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풍납토성 경당지구 오수전은 후한에서 제작

吾心竹--오심죽-- 2009. 3. 28. 17:32

연합뉴스

"풍납토성 경당지구 오수전은 후한에서 제작"

기사입력 2006-07-16 16:50 |최종수정 2006-07-16 16:50
풍납토성 경당지구 전경
풍납토성 경당지구 전경
한신대박물관 발굴보고서 '풍납토성Ⅵ'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성도읍기 백제 왕성으로 지목되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의 '경당지구' 중 101호 유구(遺構) 출토 중국제 동전인 오수전(五銖錢)은 동전 크기라든가 '오수'(五銖)라는 글자로 보아, 후한(後漢. AD 25-220))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제출됐다.

이는 축조시기를 두고 논란이 뜨거운 풍납토성이 과연 언제쯤 만들어졌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경당지구 발굴조사단인 한신대박물관은 그 발굴성과 중 일부를 정리한 발굴보고서 '풍납토성Ⅵ'를 최근 발간했다. 풍납토성 관련 발굴보고서로는 6번째인 이번 보고서는 경당지구로는 '9호 구덩이' 유적에 이은 두번째 보고서로서, 101호 유구라고 명명한 유적 발굴성과를 정리했다.

전체 2천300평 가량 되는 경당지구 중 서북쪽에 위치한 101호 유구는 지하 문화층 중에서는 중간층의 아래층 정도에서 확인됐으며, 하늘에서 내려다 본 평면형태는 마름모와 오각형의 중간 정도인 부정형이다. 크기는 길이 9.6m, 최대폭 7.1m, 최대깊이 1.25m 가량이다.

풍납토성 출토 오수전
풍납토성 출토 오수전
이곳에서는 500개체 가량 되는 막대한 백제토기, '直'(직)이라는 글자를 새긴 전돌(벽돌) 등과 함께 오수전이라고 하는 중국제 동전 1점이 출토됐다. 조선시대 엽전처럼 바깥은 둥글고 가운데는 사각형으로 뚫은 이 동전은 일부가 결실되긴 했으나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오수'(五銖)라는 글자 또한 선명하다.

특히 '銖'라는 글자의 '朱'(주)자는 약간 각이 져 있으며, '五'(오)라는 글자는 약간 뻗은 채 X자형을 이루고 있다. 직경은 2.45-2.55㎝, 내측 방형은 1.0㎝, 두께는 0.7-1.0㎝였다.

오수전은 한(漢)나라 때 처음 주조되기 시작해 중국에서는 수(隋)나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주조되어 사용됐으며, 더욱이 시기별로 형태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번 경당지구 101호 출토품의 경우 권오영 한신대 교수는 "銖의 朱자가 위는 모나게 꺾이고 아래는 둥글게 꺾이는 이른바 '상절하곡주'(上折下曲朱)여서 동한대(東漢代=후한시대) 자형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유송대(劉宋代) 이후 주조된 오수전에서도 이와 유사한 자형을 보이는 예가 있지만 (그것들은) 직경이 대개 1.8-2.1㎝, 심지어는 1.6-1.7㎝ 정도의 소형인데 비해 이것은 2.45-2.55㎝로 대형이므로 직접 연결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따라서 "(서진과 동진의) 양진대(兩晉代)에 오수전 주조가 뜸했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할 때 이 유물은 동한의 오수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후한시대 동전이 출토되었다고 해서, 그 유적 연대 또한 이 시대로 보아야 한다는 데는 반대했다. 권 교수는 "다만 이는 이 유물의 시간적 상한이 될 뿐이고 백제에 유입되어 101호에 묻히기까지의 과정과 기간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라면서, 101호 유적 연대를 "3세기 후반경"으로 추정했다.

풍납토성 경당지구 백제 대옹
풍납토성 경당지구 백제 대옹
그것을 뒷받침하는 다른 근거로서 권 교수는 고배와 삼족기, 보주형 꼭지가 달린 뚜껑을 비롯한 이른바 '전형적인 한성기 백제토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 대신, 그 이전 소위 '원삼국' 단계에 속하는 중도식 경질무문토기가 잔존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11세기 중반에 고려에서 상감청자가 제작되었다고 해서 이를 고비로 왕조가 바뀐 것이 아니듯이, 나아가 같은 논리로 상감청자가 없던 그 이전 시대가 고려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왕조였다고 할 수 없듯이, 학계의 이른바 '원삼국토기'와 '한성백제토기'라는 도식이 학계의 자의적인 구별일 뿐인 데다, 원삼국토기→한성백제 토기의 이행시기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풍납토성의 각종 유적과 유물 연대는 여전히 논쟁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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