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송원리 백제 고분군

吾心竹--오심죽-- 2009. 1. 6. 18:33

행복도시 송원리 백제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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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산책 | 2007/11/27 (화)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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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9일,
도하 각 신문과 방송에서 일제히 행복도시 첫마을 부지에서 발견된 백제 고분군에 대한 뉴스가 세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골자는 한성시기 백제(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기원전 18년에 건국하였다 하므로 한성시기는 기원전 18년부터 475년까지가 되나 백제가 국가로 성립된 시점은 고고학적으로 보아 기원후 3세기 중엽 혹은 후반이므로 대략 250~475년 사이가 된다) 고분군에서 발견된 횡혈식석실묘 가운데는 가장 규모가 크다는 것.
고분군을 방문하여 관찰한 바를 토대로 이 고분군의 백제사 상의 의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송원리 고분군은 5세기 초~475년 무렵 사이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조성된 것으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여타 한성시기 백제 고분군과 달리 앞선 시기의 분묘가 없이 등장하였다는 점. 이는 백제의 중앙세력이 지방에 대한 지배를 실현하기 위하여 새로운 거점으로 육성한 세력의 고분군이라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2. 송원리 고분군은 묘제(제도화된 무덤 형태)로 보아 주구 토광목관묘, 수혈식석곽묘, 횡혈식석실묘 등이 순차적으로 조영되어 군집을 이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 주목을 받은 무덤은 16호 횡혈식석실묘이다. 횡혈식석실묘는 파장자 가운데 신분이 높은 자들의 것으로 백제 중앙의 후원을 배경으로 지역을 통할하던 토호들일 것이다.
3. 16호 횡혈식석실묘는 규모가 1변 4.75m이고 천장이 없어지고 벽만 남은 깊이가 2.7m에 달한다.  정사각형 평면에 궁륭상 천정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실의 각 벽은 밖으로 약간 휘어져 호상(弧狀)을 이루는 이른바 동장기법(胴張技法)으로 되어 있다. 동장기법은 벽돌로 무덤을 만든 전실묘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으로 백제와 시기적으로 공간적으로 인접한 예는 낙랑지역의 전실묘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16호 석실묘는 낙랑 전실묘 기법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무덤방으로 들어 가는 연도와 그 바깥의 묘도가 석실의 바닥에 비해 높아 경사를 이루고 있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석실이 천정부를 제외한 벽체 부분이 모두 지하에 구축된 까닭에 나타난 현상이지만, 이러한 예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석실묘 특징으로서 일본의 이른바 초기형 횡혈식석실묘의 그것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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