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아! 풍납토성

吾心竹--오심죽-- 2009. 3. 31. 16:21

아! 풍납토성
6000년전 신석기주거터인 암사동 선사유적이 알려진 것은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로 빗살무늬토기가 노출된 때다. 일본학자가 지표채집만 했고 60년대중반 야구연습장을 만들다가 빗살문토기파편이 쏟아져 나올때까지 방치됐었다. 70년대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조사, 80년대 서울대학교의 추가조사를 거쳐 88서울올림픽때 유구전시관과 움집터가 복원되고 사적으로 지정됐다. 첫 파편이 노출된지 60여년만이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안에 있는 몽촌토성은 백제초기사연구에 더없이귀중한 사적이다. 몽촌토성주변이 88서울올림픽 체육시설부지가 됨으로써본격적인 발굴이 됐지만 올림픽 때문에 서둔 탓에 다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된 것은 아이러니다. 올림픽우선의 거센 건설공사를 학계가 자제시켜 1500년을 버텨온 백제토성을 지금의 형태로나마 건진 것도 불행중 다행이다.

역사속에 올림픽공원과 회관이 오래 남을 것인지, 몽촌토성에 배어있는백제의 숨결이 뜨거울 것인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훼손된 문화유산은 되살릴 수 없고 선사시대의 움집터 하나가 고층 시멘트빌딩 수십채 수백채를 넘는 무게로 먼훗날까지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몽촌토성 인근의 풍납토성안 아파트건설현장에서 백제초기 집터 7기와기와 어망추등 100여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건설회사가 시굴조사도 없이 파다가 백제토기가 출토되자 허겁지겁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굴을 맡은 곳이다. 하남 위례성일 가능성이 높은 풍납토성은 둘레 4㎞중 겨우 700∼800m만복원됐을 뿐 주택과 상가에 밀려 2000년전의 모습은 벌써 잃었다. 사정하다시피 해 캐낸 유적을 다른 곳으로 떠 옮겨야 한다니 딱하다.

60년대중반 고고학계가 문화재 매장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성벽만 사적으로 지정하고 내부는 방치한 당국의 무관심이 오늘의 사태를 낳은 것이다.드러난 것이 이 정도니 건물밑에 이미 깔렸거나 파헤쳐져 흔적없이 사라진문화유산이 얼마나 될지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다.

발행일97년 0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