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위례성...마고

吾心竹--오심죽-- 2009. 2. 4. 18:19

서울마고’에 대하여



노중평 


"서울마고"에 대해서... | 마고할미 자료
전체공개 2004.03.17 18:53
'서울마고’에 대하여







노중평







1 마고의 의미


‘서울문학’의 제호를 ‘서울마고’로 바꾸는데 있어서 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서을마고’를 초기백제시대의 남제南齊의 표현으로 하면 ‘고마固麻’이고, 또 초기 백제의 표기로 하면, ‘곰’이다. 서울의 표기가 초기백제 당시의 국제어로는 ‘고마’, 백제어로는 ‘곰’이 되는 것이다. ‘고마’나 ‘곰’의 어원은 마고麻姑이다.

마고는 한중일韓中日 삼국이 모두 공유하는 구원의 여인상이다. 적어도 아시아 대륙에서 우리의 선조인 풍이족風夷族이 한국족(東夷族)과 중국족(夏華族)과 일본족(倭族)으로 분화하기 전 까지는 마고를 인류 최고의 조상, 문명인의 조상, 구원의 여인상으로 공유하였다. 그러나 풍이족이 구려족九黎族으로 불리던 시대에 구려족에서 하화족이 분화해 나가면서, 이들은 마고를 금모낭낭金母娘娘으로 부르다가 서왕모西王母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단군조선이 진나라에게 진시황 8년에 멸망하면서 1차로 일본 땅으로 흘러들어간 사람들과 2차로 가야제국이 멸망하면서 일본 땅으로 흘러들어간 사람들이 마고를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는 단군조선시대나 가야제국시대의 우리 고어로 볼 수 있는 말인데, 아마데라스를 한자(한자는 고유한 우리문자이다)로 바꾸어 쓰면 阿麻洞窟宿이 된다. 이를 풀이하면, 阿는 나라의 도읍지나 임금의 무덤으로, 마麻는 마고로, 洞窟은 절로, 수宿는 별로 볼 수 있다. 이 말을 하나로 엮으면 ‘마고를 모신 동굴무덤을 비추는 별’이 된다.

천문에서 마고와 동일시되는 별은 베가성으로 불리는 직녀성이다. 베가성이란 서양사람의 말이 아니라 풍이족시대에 우리 조상이 쓰던 말로 ‘베를 짜는 집안 여자별’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한자화 하여 직녀성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데라스는 직녀성으로 풀이가 되는 말이라고 하겠다.

우리 조상은 상고시대에 절이나 사찰로 불리는 절을 짓기 전에는 동굴을 절로 하였다. 그러므로 굴과 절은 같은 말로 볼 수 있다. 지금도 곰굴이나 범굴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곰굴은 모신(할머니 신) 즉 여신에게 제사지내던 절이었고, 범굴은 남신(할아버지 신)에게 제사지내던 절이었다. 지금도 종교인들이 토굴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토굴이 태초의 절이었기 때문에 이 태초의 절을 찾아가서 기도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2 역사적 사실


마고는 우리의 시조이고 문명의 창시자

① 우리 신화와 역사 기록에 麻姑가 처음 등장하는 때는 신라 내물왕(奈勿王) 때이다. 당시의 재상 朴堤上(363-419?)이 징심록澄心錄 15誌를 지었는데, 5誌 부도지符都誌에 인류문명인의 시조로 나온다.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마고가 등장하는 때가 지구의 운동으로歲差運動으로 지구가 뒤집어져 바다가 육지가 되고 육지가 바다가 되고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던 때라고 한다. 혹은 헤성과의 충돌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다고도 한다.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14,000년 전으로, 대빙하기의 말기의 혹독한 추위가 걷히어 가던 때이다.

이때 남태평양 상에서 뮤 대륙이 침몰하고, 대서양에서 아틀란티스가 침몰했는데, 뮤 대륙 침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뮤 대륙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마고로 유추할 수 있고, 아틀란티스 침몰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틀란티스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멜기세댁으로 유추할 수 있다. 마고는 인도 등 동남아시아의 사원에 보관되어 있는 토판에 쇄기문자로 기록되어 있고, 멜키세댁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영원히 죽지 않는 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

② <부도지>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 마고는 두 딸 궁희와 소희를 낳았고, 궁희에게서 청궁과 황궁이 태어나고, 소희에게서 백소와 흑소가 태어난다.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원시인이 아닌 문명인으로 불리는 인류는 이분들의 후손이 된다. 우리는 황궁의 후손으로, 황궁에게서 유인이 태어나고, 유인에게서 한인이 태어나고, 한인에게서 한웅이 태어나고, 한웅에게서 단군왕검이 태어난다. 마고에서부터 단군왕검까지의 역사가 1만년이다.

③ 이후로 마고에 대한 기록은 우리 역사 곳곳에 나온다. 마고는 태초의 하늘에서는 직녀성이고, 북두칠성에 좌정하여 곰으로 불린다. 큰곰별자리와 작은곰별자리가 이리하여 생긴다. 마고의 자손은 칠성의 자손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곰은 단군왕검 때에 와서 검으로 변한다. 검은 곰이고 곰은 한자로 쓰면 고마固麻이다.

固麻는 풀어 쓰면 囗자 안에 古자를 써서 固자를 만들고 달리 麻자를 써서 만든 문자이다. 이 문자는 囗자 안에 姑자르 넣어 만들어야 하는 문자인데, 女자를 띄어내어 麻자로 독립시킨 문자이다. 그러므로 女자와 麻자를 같은 뜻의 문자로 볼 수 있다. 이때의 麻자는 女를 의미하는 麻자이다. 女를 의미하는 麻자는 母자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女 麻 母는 같은 의미를 갖는다.

④ 삼각산 기슭에 소서노와 온조 모자가 백제를 세울 때, 이곳을 한자로 위레성慰禮城이라고 하였다. 인수봉에 우레가 치므로 우레성이라고 한 것을 한자로 바꾸어 쓰다 보니 위례성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표기는 그리스의 최고신 우라노스가 우레신이라는 점, 그의 아들 제우스가 제우사帝雨師로 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화학자들에 따르면 신화시대에 전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이 있었고, 단 하나의 공용어인 인공언어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당시에 전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은 풍이족을 추축으로 한 한국桓國, 인공언어로 풍이족의 언어인 한국어桓國語가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라노스나 제우스나 우례성은 모두 풍이문자의 변형문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

⑤ 南齊史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북두칠성은 그 음이 백제어로 곰이다. 한자로 고마固麻로 풀어쓴다.

고마는 남제에서 부르던 백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남사백제전南史百濟傳」(「康熙字典」 부수-麻 1622쪽 國際文化出版公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남사는 南齊史이다.

百濟國號王所都城曰固麻邑曰檐魯如中國言郡縣也
백제국호왕소도성왈고마읍왕첨로여중국언군현야
백제의 국호는 왕이 머무르는 도성으로 하는데, 고마읍이라고 하고, 첨로라고도 하고, 중국말로 군현과 같다.

위 글에서 고마固麻는 우리글 곰을 한자로 바꾸기 위하여 고마로 풀어 쓴 것이다. 이글은 백제의 도성이 ‘곰’으로 불렸다는 증거이다. 첨로檐魯의 ‘첨’은 단군왕검의 검儉과 같은 뜻으로 쓴 말이다. 두 말 다 ‘처음’이라는 뜻이다. 이들 문자는 모두 다 마고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말의 중요한 점은 마고를 계승한 조선과 백제가 국조國祖를 마고로 하였다는 점이다.

곰이 다시 한자화 하여 웅진熊津이라는 지명이 생긴다. 웅진은 곰나루(지금의 公州)의 한자화 이다. 마고는 지방마다 사당을 지어 모시는데, 이 사당을 할미당 또는 삼신당이라고 하였다. 할미는 한어머니라는 뜻이다.

고마를 처음 쓰기 시작한 때는 소서노와 그의 아들 온조가 하북 위례성을 세웠을 때이다. 하북 위례성을 北漢이라고 하였는데, 北漢은 廣州의 옛 이름이다. 하북 위례성의 백제 이름이 우리말로 곰이고, 한자음으로 固麻라고 썼다. 하북 위례성의 중심에 마고사당麻姑祠堂을 지어 좌정시키고 이를 곰 즉 固麻라고 했으므로 국도의 이름이 된 것이다.

⑥ 고려시대의 기록은 좀더 확실하다. <高麗史36卷-世家36-忠惠王>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戊辰宰相會百官及國老欲署名呈省書國老多不至事
竟未就王傳車疾驅艱楚萬狀未
至揭陽丙子薨于岳陽縣. 或云遇 或云食橘而
國人聞之莫有悲之者小民至有欣躍以爲復見更生之日.
初宮中及道路歌曰:'阿也麻古之那從今去何時來?' 至是人解之曰: '岳陽亡故之難今日去何時還?'
王在位前後六年壽三十.

무진일, 재상들이 백관들과 나라의 원로들을 소집하여 원나라 중서성에 제출할 서한에 서명을 받으려고 하였으나 나라의 원로들 대부분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성사하지 못하였다.
왕(원에 납치되어 후에 살해당하게 되는 충혜왕)은 전거傳車(역마)에 실려서 급히 달려가는 도중에 천신만고를 겪으며 계양까지 가지 못하고 병자일에 악양현에서 죽었다. 혹은 “독살되었다”하고, 혹은 “귤에 중독되어 죽었다”고도 하는데, 본국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가난한 백성들은 기뻐 날뛰면서 이제 다시 갱생할 날을 보게 되었다고까지 말하였다.(주, 이 글은 친원파親元波의 기록을 조선 초기에 고려사를 편찬하는 사람들이 다시 폄하한 글이므로 왜곡되고 훼손된 글이라고 보아야 한다)

처음에 궁중과 항간에서 노래가 유행되기를, “아아 마고지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고 하였다. 왕은 전후하여 재위 6년이며 수명 30세이었다.
<고려사>에는 이렇게 고려가 계승한 나라가 ‘마고지나’임을 밝히고 있다.

⑦ 古韓語 연구자들은 우리 말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에 쓰이는 고마가 마고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에 ‘神 같다’는 표현으로 썼는데, 오늘날 ‘고맙’다는 표현으로 의미가 바뀌었다고 한다. ‘곰 같다’→‘검 같다’→‘신 같다’로 보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神을 かみ라고 한다. かみ는 우리 말 검(神)의 일본어화이다.

우리말의 ‘곰삭았다’는 말은 ‘무르익었다’는 말인데, 곰처럼 되었다는 말, 단군신화에서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인내하여 여자로 환골탈퇴換骨脫退할 때가 되었다는 뜻에서 왔다고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꼼꼼히’ 라는 말도 곰+곰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꼼꼼히’ 라는 말에는 ‘인내하며 차근차근 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 역시 단군신화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⑧ 우리 음악의 고유한 이름을 매昧라고 한다. 매는 북두칠성에 소속한 별이다. 매를 친다, 두드린다는 의미가 있다. 두드린다는 ‘斗(북두칠성)에 드린다’는 의미이다. 곰에게 드린다는 뜻이기도 한다. 곰은 검이다. 검에게 드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에게 드린다는 뜻이 된다. 매는 신의 의미로 쓰는 마고에서 나온 것이다. music은 마고에서 온 것으로 본다.

⑨ 엄마의 마나 어머니의 머는 마고에서 온 것으로 본다. 따라서 母가 麻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3 이 시대에 마고를 되살려야 하는 이유


중국의 한국역사 중국사편입연구와 관련하여

① 현재 중국은 5년에 걸쳐 200억위엔(우리돈 3조원)을 투입하여 한국의 강단사학의 연구성과물을 수거하여 조선족 역사 학자를 주축으로 한 <한국 고구려사 중국사 편입을 위한 연구>를 서두르고 있고, 고구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는바, 이를 <東北工程>(동북아프로젝트)라고 한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면, 우리의 역사는 중국의 변방역사로 전락하게 되는데, 한국을 중국의 속국, 변방국가로 자리매김을 하자는 데에 목적이 있다.

② 중국은 앞으로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동북공정>은 이때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북한지역을 중국화 하려는 음모를 노출하는 것으로, 북한이 고구려를 계승하였고, 고구려를 계승한 북한이 멸망하였으므로, 북한 땅은 당연히 고구려의 역사를 귀속한 중국에 속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펴게 될 것인 바, 정부나 국민 모두가 이때를 대비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③ 마고는 우리의 시조로 조선, 고구려, 백제, 고려를 통하여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으므로, 마고의 역사를 복원해야만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할 수 있는 대항논리의 구축이 가능해진다.

마고의 변음인 곰이나 고마를 처음 쓴 사람이 소서노召西弩이다. 그는 마고신앙인 할미신앙 즉 삼신신앙을 후손에게 남겨준 사람으로, 고주몽을 도와서 고구려를 세웠고, 그의 아들 온조를 도와서 백제를 세웠다. 인류 역사에서 한 여자가 두 나라를 세운 예는 동서고금에 없다.

우리가 이 위대한 소서노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의 역사로 편입하고자 했을 때, 대항논리의 중심에 소서노가 서있으므로, 소서노를 대한문학의 신으로 영신한 문학인들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역사와 조상에게 충성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소서노가 처음 세운 백제의 도성 이름의 어원이 되는 마고를 우리가 서울문학에 씀으로써 대한민국의 문학인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④ 아울러 마고상을 남산에 있는 <문학인의 집>이나, 국도 서울의 주산인 삼각산 자락에 현신하게 하여 우리 역사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⑤ 문화민족은 각 민족이 국민적 사표가 될만한 구원의 여인상을 가지고 있는바, 중국의 서왕모, 일본의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 유태인의 마리아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시조 마고를 우리 구원의 여인상으로 내세움으로써 정신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취약한 이 부분을 보강할 수 있다.

마고(kimhun31)


1 마고의 의미


‘서울문학’의 제호를 ‘서울마고’로 바꾸는데 있어서 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서을마고’를 초기백제시대의 남제南齊의 표현으로 하면 ‘고마固麻’이고, 또 초기 백제의 표기로 하면, ‘곰’이다. 서울의 표기가 초기백제 당시의 국제어로는 ‘고마’, 백제어로는 ‘곰’이 되는 것이다. ‘고마’나 ‘곰’의 어원은 마고麻姑이다.


마고는 한중일韓中日 삼국이 모두 공유하는 구원의 여인상이다. 적어도 아시아 대륙에서 우리의 선조인 풍이족風夷族이 한국족(東夷族)과 중국족(夏華族)과 일본족(倭族)으로 분화하기 전 까지는 마고를 인류 최고의 조상, 문명인의 조상, 구원의 여인상으로 공유하였다. 그러나 풍이족이 구려족九黎族으로 불리던 시대에 구려족에서 하화족이 분화해 나가면서, 이들은 마고를 금모낭낭金母娘娘으로 부르다가 서왕모西王母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단군조선이 진나라에게 진시황 8년에 멸망하면서 1차로 일본 땅으로 흘러들어간 사람들과 2차로 가야제국이 멸망하면서 일본 땅으로 흘러들어간 사람들이 마고를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는 단군조선시대나 가야제국시대의 우리 고어로 볼 수 있는 말인데, 아마데라스를 한자(한자는 고유한 우리문자이다)로 바꾸어 쓰면 阿麻洞窟宿이 된다. 이를 풀이하면, 阿는 나라의 도읍지나 임금의 무덤으로, 마麻는 마고로, 洞窟은 절로, 수宿는 별로 볼 수 있다. 이 말을 하나로 엮으면 ‘마고를 모신 동굴무덤을 비추는 별’이 된다.


천문에서 마고와 동일시되는 별은 베가성으로 불리는 직녀성이다. 베가성이란 서양사람의 말이 아니라 풍이족시대에 우리 조상이 쓰던 말로 ‘베를 짜는 집안 여자별’이라는 뜻이다. 이 말을 한자화 하여 직녀성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데라스는 직녀성으로 풀이가 되는 말이라고 하겠다.


우리 조상은 상고시대에 절이나 사찰로 불리는 절을 짓기 전에는 동굴을 절로 하였다. 그러므로 굴과 절은 같은 말로 볼 수 있다. 지금도 곰굴이나 범굴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데, 곰굴은 모신(할머니 신) 즉 여신에게 제사지내던 절이었고, 범굴은 남신(할아버지 신)에게 제사지내던 절이었다. 지금도 종교인들이 토굴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토굴이 태초의 절이었기 때문에 이 태초의 절을 찾아가서 기도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2 역사적 사실


마고는 우리의 시조이고 문명의 창시자


① 우리 신화와 역사 기록에 麻姑가 처음 등장하는 때는 신라 내물왕(奈勿王) 때이다. 당시의 재상 朴堤上(363-419?)이 징심록澄心錄 15誌를 지었는데, 5誌 부도지符都誌에 인류문명인의 시조로 나온다.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마고가 등장하는 때가 지구의 운동으로歲差運動으로 지구가 뒤집어져 바다가 육지가 되고 육지가 바다가 되고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던 때라고 한다. 혹은 헤성과의 충돌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다고도 한다.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14,000년 전으로, 대빙하기의 말기의 혹독한 추위가 걷히어 가던 때이다.


이때 남태평양 상에서 뮤 대륙이 침몰하고, 대서양에서 아틀란티스가 침몰했는데, 뮤 대륙 침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뮤 대륙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마고로 유추할 수 있고, 아틀란티스 침몰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틀란티스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멜기세댁으로 유추할 수 있다. 마고는 인도 등 동남아시아의 사원에 보관되어 있는 토판에 쇄기문자로 기록되어 있고, 멜키세댁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영원히 죽지 않는 자’로 기록이 되어 있다.


② <부도지>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 마고는 두 딸 궁희와 소희를 낳았고, 궁희에게서 청궁과 황궁이 태어나고, 소희에게서 백소와 흑소가 태어난다.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원시인이 아닌 문명인으로 불리는 인류는 이분들의 후손이 된다. 우리는 황궁의 후손으로, 황궁에게서 유인이 태어나고, 유인에게서 한인이 태어나고, 한인에게서 한웅이 태어나고, 한웅에게서 단군왕검이 태어난다. 마고에서부터 단군왕검까지의 역사가 1만년이다.


③ 이후로 마고에 대한 기록은 우리 역사 곳곳에 나온다. 마고는 태초의 하늘에서는 직녀성이고, 북두칠성에 좌정하여 곰으로 불린다. 큰곰별자리와 작은곰별자리가 이리하여 생긴다. 마고의 자손은 칠성의 자손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곰은 단군왕검 때에 와서 검으로 변한다. 검은 곰이고 곰은 한자로 쓰면 고마固麻이다.


固麻는 풀어 쓰면 囗자 안에 古자를 써서 固자를 만들고 달리 麻자를 써서 만든 문자이다. 이 문자는 囗자 안에 姑자르 넣어 만들어야 하는 문자인데, 女자를 띄어내어 麻자로 독립시킨 문자이다. 그러므로 女자와 麻자를 같은 뜻의 문자로 볼 수 있다. 이때의 麻자는 女를 의미하는 麻자이다. 女를 의미하는 麻자는 母자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女 麻 母는 같은 의미를 갖는다.


④ 삼각산 기슭에 소서노와 온조 모자가 백제를 세울 때, 이곳을 한자로 위레성慰禮城이라고 하였다. 인수봉에 우레가 치므로 우레성이라고 한 것을 한자로 바꾸어 쓰다 보니 위례성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표기는 그리스의 최고신 우라노스가 우레신이라는 점, 그의 아들 제우스가 제우사帝雨師로 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화학자들에 따르면 신화시대에 전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이 있었고, 단 하나의 공용어인 인공언어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당시에 전세계를 지배하던 제국은 풍이족을 추축으로 한 한국桓國, 인공언어로 풍이족의 언어인 한국어桓國語가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라노스나 제우스나 우례성은 모두 풍이문자의 변형문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


⑤ 南齊史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북두칠성은 그 음이 백제어로 곰이다. 한자로 고마固麻로 풀어쓴다.


고마는 남제에서 부르던 백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남사백제전南史百濟傳」(「康熙字典」 부수-麻 1622쪽 國際文化出版公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남사는 南齊史이다.


百濟國號王所都城曰固麻邑曰檐魯如中國言郡縣也 

백제국호왕소도성왈고마읍왕첨로여중국언군현야 


백제의 국호는 왕이 머무르는 도성으로 하는데, 고마읍이라고 하고, 첨로라고도 하고, 중국말로 군현과 같다.


위 글에서 고마固麻는 우리글 곰을 한자로 바꾸기 위하여 고마로 풀어 쓴 것이다. 이글은 백제의 도성이 ‘곰’으로 불렸다는 증거이다. 첨로檐魯의 ‘첨’은 단군왕검의 검儉과 같은 뜻으로 쓴 말이다. 두 말 다 ‘처음’이라는 뜻이다. 이들 문자는 모두 다 마고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말의 중요한 점은 마고를 계승한 조선과 백제가 국조國祖를 마고로 하였다는 점이다.


곰이 다시 한자화 하여 웅진熊津이라는 지명이 생긴다. 웅진은 곰나루(지금의 公州)의 한자화 이다. 마고는 지방마다 사당을 지어 모시는데, 이 사당을 할미당 또는 삼신당이라고 하였다. 할미는 한어머니라는 뜻이다.


고마를 처음 쓰기 시작한 때는 소서노와 그의 아들 온조가 하북 위례성을 세웠을 때이다. 하북 위례성을 北漢이라고 하였는데, 北漢은 廣州의 옛 이름이다. 하북 위례성의 백제 이름이 우리말로 곰이고, 한자음으로 固麻라고 썼다. 하북 위례성의 중심에 마고사당麻姑祠堂을 지어 좌정시키고 이를 곰 즉 固麻라고 했으므로 국도의 이름이 된 것이다.


⑥ 고려시대의 기록은 좀더 확실하다. <高麗史36卷-世家36-忠惠王>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戊辰宰相會百官及國老欲署名呈省書國老多不至事 

竟未就王傳車疾驅艱楚萬狀未 

至揭陽丙子薨于岳陽縣. 或云遇 或云食橘而

國人聞之莫有悲之者小民至有欣躍以爲復見更生之日. 

初宮中及道路歌曰:"阿也麻古之那從今去何時來?" 至是人解之曰: "岳陽亡故之難今日去何時還?"

王在位前後六年壽三十. 


무진일, 재상들이 백관들과 나라의 원로들을 소집하여 원나라 중서성에 제출할 서한에 서명을 받으려고 하였으나 나라의 원로들 대부분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성사하지 못하였다.


왕(원에 납치되어 후에 살해당하게 되는 충혜왕)은 전거傳車(역마)에 실려서 급히 달려가는 도중에 천신만고를 겪으며 계양까지 가지 못하고 병자일에 악양현에서 죽었다. 혹은 “독살되었다”하고, 혹은 “귤에 중독되어 죽었다”고도 하는데, 본국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가난한 백성들은 기뻐 날뛰면서 이제 다시 갱생할 날을 보게 되었다고까지 말하였다.(주, 이 글은 친원파親元波의 기록을 조선 초기에 고려사를 편찬하는 사람들이 다시 폄하한 글이므로 왜곡되고 훼손된 글이라고 보아야 한다)


처음에 궁중과 항간에서 노래가 유행되기를, “아아 마고지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라고 하였다. 왕은 전후하여 재위 6년이며 수명 30세이었다.


⑦ 古韓語 연구자들은 우리 말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에 쓰이는 고마가 마고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에 ‘神 같다’는 표현으로 썼는데, 오늘날 ‘고맙’다는 표현으로 의미가 바뀌었다고 한다. ‘곰 같다’→‘검 같다’→‘신 같다’로 보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神을 かみ라고 한다. かみ는 우리 말 검(神)의 일본어화이다.


우리말의 ‘곰삭았다’는 말은 ‘무르익었다’는 말인데, 곰처럼 되었다는 말, 단군신화에서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인내하여 여자로 환골탈퇴換骨脫退할 때가 되었다는 뜻에서 왔다고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꼼꼼히’ 라는 말도 곰+곰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꼼꼼히’ 라는 말에는 ‘인내하며 차근차근 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 역시 단군신화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⑧ 우리 음악의 고유한 이름을 매昧라고 한다. 매는 북두칠성에 소속한 별이다. 매를 친다, 두드린다는 의미가 있다. 두드린다는 ‘斗(북두칠성)에 드린다’는 의미이다. 곰에게 드린다는 뜻이기도 한다. 곰은 검이다. 검에게 드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에게 드린다는 뜻이 된다. 매는 신의 의미로 쓰는 마고에서 나온 것이다. music은 마고에서 온 것으로 본다.


⑨ 엄마의 마나 어머니의 머는 마고에서 온 것으로 본다. 따라서 母가 麻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3 이 시대에 마고를 되살려야 하는 이유


중국의 한국역사 중국사편입연구와 관련하여


① 현재 중국은 5년에 걸쳐 200위엔(우리돈 3조원)을 투입하여 한국의 강단사학의 연구성과물을 수거하여 조선족 역사 학자를 주축으로 한 <한국 고구려사 중국사 편입을 위한 연구>를 서두르고 있고, 고구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있는바, 이를 <東北工程>(동북아프로젝트)라고 한다.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면, 우리의 역사는 중국의 변방역사로 전락하게 되는데, 한국을 중국의 속국, 변방국가로 자리매김을 하자는 데에 목적이 있다.


② 중국은 앞으로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동북공정>은 이때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북한지역을 중국화 하려는 음모를 노출하는 것으로, 북한이 고구려를 계승하였고, 고구려를 계승한 북한이 멸망하였으므로, 북한 땅은 당연히 고구려의 역사를 귀속한 중국에 속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펴게 될 것인 바, 정부나 국민 모두가 이때를 대비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③ 마고는 우리의 시조로 조선, 고구려, 백제, 고려를 통하여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으므로, 마고의 역사를 복원해야만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할 수 있는 대항논리의 구축이 가능해진다.


마고의 변음인 곰이나 고마를 처음 쓴 사람이 소서노召西弩이다. 그는 마고신앙인 할미신앙 즉 삼신신앙을 후손에게 남겨준 사람으로, 고주몽을 도와서 고구려를 세웠고, 그의 아들 온조를 도와서 백제를 세웠다. 인류 역사에서 한 여자가 두 나라를 세운 예는 동서고금에 없다.


우리가 이 위대한 소서노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의 역사로 편입하고자 했을 때, 대항논리의 중심에 소서노가 서있으므로, 소서노를 대한문학의 신으로 영신한 문학인들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역사와 조상에게 충성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소서노가 처음 세운 백제의 도성 이름의 어원이 되는 마고를 우리가 서울문학에 씀으로써 대한민국의 문학인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④ 아울러 마고상을 남산에 있는 <문학인의 집>이나, 국도 서울의 주산인 삼각산 자락에 현신하게 하여 우리 역사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⑤ 문화민족은 각 민족이 국민적 사표가 될만한 구원의 여인상을 가지고 있는바, 중국의 서왕모, 일본의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 유태인의 마리아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시조 마고를 우리 구원의 여인상으로 내세움으로써 정신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취약한 이 부분을 보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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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혼 - 천문의 정체성

밤하늘엔 고조선의 별들이 총총


노 중 평



한글 학자인 한 갑수 선생이 밝힌 바에 따르면 1971년 당

시 이태리 정부의 초청으로 로마에 가서, 세계적인 석학

인 자코모 박사로부터 ‘솟대’를 비롯한 11가지에 대한 질

문을 받고, 이를 설명해 주자 2시간이나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 후,

“코리아, 당신의 나라가 세계에서 단독으로 최고 선진국

입니다. 왜냐 하면 당신의 나라가 확실히 세계에서 제일

먼저 절대자를 모신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

인과 희랍 사람이 아니라 한국이 단독으로 제일 선진국

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나의 학설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은 그리스토가 태어나서 절대자 하느님을 알려

주기 4천년 전(BC 4000)에 절대자 하느님을 먼저 알고 있

었으며, 고대 이집트인보다 2세기 반에서 2세기 전에 황

하 연안에서 인류문명을 싹 틔웠다. 음력을 BC 2357년에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1/100의 오차도 없어 수정한 적이

없었다. 자코모 박사는 그 당시에 황하 유역엔 중국사람

들 즉 지나족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지나의 금문학자 낙빈기도 동이족이 동양에서 최초로 나

라를 세웠다고 그가 쓴 금문신고에서 말했다.

우리 민족이 유일신 하느님을 모셨다는 것은 고대에 천

문을 시작했다는 것을 말한다. 천문을 하지 않고서는 하

늘에 있는 유일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전해오는 동양의 천문도는 대체로 진한(秦漢) 시대

에 완성한 천문도이다. 그러니까 한족이 중원에서 동이

족을 중원 밖으로 몰아내고 우리 조상이 만든 천문도를

제멋대로 뜯어 고친 천문도라는 말이다.

고대 천문은 하늘이 자미원(紫微垣) 태미원(太微垣) 신시

원(神市垣)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태미원

은 우주의 중심이 되는 북쪽의 하늘이다. 태미원은 자미

원 밖에 있는 은하수가 흘러가는 하늘이고, 신시원은 은

하수 밖의 하늘이다.

우리 조상은 자미원의 중심이 되는 별자리인 북극오성(北

極五星: 작은곰별자리)에 우리 역사를 기록했다. 한인천

제, 한웅천왕, 단군왕검, 웅녀의 역사를 별자리로 표시하

였다. 서쪽 하늘에서부터 동쪽하늘을 향하여 북극성, 황

후(皇后)성, 서자(庶子)성, 천제(天帝)성, 태자(太子)성이

일자로 서 있는데, 북극성을 천추(天樞)성 즉 하느님으로

표시하고, 이어서 단군신화에 나오는 한인천제, 한웅천

왕, 단군왕검, 웅녀 네 분을 각 별의 신명에 올린 것이다.

그래서 서자한웅은 서자성에, 한인천제는 천제성에, 태

자 단군왕검은 태자성에, 웅녀는 황후성에 맞는다.

한단고기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에 보면 ‘단군조선

을 진국(辰國)이라고 한다. 진국은 하늘에서는 태자성이

있는 북극오성을 말한다. 진(辰)은 북극성 또는 대화성(大

火星)이므로 진국은 북극성 즉 천추성의 나라라는 뜻이

다. 단군조선은 번조선(番朝鮮: 番韓)과 막조선(莫朝鮮:

莫韓)을 좌우에 거느리고 있는데 번조선은 진국을 호위하

는 나라라는 뜻이요, 막조선은 번조선과 막상막하의 실

력이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들 세 나라를 자미원에서

찾아보면 북극오성의 천추성(북극성)의 왼쪽에 좌추(左

樞: 여덟 개의 별자리를 구성한다)가 있고, 오른쪽에 우추

(右樞: 7개의 별자리를 구성한다)가 있다. 진국이 천추성

에 해당하므로 번조선은 좌추에 해당하고 막조선은 우추

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자미원 하늘엔 고조

선(진국, 삼한시대에 오면 진한이 된다)의 별이 중심에 있

고, 그 왼쪽 자미원에 번조선(번한, 삼한시대에 오면 변한

이 된다)의 별이 있고 오른쪽 자미원에 막조선(막한, 삼한

시대에 오면 마한이 된다)의 별이 있는 것이다. 좌추, 우

추가 하는 일은 천추를 둘러싸서 호위하는 일이다. 이들

별자리는 두 팔을 벌린 듯 북극오성을 감싸고 있다. 좌

추와 우추는 승이라는 별자리에서 끝나는데 이들 별자리

가 끝나는 곳에 오제좌(五帝座)로 불리는 제좌성(帝坐星)

이 있다. 한인의 시대에 한인천제가 오가(五加)를 다스리

셨고 단군도 오가를 두었으므로 오제좌 즉 제좌성은 바

로 오가를 다스리신 한인, 한웅, 단군왕검의 자리라고 할

것이다.

좌추에는 상제(上帝), 필(畢), 상보(上輔), 소보(少輔), 상위

(上尉), 소위(少尉), 승(丞)의 별들이 있고, 우추에는 소위

(少尉), 상보(上輔), 소보(少輔), 상위(上尉), 소위(少尉), 승

(丞)의 별자리가 있다. 이들 관직명은 고대 우리 조상이

가지고 있던 관직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므로 연

구해 볼 필요가 있다.

고대에 우리가 중원에 나라를 세우고 최초로 천문을 시

작하지 않았다면 천문도에 이러한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1993년 지나 사회과학원 박사학위 논문인 순시아오천의

‘한대(漢代)의 중국 하늘 연구’에 보면 한대 이전의 고대

하늘에 대하여는 전혀 연구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한족의 역사가 우리 고대사를 말

살해 왔기 때문에 연구를 하고 싶어도 우리처럼 한단고

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대문에 박사 학위 논문에서조

차도 동이족의 별들에 손을 대지 못하고 그냥 넘어간 것

으로 보인다.

순시아천은 한대 별자리의 기원을 황제(黃帝)에 두고 있

는데 우리 선조가 황제 이전에 천문을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연구가 시작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황제는 천문도에 보면 헌원성(軒轅星)으로 나타나는데 황

제는 우주의 중심인 자미원에 들지 못하고 28수의 남방

주작칠수에 속한 유성(柳星), 성성(星星), 장성(張星), 익

성(翼星) 사이에 16 개의 별자리로 구성되어 자미원 밖인

황도 위쪽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황제는 하늘에서는 크

게 대접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

는 헌원성이 혹시 치우성이 아닐까 하고 의심한다. 의심

할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지면 관계로 이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우리는 지금부터 5,6천 년 전의 별자리를 연구하여 잃어

버린 우리의 별자리를 찾아내야 한다. 거기에 우리의 정

체성과 잃어버린 역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5,6천 년 전

의 역사를 복원해 내지 못하면 우리의 역사는 머리 없는

시체의 역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태연하게 아무 의식 없이 돈 벌 궁리나 하며 머리 없는

역사를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이러면

서도 과연 나라가 온전하게 발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아

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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