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백제가 한성(漢城) "3-4세기 백제에 이미 차문화 도입"

吾心竹--오심죽-- 2009. 3. 28. 17:19

"3-4세기 백제에 이미 차문화 도입"

기사입력 2007-06-10 08:00 |최종수정 2007-06-10 11:04

공주 수촌리 유적 계수호
공주 수촌리 유적 계수호

권오영 교수 "다기용 중국 도자기가 증명"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백제가 한성(漢城)에 도읍하던 시기인 3-4세기 무렵에 지배층을 중심으로 이미 차(茶)를 즐기고 있었다는 파격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한반도 차문화 도입 및 확산을 막연히 불교의 그것과 연결시키던 견해보다 상당히 구체적이며, 더구나 고고학 발굴을 통해 드러난 중국제 도자기를 근거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책임자를 지낸 한신대 국사학과 권오영 교수는 8일 선문대 이형구 교수가 주최한 '풍납토성 내 백제왕경 유적 발견 1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 제출한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조사의 과거와 미래'라는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권 교수는 이 글에서 "지금까지 백제유적에서 발굴된 중국제 수입 도자기는 100점 이상을 헤아린다"면서 "이 중 일부는 다기(茶器)가 분명하며, 그런 다기용 도자기는 이미 3-4세기 단계의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이 무렵에 차 문화가 도입돼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삼국시대 유적, 특히 백제문화권에서 중국 도자기는 막대한 양이 출토되었지만 지금까지 우리 학계에서는 그런 도자기를 과연 백제인들은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는 그다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신기한 외래문물'을 백제인들이 선호한 증거라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에 의하면 중국제 수입도자기 중 대표적인 다기로 닭머리 주둥이를 단 이른바 계수호(鷄首壺)라는 주전자형 도자기와 '완'이라 일컫는 사발형 청자를 들었다.

권 교수는 "이들 도자기는 중국에서는 차를 끓여 마시는 다기였다"면서 "이런 다기를 수입한 백제인들이 그런 본래의 기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완상용'(감상용)으로만 집안에 모셔뒀을 까닭이 없으며, 당연히 다기로 사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풍납토성 출토유물 중에서도 중국 서진(西晉. 265-316) 시대 계수호와 완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가 차문화를 접한 것은 3세기 대로 올라갈 수 있다"면서 "이를 통해 우리는 이 무렵에 이미 백제지배층을 중심으로 차를 애호하는 흐름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