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총에서 풍납토성까지 34년의 고고학>
기사입력 2006-12-17 15:29 최종수정 2006-12-17 15:29
천마도 수습 |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86년 설 전날, 금강 하류 구릉지에서 고분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은 현장으로 출동했다. 신고자는 임막동. 이 마을 학생인 그는 칡뿌리를 캐다가 자신도 모르게 무덤을 뚫고 들어가는 '도굴'을 감행했다.
명절이지만 차편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조사원들은 겨우 현장에 도착해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모두 9기에 이르는 백제시대 고분이 발견됐다. 촉박한 일정 때문에 야간조사도 감행했다. 1971년 무령왕릉 조사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전등. 이는 자동차 배터리로 해결됐다. 배터리에서 전력을 공급받은 5와트짜리 전등은 을씨년스런 무덤 내부를 대낮처럼 밝힌 것은 물론 석실 내부 온도도 높였다. 이 때 일화 중 하나로 당시 조사원 윤근일(尹根一. 60) 기전문화재연구원장은 이렇게 회상한다.
"따뜻한 석실 안에서 겨울잠을 자던 뱀들이 고개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에는 조사원들이 대나무 가지를 할석(깬돌) 틈 사이로 밀어넣고 또 나오면 밀어넣고 하며 조사를 했다."
1984년 초파일에 화순 쌍봉사 기단부에 화재가 났다. 이에 따른 발굴조사와 사찰 복원을 위해 그 해 7월 윤 원장이 포함된 국립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이 현장에 투입됐다. 당시만 해도 오지라 먹는 문제가 심각했다.
윤 원장이 생각한 묘안이 화순군청에 부탁해 더 이상을 알을 낳지 않는 폐계를 사 먹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폐계 다섯 마리를 마리당 천 원씩, 모두 오천 원을 주고는 사서는 어느날 백숙을 쑤어 배불리 먹었다. 결과는? 식중독으로 모든 조사원이 곤욕을 치렀다.
이 쌍봉사에는 국보인 철감선사 부도가 있다. 탁본 작업을 벌이던 윤 원장은 옥개석(지붕돌) 사이에서 꿀이 반짝반짝하는 먹음직한 벌집을 발견했다. 저걸 어떻게 맛볼 수 없을까 고민하던 윤 원장은 빨대를 이용했다.
"벌들이 얼굴 주변을 맴돌아 쏘일까 걱정도 되고 자세도 어정쩡 불편해서 빨대를 더 많이 연결해 마치 잠망경처럼 만들어 편히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서 꿀을 빨아먹었다. 자연산 토종꿀, 아마 내가 먹어본 꿀 중에 가장 달콤한 맛이었다."
하지만 그가 거쳐간 30여 년 고고학 발굴현장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천마총 조사를 완료하고 황남대총 조사를 벌이던 윤 원장은 1975년 안압지 발굴에 투입된다. 준설작업을 하다가 유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긴급 조사를 벌이게 된 것이다. 성과는 놀라웠다. 통일신라시대 궁정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 1만5천여 점이 쏟아진 것이다. 개중에는 지금까지도 유일한 신라시대 나뭇배가 있었다.
안압지 목선 운반 |
안압지 조사는 워낙 규모가 큰 까닭에 정식 조사원은 달랑 2명인데, 인부만 최대 250명.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특히 유물을 슬쩍 해서 가져나간다면?
할 수 없이 퇴근시간이면 모든 인부를 점검했다. 도시락통, 주머니, 모자 안 등 샅샅이 뒤졌다고 윤 원장은 회상한다.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이 학과 정영호 교수의 추천으로 천마총 발굴단 일원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고고학에 발을 담근 윤 원장이 연구소 생활 34년을 회고한 수상집 '고고학의 늪에 빠져들다'(고래실)을 냈다.
환갑에 두 번째 직장을 얻은 그는 말한다.
"나는 내가 걸어온 인생에 후회가 없으며, 천마총-황남대총-안압지를 시발로 서울 풍납토성에 이르기까지 한국 고고학 현장을 지켰다는 사실 자체가 자랑스럽다."
고래실. 152쪽. 1만2천원.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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