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古史

고조선의 아사달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吾心竹--오심죽-- 2010. 1. 31. 17:34

역사 게시판

   (2002-06-29 20:38:49, Hit : 795
 고조선의 아사달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고조선의 아사달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다  


삼국유사에는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 준이 위만의 공격을 받고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가서 마한을 세웠다고 한다. 위만은 (만리)장성을 나와 패수를 건너 기자조선에 갔다. 그리고 그 나라를 멸하고 사방 수천리의 큰 나라를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때 말하는 패수가 대동강이라면 패수를 건너간 위만이 북방민족을 방어하는 한나라의 외신이 될 수 있었을까? 또 위만이 거주하였다는 진한공지(秦漢空地) 상하장은 준왕이 거주하던 평양 남쪽인데 지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말인가?

1. 삼국유사의 기록

  1) 단군조선

삼국유사 紀異 권1 고조선 편을 보면 고조선에 대한 세가지 내용이 실려있다.

첫째, 위서에 이르기를 2천년전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하였으며 이는 요와 같은 시대였다.

둘째, 고기에 이르기를 하늘의 손자 단군왕검이 요와 같은 시대에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처음 조선이라 칭하였다. 이어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가 1,500년간 나라를 이어갔다.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자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나중에 아사달로 다시 돌아와 산신이 되었는데 수명이 1,908년 이었다.

셋째, 당나라 배구전에는 고구려는 본래 고죽국인데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고 한나라가 현도, 낙랑, 대방 3개 군을 설치하였는데  통전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있지만 4군을 설치한 것으로 나와있다.

  2) 위만조선

이어서 위만조선에 대한 기록이 이어지는데

첫째, 전한시대 조선에 대해 이르기를, 연나라가 진번조선을 공략하여 얻었다. 여기에 관리를 파견하여 성곽을 쌓았는데 진이 연을 멸하자 요동외곽에 속하게 되었다. 한나라가 일어나자 여기가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워 요동의 옛날 요새를 다시 수리하였는데 패수를 경계로 삼아 연나라에 속하게 하였다.

둘째, 연왕 노관이 흉노로 달아나자 위만은 무리 천여명을 거느리고 요새를 나와 동쪽으로 달아났다.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날 빈땅인 상하장에 거주하면서 진번조선에 속하였으며 옛 연나라와 제나라 망명인들의 왕이 되어 왕검성에 도읍하였다. 그는 이웃의 작은 지역을 침략하여 진번, 임둔 등이 복속하게 되고 사방 수천리에 달하는 세력을 구축했다.

셋째, 손자 우거 때에 한나라 양복과 순체 두 장수의 공격을 받고 패수서군이 이를 막아냈으나 내분이 일어나 공손수에게 멸망당하고 위만의 땅에 4군을 설치하였다.

  3) 마한

마한은 위만은 공격을 받은 조선왕 준이 궁인들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남쪽 한의 땅에 이르러 세운 나라이다.



2. 평양과 아사달은 같은 곳인가?

요즈음 교과서는 한사군 이야기는 빠지고 단군조선이 요동지역에서 건국하여 지금의 평양으로 이동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위 1,2,3을 자세히 보면 의문이 생긴다.

먼저 단군왕검은 위서에서는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했다고 하지만, 고기에는 평양에서 건국하여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가 다시 장당경으로 이동한 후 마지막에는 아사달로 돌아왔다고 되어 있다. 즉 최초로 건국한 평양과 아사달은 서로 다른 곳을 지칭한다.

둘째,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긴 준왕은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도망갔으며 그가 세운 나라가 마한이다. 지금의 평양에 고조선이 있었다면 준왕은 바다를 건너 도망을 갈 수가 없다. 지금 북한의 평양에 남아있는 성곽이나 유적들은 대부분 대동강 북쪽에 위치하였는데 만약 준왕이 위만을 공격을 받아 도망하려면 강을 건너 남쪽으로 도망해야 한다.

셋째, 1세기 경 고구려의 태조왕이 현도의 화려성을 공격할 때 동원한 군대 중에는 마한군대가 있다. 당시 고구려의 수도가 만주의 집안 근처라는 가정이 맞다면 마한은 고구려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마한이 전남북 지역에 있었다면 마한군대는 고구려 군과 연합작전을 위해 직선거리로 300km 이상 먼길을 달려와야 한다.

넷째, 위만이 달아난 방향은 남쪽이 아니라 동쪽이며 요동과 연에 가까이 있는(국경) 패수를 건너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평양이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운 아사달이라면 위만은 고조선보다 한나라와 더 먼 곳에 자리잡은 것이 되고 준왕을 남쪽에서 공격하는 상태가 되며 따라서 준왕은 북쪽으로 도망가야 이치에 맞는다.

다섯째, 한나라와 싸운 위만조선의 군대에 패수상군, 패수서군이 있는데 그렇다면 패수는 남북으로 흐르는 강이된다. 그렇게 되어야 패수동군, 패수서군, 패수상군, 패수하군이 성립된다. 그러나 지금의 대동강은 평양에서 볼때 동서로 흐른다. 즉 패수북군, 패수남군이 성립되는 지형이다.

여섯째,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연나라는 지금이 북경지역에 있었다. 연의 장성도 이 지역에서 발굴된다. 그렇다면 연과 진번조선의 경계인 패수는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대동강이 될 수가 없다.

일곱째, 위만은 사방 수천리에 이르는 나라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의 평양에서는 사방 수천리가 되는 나라를 만들 공간이 부족하다. 또 주변 소국들이 한나라로 가는 것을 막아 무제가 공격하였다고 하는데 만리장성의 입구 가까운 곳에 있어야 그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