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백제 지방세력 독자성 확보 단서

吾心竹--오심죽-- 2009. 3. 28. 17:34

“백제 지방세력 독자성 확보 단서”



최근 10년간 서해안 일대에서는 분구묘 출토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주 충북대학교에서 열린 제49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서 고고학 분과의 주제가 ‘분구묘· 분구식 고분의 신자료와 백제’로 정해진 것도 이 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이 행사는 지금까지 그 성격을 놓고 분분한 학설만 있었던 분구묘 연구를 중간점검 하는 자리로 충남역사문화원 이훈 문화재센터장의 ‘서산 부장리고분과 분구묘’, 이남석 공주대 교수와 이현숙 공주박물관 학예연구사의 ‘서산 해미기지리 분구묘’ 등의 발표가 있었다. 특히 이 두 유적은 군집을 이루며 완전한 형태의 분구와 풍부한 부장유물이 발견돼 분구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또 분구묘는 그 분포범위가 영산강에서 전북 서남부지역, 충남까지 확대됐고 축조 시기 또한 백제 중엽인 5세기 해당, 백제의 지방통치 형태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편집자註>

◇조성방식 새롭게 정립해야

이훈 센터장은 “서산 부장리고분은 금동관모를 비롯, 금동신, 철제초도, 환두대도 등 다채로운 유물이 출토돼 주목을 끌었다”고 전제한 뒤 “한 분구 내에 매장주체시설이 하나에서 많게는 10개까지 들어있어 분구 조성방식과 변천과정을 보다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특히 부장리 고분은 일반적인 분구묘와는 달리 부장리 주피장자의 경우, 매장시설을 마련한 후 그 곳에 흙을 쌓은 형태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이같은 형태가 부장리 뿐 아니라 가락동 2호분 등 경기지역에서도 발견되는 분구묘의 공통된 특징이라고 지적, 종래에 사용해왔던 분구묘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제시된 용어를 종합 검토한 뒤 적합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센터장은 서산에 위치하는 부장리유적은 백제의 지방 통치제도와 관련돼 이해해야 하며 금동관모, 식리 등 중요한 유물이 출토된 이상 이들 세력이 백제 중앙세력에 대해 어느 정도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분구묘 이해 폭 넓히는데 기여

이남석 교수는 “서산 해미기지리 분구묘 조사과정에서 확인된 무덤 조성 방법은 우선 기존의 지표면을 다진 뒤 조성됐고 매장 주체부는 토광 목관묘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매장부의 조성이 표면보다 깊은 경우도 있지만 흔적이 분명치 않은 것도 많고 선행 유적이 존재할 경우 토층자체가 불안정한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또 “매장주체부는 정형화된 방형을 이루기보다 모서리 부분이 각이 지지 않을 정도로 조성한 뒤 목관을 안치하고 흙을 쌓아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분구묘는 각지에서 그 사례가 증가하고 그 성격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가 이루어졌지만 기지리 유적은 분구묘 매장시설 등 조성상황에 보다 접근할 수 있는 자료로 여겨진다”며 “단 유적의 잔존상황이 불량하고, 조사상의 한계도 적지 않지만 기지리 유적의 조사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는 분구묘의 이해 폭을 넓히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분구묘란>

흙을 쌓아 분구를 만들고 매장주체시설을 안치한 묘제다. 선 분구조성, 후 매장시설의 순서로 만들어진 것으로 매장시설이 분구 속, 즉 지상에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흙을 파 매장한 뒤 그 곳에 봉분을 쌓는 현재의 묘제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지배계층의 묘제는 각기 다르며 일반적으로 분구묘 축조 집단을 마한과 연관시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분구묘는 일본 야요이시대의 보편적 묘제로 알려져 있다. 긴기지방 야요이 전기 방형주구묘는 한반도 서해안 일대와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호 관련성에 대한 연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전일보--南尙賢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