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처음 나라를 세운 초기 도읍지는 어디인가. 이 문제는 아직 명쾌하
게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다만 시조 온조가 기원전(BC)18년 하남위례
성(河南慰禮城)에서 건국했다는 기록만은 전해내려 온다. 그러나 하남위례성
자리는 꼬집어 밝혀내지는 못했다.
학자에 따라 서울 강동구와 경기도 광주 일대,또는 충남 천안시 직산 일대
를 백제 초기 도읍지로 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천안지역에서 진행한 유적발굴에서 백제 초기의 유물이 속속
나오고 있다.특히 서울대 고고학발굴조사단이 천안시 북면 운용리 위례산성(
해발 825m)에서 유물과 함께 거둔 시료(숯)의 연대측정가(年代測定價)는 백
제 건국시기에 접근했다.
서울대가 일본 교토산업대에 맡겨 실시한 시료의 과학적 연대측정에서 오
차는 약간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2010년전 숯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서울대팀이 발굴한 위례산성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하남위례성'의 `위례
성'과 일치한다. 그래서 일찍 `삼국유사'에 등장했거니와 이 사서는 도읍지
위례성은 사천(蛇川)인데 지금의 직산(稷山)이라고 했다.이밖에 `고려사' 지
리지,`세종실록' 직산조,`대록지',`동사강목',`둥국여지승람'에도 같은 내용
을 적어놓았다,또 여러 고지도 역시 천안(직산)땅에 위례성을 그려넣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는 백승명씨를 주축으로 한 천안지역 향토사학자들이
서울대 규장각에서 위례성을 뚜렷이 표시한 고지도를 찾아냈다. 1735년에 간
행한 `해동지도'인데,당시 직산현 일대를 상세히 그렸다.또 이들 향토사학자
들은 위례산성에서 직선으로 3km쯤 떨어진 천안시 입장면 도림리 뒷산에서
대형 돌무지무덤 2기를 발견했다.
3단으로 축조한 이들 돌무지무덤은 하단의 장축이 9m나 되었다. 이와 더불
어 위례산성 기슭에서 가로 1m,세로 80cm의 갈돌 6점을 확인했다.
이들 향토사학자들이 새로 찾은 돌무지무덤은 규모가 비교적 큰 것으로 미
루어 백제초기 한 세력집단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천안시 직산읍 안
국리 한 과수원에서 발견한 토성 흔적은 주목을 끌었다. 왜냐하면 평지성(平
地城)이라는 점에서 백제초기 도읍지의 거성(居城)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 직산읍 안국리 토성이 거성일 경우 북면 용운리 위례산성은 비상시 사
용한 배후성이라는 결론이 나온다.서울대는 지난해 이 산성에서 백제 특유의
삼발이토기의 철제무기류,토마와 철마 따위의 유골을 수습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보아 직산 일대를 하남위례성으로 지목한 향토사학자들은
서울 강동구 일대를 하남 위례성으로 본 종래의 학설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
는 `삼국사기'를 그릇 해석한 데서 비롯한 오류라는 것이다. 북으로 한수(漢
水)가 띠를 둘렀다는 `북대한수(北帶漢水)'의 `한수'는 한강이 아니고 오늘
의 안성천이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는 일본인들이 안성천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이전 안성천 본래의 이
름이 `한내' 또는 `한천(漢川)'이었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그래서 경기도 평택시 오산출장소 뒷산인 부악산(負岳山)을 `삼국사기'의
부아산(負兒山)으로 보면 지세가 꼭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동쪽에 높은 산
이 자리 잡았다는 `동거고악(東據高岳)'으로 안성의 칠현산,천안의 성거산과
위례산 등 12개 산을 꼽았다.
남쪽으로 넓은 들이 보인다는 `남망옥택(南望沃澤)'은 평택평야를 말하는
것이고, 서쪽은 바다로 막혔다는 `서조대해(西阻大海)'는 바로 아산만이라는
주장이다.
어떻든 이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녔다. 고고학 발굴과 일련의
유적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고대사학계가 얼마만큼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천안=黃圭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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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97년 09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