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묻혀있던 ‘한성 백제’를 만난다

吾心竹--오심죽-- 2009. 3. 28. 17:36

묻혀있던 ‘한성 백제’를 만난다

 

많은 사람들은 백제 하면 공주와 부여를 떠올릴 것이다. 어떤 이는 공주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금제 장식 등의 유물을 보며 백제의 영화를 생각하고 어떤 이는 부여 낙화암 삼천궁녀의 전설을 통해 왕국의 안타까운 종말을 되새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제의 가장 오랜 수도는 서울이었다. 백제가 서울에 도읍을 정한 한성 시기는 492년(BC 18~AD 475). 공주 도읍기(475~538)나 부여 시기(538~660)를 능가한다. 그럼에도 한성백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기록이 엉성하고 남아있는 문화유적도 적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백제 도읍지 ‘하남위례성’을 놓고 학계가 오랫동안 설왕설래했던 것은 한성백제에 대한 연구 수준을 잘 보여준다. 천안 직산, 하남 춘궁리, 풍납토성, 몽촌토성 등으로 분분했던 백제 도읍지가 풍납토성으로 굳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97년 토성 내부에서 백제 주거지가 발굴되고 2년 뒤 ‘여’(呂)자형 건물터, ‘대부’(大夫)명 토기, 전돌·기와·말머리뼈 등이 잇따라 출토되면서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가장 유력한 왕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벽 너비 43m에 달하는 거대한 토성도 왕성임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한성 시기 백제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80년대 몽촌토성 발굴과 90년대 후반 풍납토성 발굴 성과를 통해 초기 백제인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전시관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위치한 몽촌역사관. 몽촌토성과 석촌동, 가락동 고분 등에서 발굴된 유물을 보존·전시하기 위해 14년 전 개관한 몽촌역사관이 최근 전시장을 새로 꾸미고 풍납토성 출토 유물 등을 전시, 새로운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특히 오리엔테이션룸·영상관을 마련, 한성백제 시기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영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몽촌역사관은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초기 백제시대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 1992년 설립됐다. 몽촌토성 한쪽에 자리잡은 역사관은 240평의 전시장에 암사동의 선사시대 주거지 모형과 석촌총 고분 모형 등 유물 230여점을 전시해 서울에서 백제 유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전시유물 대부분이 모조품이거나 모형이어서 박물관이라기보다는 학습체험장의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게다가 90년대 후반 이후 출토된 풍납토성 유물을 전시하지 못해 백제의 ‘반쪽 역사’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여야 했다.

최근 리모델링을 거쳐 새로 선보인 몽촌역사관은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유물을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으로부터 대여, 박물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또 아차산 보루·구의동 유적에서 발굴된 고구려 유물, 이성산성 출토 신라 유물 등을 함께 전시해 삼국시대의 유물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40여점의 풍납토성 유물들. 전돌, 수막새, 토관, 십각토제초석 등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몽촌역사관의 김기섭 학예사는 “유물의 질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뒤질지 몰라도 한성백제 시기의 유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고 말했다.

풍납토성 영어체험 마을 내 서울·중부권 문화유산조사단 건물 1층에 문을 연 풍납토성 유물전시실도 한성백제 500년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97년 이후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토기류와 기와류 100여점을 진열하고 있는 전시관은 그동안 언론 보도 등으로만 알려진 1,600년 전 한성백제기의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높이 1m는 됨직한 커다란 옹기, 초화문·수지문·원문 등 다양한 문양의 백제와당, 토관(土管), 건물 기둥을 받쳤던 토제초석(土製礎石), 부뚜막 장식 등 진귀한 유물을 통해 백제인의 높은 문화수준을 가늠케 한다. 다만 공간이 적어 많은 유물이 전시되지 못한 게 아쉽다.

서울·중부권 문화유산조사단 윤광진 단장은 “백제 왕성인 풍납토성 발굴 조사 성과를 알리고 토성 보존 계획의 필요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전시실을 마련했다”며 “고고학 관련 연구소 및 박물관 관계자들이 주로 찾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시장은 몽촌역사관과 풍납토성 유물전시실 두 곳뿐이다. 그러나 두 곳 모두 전시 유물이 적어 본격적인 박물관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서울역사박물관 연갑수 학예연구부장은 “서울시는 2008년 완공 목표로 한성백제 시기의 유물을 한데 모은 한성백제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라며 “현재 올림픽 공원 내에 부지를 확보했으며 올 하반기쯤 설계 공모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