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천안 청당동 주구묘군

吾心竹--오심죽-- 2009. 1. 6. 18:31

천안 청당동 주구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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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산책 | 2008/04/25 (금)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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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서부지역 원삼국시대 묘제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난 유적이다. 1986년 주민의 신고로 유적의 존재를 알게 된 국립중앙박물관이 1990년 제 1차 조사를 필두로 이후 매년 한 차례씩 1994년까지 모두 5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원삼국시대 주구묘 25기를 확인하였다. 행정구역상 충남 천안시 청당동 산 97-1·전76-2번지 일대에 해당하는 표고 60m 가량의 얕은 설상(舌狀)의 구릉 정상부를 제외한 경사면에 조성된 주구묘는 토광목관으로 된 매장주체부를 경사면의 윗 방향 및 양 측면을 감싸도록 ┌┐모양으로 배치하였다.
이런 형태의 주구묘는 이후 청주 송절동(松節洞), 청원 상평리(上坪里)·송대리(松垈里), 천안 신풍리(新豊里) 등 인접한 여러 곳에서도 확인되어 원삼국시대 마한지역 주구묘의 전형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사예가 많아지면서 주구의 형태는 지역 혹은 입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 대체로 금강 이북에서는 ┌┐모양이 우세하나 중서부 해안지역 및 금강이남 지역에서는 사방을 막은 □ 형이나 원형 등이 많은 양상을 보인다. 주구는 매장주체부를 덮은 봉분(封墳)의 형태나 범위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은 물론이다.
청당동 주구묘의 시기는 기원후 2세기후반~3세기 후반경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중서부지역의 여타 원삼국시대 주구묘 역시 이와 거의 같은 시간대로 보인다. 한강유역 및 중서부지역에서는 아직 기원전 1세기~기원후 2세기 사이의 묘제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청당동을 필두로 확인되기 시작한 원삼국시대 주구묘는 그간 그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던 한강유역의 인천·용인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범마한지역의 묘제로 이해할 수 있으며, 면(面) 단위 이상의 각 지역 행정중심지 마다 1개군(群)씩 분포하는 정형성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원삼국시대 마한사회의 국읍(國邑) 혹은 중심읍락(邑落)의 분포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주구묘군은 백제의 국가 성장 및 영역확대 과정에서 대부분 소멸되나 일부는 백제의 지방지배 거점으로 편제되어 이후 새로운 후속묘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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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백제 횡혈식석실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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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산책 | 2008/02/20 (수)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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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2일, 판교 신도시 건설 부지에 포함된 성남시 삼평동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한성시기의 백제 횡혈식석실묘 9기가 새로이 확인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7년 3월경에 시작된 이번 발굴조사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2월 19일 현장을 실견한 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석실묘의 구조적 특징과 시기
횡혈식석실묘는 묘실의 평면형태에 의해 정방형과 장방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번에 조사된 9기는 모두 장방형 평면에 연도가 우측(입구에서 바라볼 때)에 달린 것이다. 이러한 평면형태에 의해 천장부는 짧은 벽을 긴벽에 기대어 올라오면서 점차 좁히는 이른바 변형 궁륭식(혹은 아치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 같은 천장 결구방식은 공주 금학동 고분군 등 지금까지 웅진기(475~538년)에 유행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그러나  토기로 보아 가장 이른 것으로 판단되는 5호묘는 4세기 후반경까지 소급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늦은 6호묘의 경우도 5세기 후반보다 더 내려 볼 수는 없어, 웅진기의 변형 궁륭식 천장이 한성기에 이미 등장하였음이 분명해졌다. 이로써 한성기에는 화성 마하리 고분군에서 확인된 바 있는 방형 평면에 궁륭상 천장을 가진 석실과 함께 판교의 경우와 같은 장방형 평면의 변형 궁륭상 천장을 가진 석실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2. 금제 화형장식이 가진 의미
판교 삼평동 6호묘에서는 금판을 오려 꽃모양으로 만든 장식이 출토되었다. 흔히 금화식(金花飾)으로 부르는 이러한 장식은 공주 금학동 24호 석실, 서천 추동리 A-27호 석실, 군산 여방리 82호 석실 등에서 알려진 바 있다. 이들은 모두 그 시기가 웅진기에 해당되는데, 판교 것은 그 형식상 웅진기의 예들보다 분명히 고식에 해당되는 특징을 갖추고 있다. 금화식은 추동리 출토예로 보아 신분을 나타내는 관(冠) 장식임이 틀림없다. 사비기(538~660년)에 들어 나타나는 것으로서 4위 이상의 고위 관리가 착용하던 은제관식(銀花冠飾)이 등장하기 이전 단계의 중앙귀족들의 관장식으로 볼 수 있다.
한성시기에는 이러한 금화식과 함께 공주 수촌리, 익산 입점리, 서천 부장리, 고흥 안동 등의 고분에서 출토된 바 있는 금동관도 존재하였다. 금동관은 부장한 무덤에서는 도검, 화살촉, 마구 등 다량의 무기들도 함께 부장된 반면 금화식이 나오는 무덤에서는 그러한 무기가 보이지 않아 주목된다. 금동관 소유자는 지방의 유력한 지배자인 반면 금화식 소유자는 중앙귀족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3. 판교 석실묘의 백제사상의 의의
한성시기 백제의 중앙귀족들의 지역적 분포 및 편제방식등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기존에 알려진 지방 고분군에서 나온 금동관 소유자와의 비교를 통해 백제 지방지배의 진전 과정을 잘 보여주는 일급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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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탕정 명암리 원삼국 분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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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산책 | 2007/12/03 (월)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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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탕정면 명암리 일원에는 삼성전자의 디스플에이 공장 신축과 더불어 삼성전자 타운이 조성되고 있는 곳이다. 이를 위한 기반시설 공사 구역에 포함된 본 유적은 2006년 4월부터 2007년 12월에 이르기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충청남도역사문화원 조사).
이 유적에서는 원삼국시대의 분묘군이 확인되었다. 경기 및 충청지역의 원삼국시대의 분묘는 주구토광묘로 대표되는데, 토광 안에 목관이나 목곽을 두고 주위에 'ㄷ' 형이나 'ㅁ'형의 구(溝)로써 무덤 구역을 표시한 것이다. 명암리는 탕정면의 소재지인데, 지금까지 확인된 원삼국시대 분묘군들은 대개 현재의 면단위 이상의 행정중심지에 분포하는 정형성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명암리에서는 조사시점을 달리한 3개의 지점에서 주구토광묘 63기와 주구가 없는 토광묘 76기 등 모두 139기가 드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원삼국시대 분묘군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명암리 분묘군은 지금의 탕정면 혹은 아산시 일원에 존재하였던 소국(小國)의 중심 취락 주민들의 분묘역으로 이해되는데, 인접한 또 다른 소국의 분묘군인 천안 청당동 분묘군과는 약 9km 떨어져 있다. 이러한 분묘군의 공간적 분포 양상을 통해 당시 소국들의 분포를 짐작할 수 있다.
명암리 분묘군의 시기는 토기 등의 출토유물로 보아 3세기~4세기 1/4분기 경으로 비정된다. 이 시점 이후의 분묘는 석곽묘 1기에 불과한 점에서 4세기 전반경에 백제의 중앙세력에 의해 이 소국은 소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인접한 청당동 역시 명암리의 경우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들 종래의 소국에 대신하여 천안 용원리 백제분묘군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다.
이러한 분묘군의 변천은 결국 백제의 영역 확대와 지방편제 과정을 반영하고 있는 자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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