외교 속에서 중국에서 백제, 백제에서 다시 가야나 왜로 전달되었던 상징적인 유물이었다는 주장은 부정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이것이 어디서 만들어지고, 왜 옥전고분군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는지 하는 문제 ▲지금까지 경주의 왕릉과 고분에서만 14점 발견된 Roman-glass가 가야고분에서는 유일하게 M1호분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자료가 어떤 이유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육가야에도 포함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가야소국의 하나였던 다라국에 전달되었는가 하는 문제 ▲그다지 큰 평야도 없는 지역에서 가야의 소국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다라국의 고분에서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여주는 많은 자료들이 발견되었을 때 이러한 국력을 뒷 받침해 줄 수 있는 산업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문제 ▲마지막으로 갑주연구자들의 주장처럼 68호분의 삼각판혁철판갑(三角板革綴板甲)과 28호분의 횡신판 정결판갑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왜에서 만들어져서 옥전고분군에 유입된 것이라면, 이 판갑들이 유입되어 온 경로와 역사적 상황은 무엇이었는가는 점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