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한성 백제시대 거대 지하고분 발굴

吾心竹--오심죽-- 2009. 3. 28. 17:08

연합뉴스

한성 백제시대 거대 지하고분 발굴(종합 )


도굴범의 `흔적'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205곳서 생활유적.고분

(연기=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하 궁전을 연상케 하는 한성도읍기 백제시대의 거대한 지하고분이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서 발굴됐다.

이 무덤은 3m 이상 되는 깊이까지 땅을 방형으로 파내려 간 다음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인 묘광(墓壙)을 한 변이 5m에 이르는 길이로 조성했으며, 외부에서 무덤방으로 향하는 무덤길 또한 길이가 무려 8m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고고환경연구소(소장 이흥종)는 지난 4월30일부터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 포함된 충남 연기군 남면 송원리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시대 이후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각종 생활유적과 고분 등을 205곳에서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거대 백제 고분 발굴 현장

이 중 해발고도 72m인 송원리 송계동 마을 북쪽 야산 정상의 평탄지역에서 확인한 백제시대 고분 KM-016호분은 외부에서 묘광으로 통하는 길을 별도로 마련한 이른바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으로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가장 큰 규모로 밝혀졌다.

더구나 이 무덤은 묘광 전체를 지하에 마련한 첫 번째 백제시대 고분으로 기록됐다.

이 무덤은 네 변 길이가 각각 4.74m이며 최대 3.48m까지 땅을 파 묘광을 조성하고 네 벽면에 깬돌을 촘촘히 쌓되 모서리 각을 죽이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이른바 '궁륭형(穹隆形) 석실'로 축조됐다. 무덤길은 총 8.13m에 달한다.

책임조사원인 김무중 연구실장은 "무덤방은 흡사 낙랑 전축분(벽돌무덤)인 평양 석암리 99호분을 연상케 한다"면서 "아직 무덤 내부가 제대로 조사되지는 않았으나 광구장경호(아가리가 넓은 목 긴 항아리)나 삼족기(세발토기), 개배(뚜껑접시) 같은 토기 유물로 보아 한성도읍기 중 말기에 속하는 고분임이 확실하며, 나아가 그 시대에 이 지역에 대단한 지역적 기반을 갖춘 세력가가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덤이 축조된 시기가 한성도읍기에 해당할 것이라는 조사단 의견에 대해 지도위원들도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백제고분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토기

공주대 이남석 교수는 "2003년 발굴된 공주 수촌리 유적 백제고분군은 아무리 늦춰 잡아도 5세기 중반 이후로 내려오지 않는데 비해, 이번 송원리 유적 횡혈식 석실분은 그보다는 시대가 늦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5세기 중반 이후에서 475년 한성백제 멸망기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충남대 박순발 교수는 "이처럼 큰 규모의 고분이 축조됐다는 것은 한성도읍기에 이 지역을 거점으로 삼는 세력가가 존재했었다는 의미가 된다"면서 "공주 수촌리나 익산 입점리 유적과 같은 한성도읍기 대형 백제고분 또한 같은 맥락에서 역사적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백제시대 고분만 석실분 6기, 석곽묘 19기, 토광묘 16기, 주구토광묘 9기, 옹관묘 5기 등이 확인됨으로써 이 지역이 공주나 부여 못지 않은 대규모 백제시대 유적지일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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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중심 복합도시 백제고분 '보존'될 듯>

기사입력 2007-11-09 17:38 |최종수정 2007-11-09 18:10

행정도시 예정지서 발굴된 거대한 백제 고분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의견 '보존'쪽으로 가닥

(연기=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 포함된 충남 연기군 남면 송원리의 유적이 9일 학계와 일반에 공식 데뷔했다.

발굴조사기관인 한국고고환경연구소가 공개한 유적 중에서도 해발 72m인 송원리 마을 북쪽 야산의 정상 평탄지역 한복판을 차지한 백제시대 고분 KM-016호분이 단연 관심을 끌었다. 축조시기와 규모, 무덤 축조방식이 지금까지 알려진 백제사 상식과는 들어맞지 않는 대목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백제사를 전공한 김길식 용인대 교수는 "종래 백제의 횡혈식 석실분이라면 거의 예외없이 지상에 무덤방과 봉분을 마련하는 방식인데, 이 고분은 특이하게도 지하 깊이 파고 내려가 묘광을 만들었으며, 더구나 그 규모가 크다는 점이 의외다"라고 말했다.

한국고고학회장을 맡고있는 숭실대 최병현 교수는 "묘광을 파고 그 안에 묘실(墓室)을 축조한 방식을 보니, 낙랑 지역 전축분(벽돌무덤)에서 재료만 벽돌에서 깬돌로 교체한 듯한 느낌을 준다"면서 "이런 무덤 양식은 분명히 중국의 전축분을 본떠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송원리 유적은 KM-016호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KM-016호분 만큼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 주변에서 백제시대 석실분과 옹관묘, 그리고 주구 토광묘(周溝土壙墓.봉분 주변으로 도랑을 두른 무덤) 등이 다수 발굴됐다. 이 지역이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사용된 삼국시대 공동묘지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9일 현장을 방문한 발굴조사 지도위원들의 관심은 이렇게 출현한 유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모아졌다.

유적을 보존할 가치가 그다지 없다고 판정나면, 유물을 수습하고 발굴조사 기록을 충실히 남긴 뒤 현장을 '정리'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유적을 보존하는 쪽으로 결정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행정중심 복합도시 조성사업 중 적어도 이 지역에 해당하는 계획은 일정 부분 변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거대 백제 고분 `발굴'

유적을 보존하느냐, 마느냐를 발굴조사 지도위원회가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 결정은 전적으로 문화재위원회와 문화재청이 내린다. 하지만 문화재위와 문화재청 결정에 지도위원회 의견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유적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지도위원 중 좌장격인 숭실대 최병현 교수가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최 교수는 사견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이런 유적은 당연히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놓았다.

지도위원 5명 중 보존 여부에 대해서는 최 교수 혼자만 발언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실은 송원리 유적 지도위원들 의견을 정리해 대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원리 일대는 지난 7월 착공한 '첫마을'이라는 주택단지가 들어설 곳으로 당초 목표대로라면 2009년 하반기에 분양에 들어가 2010년말 2천600 가구를 시작으로 2012년까지 모두 7천여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었다.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는 송원리 유적 주요부분을 보존하는 쪽으로 결정이 돼도 첫마을 사업 계획에는 그다지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지도위원회와 문화재청에 대해서는 "보존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범위까지 사적으로 지적할 것인지를 빨리 결정해 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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