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북면 운용리...위례성 지명유래

吾心竹--오심죽-- 2009. 1. 7. 18:58

제목 운용리
작성자 북면 작성일 2004-12-27 오후 6:32:13 조회
 
목천군 북면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삼용리, 군단리, 심곡리, 납
안리 일부를 병합하여 운용리라 하고 천안군 북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
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통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됨에 따라 천원군 북면 운용리가
되었었다.

깊은골 : 심곡이라고도 하는데 부소문이 고개 동북 깊은골이다.  옛날에는 마을
         이 있었으며 골이 깊고 물이 좋아서 전염병과 어린이 복학(複虐)이 없
         었다하며 온조왕이 처음 이곳에 있었다고 전한다.

부소문이고개 : 부소문령(扶蘇門領) : 부소문이라고도 하는데 운영리에서 입장면
         양대리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 백제때 온조왕이 위례성에서 도읍하였을
         때 이곳에 문을 세웠다 하며 소나무 산 고개라고 하는 뜻도 된다고 한
         다.

삼용리(三龍) : 군단이 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용처럼 생겼다 한다.

장생이 : 새절터라고도 하며 군단이 서쪽골 위에 있는데 백제때 온조왕이 위례성
         에 도읍할 당시 시장이 섰다 한다.  절이 있었고 장승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마당재 : 깊은골 뒤에 있는 산.  마당처럼 평평하여 군사가 훈련하였다 한다.

군단이(軍丹) : 운용리에서 가장 큰 마을 백제때 군대가 주둔하였다고 한다.

산신제 : 군단이에서 정월 중 택일하여 지내며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으로
         제관 축관 외 5인 정도가 참석하며 소머리 삼색실과 쌀 3되 3홉을 제물
         로 놓고 각호의 소지를 올려주는데 저녁 7시경 지내며 제지낸 음식은
         나누어 먹고 제관들은 며칠간 몸을 정결히 한다.

위례성우물 : (전설) 위례성 안에 있는데 백제시조 온조왕이 밤이면 용이 되어
         우물로 들어가서 부여 백마강에서 놀다가 날이 밝으면 이 우물로 나와
         서 왕 노릇하다가 처남의 꾀임에 빠져 죽었다 한다.

구수바위 : 위례성안 산등성이에 있는데 돌을 다듬어 만든 것이 구유처럼 되었는
         데 백제 온조왕이 이곳에 도읍할 적에 사용하던 것이라 하며 비 받침이
         라고도 하고 반쪽밖에 없는데 또 반쪽은 굴러 내려 그 밑 고랑에 묻혀
         있는 것을 조영호씨가 장소를 잘 안다고 한다.

독갓바위 : 바위가 삿갓을 쓴 것 같이 생겼다.

대궐터 : 위례성안 동북쪽 말랭이 펀펀한 곳을 대궐이 있었다는 대궐터라고 전한
         다.

올림이골 : (전설) 옥녀봉 밑이 되는데 옥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놀다 올라가
         곤 하였다고 전해진다.

 

 

제목 납안리
작성자 북면 작성일 2004-12-27 오후 6:32:13 조회
 
목천군 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도촌, 납안리 일부를 병합하
여 납안리라 하여 북면에 편입되었다.
  
부등이들 : 도촌아래에 있는들로 부등넝쿨이 많이 있다고 한다.

씨앗골 : 도촌뒤에 있는데 모양이 씨앗처럼 생겼다 하며 큰골 뒤 작은골이다.

사리목 고개 : 도촌에서 성거읍 천흥리로 넘어가는 고개 길의 모양이 꾸불꾸불
         하여 새끼를 사리어 놓은 것 같이 생겼는데 속설에 사리목과 통한다하 
         여 흔행길은 일체 다니지 아니하며 대원군 섭정시 천주교인들 박해할 
         적에 이곳에서 은신한 사람이 많으면 경상 전라도의 사람도 이곳에서
         피난했고 교인들의 연락처로 이용됐으며 불란서 신부도 세명이나 있었
         다 한다.
  
수촌(秀村) : 뺄터.  납안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산수가 수려하고 빼어났다
         고 하여 뺄터라고 했다 전한다.
  
우물목고개 : 도촌에서 입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산신제 : 도촌, 시월중 택일하여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으로 제관, 축관, 고
         양주(제물 및 제를 주관하는 집)가 부락민 다수와 통돼지 삼색실과, 메
         를 제물로 놓고 지내며 각호의 소지를 올려주고 밤 10시∼11시 사이에
         지내며 제를 지낸음식은 나누어 먹는다.  제관들은 몸을 정결히 하고 
         며칠을 지내야 하며 목욕하고 지낸다.

도촌(道村) : 소학동(巢鶴洞)이라고도 하며 납안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사리목
         과 가깝고 옛날에는 상북에서 제일 큰 부락이었다고 한다.  대원군 섭
         정시 병인교란때 경상도 내포방면 천주교 교우들이 많이 살았고 불란
         서 페롱권신부, 리델이신부, 칼레강신부 등이 이근천에서 피신해 있었
         다고 한다.  이때 천주교인 중 5인이 체포되어 공주 영문에서 사형되었
         다 한다.  사형자는 최베드루천여, 최라자로종여, 배문호, 고요셉, 체
         서방며느리로 목천군 북면 소학동에 살다가 본읍 포교에서 잡혀 공주로
         옮겨 11월 8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납안이(納安) : 도촌 아래에 있는 마을로 위례성 전투에서 전사한 무덤이 수백기
         있는데 돌무더기로 되어 있다.
  
산신제 : 납안부락에서 10월 또는 정월에 택일하여 지내며 생기복덕을 보아 닫는
         사람으로 제 지낼 사람을 선정하며 돼지머리 삼색실과등을 제물로 하고
         각호의 소지를 올려 주며 밤 10시경 제를 올리고, 제를 지낸 음식은 나
         누어 먹는다.    
         선정된 제관들은 탈없이 지내야 하며 몸 가짐을 삼간다.

 

 

제목 대평리
작성자 북면 작성일 2004-12-27 오후 6:32:13 조회
 
목천군 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대산리, 소평리, 대야리, 곡
간리가 통합하여 대산리, 대야리에서 대자를 따고 소평리에서 평자를 따서 대평
리라 하였고 천안군 북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을 통
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되므로 천원군 북면 대평리가 되었었다.

가다골 : 가덕동 소평리 가더기라 부르며 평전말 옆에 있는데 장사 지내기 전 이
       곳에 시체를 놓았다고 장사 지냈다 한다.

밤나무골 : 밤나무가 많이 있어 밤나무골이다.

두루봉 : 산제당골이 있는데 예전에 곡간이 사람들이 산제를 모시던 곳이다.

쇠죽곡 : 예전에 이곳에서 철의 일을 하였다.

개천골 : 산이 둘러있고 하늘만 보이는 골이다.

조비장골 : 비장을 지내던 조비장의 무덤이 있다.

곡간리(曲干) : 마을이 산속 깊이 있어서 개울을 따라 꼬불꼬불 올라가는데 온조
       왕이 위례성에서 도읍할 당시 이곳에 곡식을 쌓아 두었던 곡간이었다 한
       다.  곡대라고도 부른다.

중방박골 : 남응중(南應中)터. 곡간 동쪽뒤에 있는 곳인데 철종때 척신들의 횡포
       를 막고 종실중 어진분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는 역명을 일으키려는 일
       을 주선하다가 붙잡혀 죽었다.  그 집터가 이곳에 있었는데 파서 헤쳐버
       렸다고 하며 그 당시 화약을 빻았던 절구통이 지금도 남아서 뒹굴어 다
       닌다.

전설 : 혁명을 거사하려고 무기를 운반하는데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상여로
       연춘리 쪽에서 와서 며칠마다 장사를 지내며 무기를 묘로 위장하여 보관
       하였다 하며 이곳에 사는 안씨들과 한씨가 가담했고 윤씨가 살았는데 일
       부는 가담했고 가담 안한 윤씨의 고발로 붙들렸다고 전해진다.  남응중
       의 누이가 있었는데 응중에게 벼 한말 방아를 찧어서 쌀 한말 나오거든
       거사를 시작하고 만약 한말에서 조금이라도 빠지면 기다리라고 했는데
       벼 한말을 방아찧으니 아홉되가 나오므로 한되 더 나올 시기를 참지 못하
       고 거사를 시작하려다 실패했다고 한다. 

대산 : 싸리재, 싸리재 밑의 마을.

싸리재고개 : 대평리에서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산이 높
       고 깊어서 싸리가 고복같이 즐비하게 있다 한다.

안각골 : 안갓골.  안강골이라 부르고 평전말 남쪽에 있다.  
       안씨의 강당터가 있었다.

대야촌(大冶) : 댓골, 대야동이라 부르며 옛날에 철의 일을 하던 큰 대장간이 있
       었다.

장사터 : 옛날에 큰 부자가 살았는데 입장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노적골 : 옛날에 이곳에서 놋그릇을 만들고 특히 놋젓가락을 많이 만들었다고 한
       다.

조고리골 : 조골이라고도 하며 도적골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도적들이 많이 있었
       다 하고 쇠를 채취했다고도 한다.

갈월넘이 : 진천군 갈월로 넘어 다니는 고개.

지장골 : 지장을 심었던 골이라 하며 궐터가 있다.

불부골 : 철을 생산하기 위하여 불무하던 골.

점말 : 질그릇과 옹기를 생산하였다.

챙경이골 : 공인(工人)들이 살던 곳.  철을 생산하는 철공인, 그릇을 생산하는
       공인, 장이들이 이곳에 모여 집단으로 거주했다.

용어물 : (전설) 물맛이 좋고 물이 잘 나오는 샘인데 어떤 사람이 이 우물가에
       서 개를 잡아 이 물에 씻으므로 샘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씩 
       나온다.

 

 

 

'慰禮城 地名由來'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인,양지현....  (0) 2009.02.04
용인 마수성, 독산책  (0) 2009.02.04
위례성...마고  (0) 2009.02.04
직산 위례성설  (0) 2009.01.12
입장면---지명유래  (0) 2009.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