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백제 첫 도읍지 "장수산성說" 제기

吾心竹--오심죽-- 2009. 3. 31. 16:23

【학술】 백제 첫 도읍지 "장수산성說" 제기
-정영래교수 주장…하남위례성說 부인 "국경도 대동강 유역"-

백제의 초기 도읍지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한강 이남의 위례성이 아니라황해도 재령군(현 황해북도 신원군) 장수산성(長壽山城)일대라는 학설이 처음으로 제기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영래 원광대교수는 지난 11일 마한역사문화연구회(이사장 유인학)주최세미나에서 발표한 「마한의 종언과 백제의 흥기」라는 논문을 통해 이같이주장했다.

전교수에 따르면 장수산성 일대는 한(漢)사군의 하나였던 대방군의 영토로서 조선시대 이후 재령(載寧)이라 불렸다. 백제가 이곳을 첫 도읍지로 삼았다는 전교수의 대방고지(帶方故地)설은 하남위례성설을 부인하는 동시에당시 백제의 영토가 한강이남이 아니라 멀리 대동강 유역에까지 미쳤음을주장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그동안 널리 통용된 하남위례성설은 온조가 위례성에 정착했다는 건국설화에 바탕을 둔 것. 하남위례성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서울 강동구 몽촌토성이라는 설(김원룡)과 경기 하남시 춘궁동과 남한산성 일대라는 설(이병도), 충남 천안시 직산 부근이라고 보는 설(임효재) 등 다양하다.

전교수는 이들 학설 모두가 단순히 건국설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비판한 뒤 백제가 고대국가로 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교수에 따르면 백제는 313년 대방군이 요서지방으로 물러난 뒤 고구려의 남진세력과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정면대결하게 됐다.

백제는 이때 주위세력을 규합하면서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졌는데 당시의 근거지가 바로 장수산성 일대의 대방고지였다. 전교수는 이같은 학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근거를 들고 있다.

「삼국사기」의 「百濟 東明之後 初立國于帶方故地(백제는 동명왕의 후손으로 대방고지에서 처음 일어났다)」라는 구절과 백제의 국경이 「北至浿河 南限熊川(북으로 대동강에 이르고 남으로 웅천에 한정됐다)」이라고 쓴대목이 그 예다.

전교수는 삼국사기 근초고왕편에 백제왕이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살해한뒤 도읍을 한산(漢山)으로 옮겼다는 대목도 재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산은 현재의 서울인 한성이 아니라 재령의 옛이름인 한성을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또 고구려가 재령을 점령한 뒤 남평양이라 부른 것도 재령이 적국의 수도였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는 고구려가 후에 한성을 점령한뒤 이를 남평양이라 부른데서도 잘 드러난다.

80년대 북한에서 발굴조사한 재령의 장수산성은 우리나라 고대산성 중에서 최대 규모로 둘레가 10.5㎞나 된다. 산성 남쪽에는 남북 4.5㎞ 동서 4㎞나 되는 도시건설의 흔적도 남아있다. 전교수는 『왕도로서 손색이 없다』며 『현지조사를 통해 대방고지설을 입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윤승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