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풍납토성이 대방군 치소?"

吾心竹--오심죽-- 2009. 3. 28. 17:22

 

"풍납토성이 대방군 치소?"

日 학자ㆍ새역사 이어 공동교재도 버젓이 주장

풍납토성 백제王京 발견 10주년 학술대회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폭 43m, 최소 높이 11m에 총 둘레 3.7㎞에 이르는 거대 평지토성인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은 1997년 이후 활발한 발굴조사 결과, 축조시기는 기원전후 무렵으로 볼 수 있으며, 이곳이 바로 온조가 백제의 터전을 닦은 하남위례성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굳혀 가고 있다.

이런 성과에 곤혹스럽기는 국내 고대사학계나 일본학계 모두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종래 그들이 주장하고 설파한 고대사상(像)에 의하면, 백제가 이만한 규모의 대형 성곽을 축조할 수 있는 시기는 적어도 3세기 중ㆍ후반 이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이전 시기 백제의 역사를 인류학에서 말하는 본격적인 '국가'(state) 이전 단계에 속하는 사회라고 해서 '원삼국'(原三國)이니, '원시국가' 시대에 포함시킨 까닭이 이에서 말미암는다.

한데 전체 출토유물 중 중국, 혹은 중국계 유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극히 낮은 풍납토성이 백제유적이 아니라, 중국이 설치한 대방군(帶方郡) 치소(治所)라는 주장이 일본에서 연이어 제기되는가 하면, 심지어는 일본우익 계열의 역사책 '새역사'에 대항하기 위해 한ㆍ일 두 나라 역사학 종사자들이 그것을 극복하겠다며 개발한 역사공동교재에서도 이런 주장이 버젓이 실려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풍납토성 백제왕성 유적 발견 10주년을 기념해, 발견 당사자인 선문대 이형구 교수가 사재를 털어 오는 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주최하는 관련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이 교수는 풍납토성을 백제사에서 떼어내 중국 군현의 역사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음을 주목한다.

5일 언론에 미리 배포된 이 세미나 발표문에서 이 교수는 국내에는 대표적인 지한파 고고학자로 알려진 규슈대학(九州大學) 니시타니 다다시(西谷正) 명예교수가 이런 견해를 대표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 의하면 니시타니 교수는 낙랑군을 떼어내 대수(帶水) 남쪽에 대방군을 설치했다는 중국기록을 주목하면서, "대수를 한강으로 간주하고 대방군을 서울 부근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 서울특별시 강동구(현 송파구)에 남아있는 풍납토성이 주목된다"는 글을 발표했다.

니시타니 교수가 풍납토성을 대방군 치소로 단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주목한 이 교수는 이와 같은 '서울 대방군 치소설'이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발행한 2006년판 '새로 쓰는 역사교과서'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아가 이 교수는 이런 주장들이 학문적 검증도 없이 역으로 한국에 수입되어 통용되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라면서, 그 단적인 사례로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가 공동 집필해 2006년 출간한 '화해와 공존을 위한 첫걸음-마주보는 한일사Ⅰ'을 들었다.

이 공동역사교재 중 '3세기의 동아시아'라는 항목에는 황해도ㆍ경기도ㆍ충청남도 북부지방까지를 대방군 강역으로 표시한 지도를 싣고 있다.

이형구 교수는 이런 주장들이 결국은 "백제 건국연대를 서기전 18년으로 잡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은 물론, 초기 백제사를 부정하고 그 자리에다가 중국역사를 대입하려는 식민사학의 잔재"라고 맹비난했다.

나아가 서기 300년 이전 초기 신라ㆍ백제 역사를 부정하면서 고고학자 김원룡이 1972년 무렵에 제시한 '원삼국'이란 용어와 개념 또한, 일본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 교수가 같은 해에 출간한 '고대조선(古代朝鮮)'에서 제시한 '원시국가'론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비판했다.

kind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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