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동 고분군
이 고분군은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가락동에 걸쳐 있는 것으로서 한성시기 백제의 중심 분묘역이다. 1916년도 발간『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게재된 분포도에 의하면 당시 지상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분묘는 “갑총(甲塚)”으로 명명된 봉분이 토축(土築)으로 된 것이 23기, 그리고 “을총(乙塚)”으로 명명된 봉분이 적석으로 된 것이 66기 였다.
발굴조사는 1911년 9월 야츠이(谷井濟一) 등에 의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봉분의 경사가 완만한 원분(圓墳)으로서 봉분 표면 일면에는 냇 돌을 입혔으며, 매장주체부는 석곽이 없이 지평면 상에 목관만을 안치하고 흙을 덮은 양상으로 토기 파편 등이 발견되었다고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그 후 1916년도에 조사된 석촌동 “제 1 적석총(積石塚)”은 높이 약 6m, 직경 약 27m의 규모로 기록되어 있을 뿐 그 밖의 자세한 양상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1917년도 조사된 “석촌리 6호분”, “석촌리 칠호분”은 봉분이 서로 연결된 것으로서 6호분은 매장주체부를 적석하고 봉토를 덮은 후에 분구 표면을 할석으로 즙석(葺石)한 방대형(方臺形)이고 7호분은 매장주체부에는 적석이 없으나 분구면에는 역시 할석이 즙석되어 있었다 한다. 이 때 “가락리(可樂里) 2호분”도 함께 조사되었는데, 이 고분은 산사면에 입지한 중앙 연도식의 횡혈식석실묘로서 출토유물은 소개되어 있지 않다. 1975년도 잠실지구유적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조사된 가락동 3, 4, 5, 6호분과 같은 성격의 6세기 중엽 이후의 신라 횡혈식석실묘로 판단된다.
1969년도에는 봉토분인 가락동 1호분과 2호분이 발굴조사 되어, 석촌동․가락동 고분군의 봉토분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목관 또는 옹관 등 다수의 매장주체부가 서로 다른 시점에 조영된 후 하나의 봉토를 덮어 씌워 표면을 즙석한 것인데, 이는 1911년 최초로 조사된 것과 같은 구조임을 알 수 있는데, 역시 이와 동일한 봉토분으로는 1976년도에 조사된 석촌동 5호분과 석촌동 파괴분이 있다. 1974년에는 서울대학교박물관·고고학과에 의해 일제강점기부터 그 존재가 잘 알려져 왔던 석촌동 3호 및 4호 적석총에 대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3호분에 대해서는 정비 복원을 위하여 1983과 1984년에 재조사가 있었다. 그 결과 3호분은 기단부의 폭이 55.5 x 43.7m에 달하는 기단식적석총(基壇式積石塚)으로서 후대의 교란이 심하여 매장주체부는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축조 기반층으로 판단되는 점토 섞인 자갈층에서 동진대(東晋代)의 청자 반구호 구연부편이 출토되어 근초고왕릉(近肖古王陵)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4호분은 제 2기단 위에 평면형이 횡혈식석실묘와 유사한 유구가 남아 있으나 훼손이 심하여 자세하지 않다. 보고자들은 횡혈식석실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그 내부에 묘광을 파 석곽을 만들고 그 속에 목관을 안치한 것으로 이해하였으나, 기단면 상에서 출토되는 기와편 등으로 미루어 횡혈식석실이 파괴되고 그 기초만 잔존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출토유물가운데 견부 문양대가 없는 경질의 직구단경호편이 있는 점으로 보아 한성 II기의 비교적 늦은 시기에 해당 비정할 수 있다.
1986년도에는 석촌동 3호분 정비 복원과 관련하여 민가등이 철거된 그 동쪽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토광목관묘, 즙석봉토묘, 옹관, 석관묘, 파괴적석총 등의 다양한 묘제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1987년도에는 4호분과 5호분 사이의 정비 복원지역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되어 석촌동 1, 2호분 등의 적석묘와 함께 여러 유구가 조사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석촌동 고분군에서는 토광묘, 옹관묘, 봉토묘, 기단식적석묘 등 다양한 백제의 묘제가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3세기 이후의 토광목관묘이며, 3세기 중·후엽경에는 여러 개의 매장주체부를 하나의 봉분으로 덮은 목관봉토묘가 등장하고, 4세기 후반경에 고구려 기단식적석총과 동일한 형태의 적석묘가 출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훼손으로 인해 유구의 파악이 어려운 부분이 많아 묘제의 유형 파악이나 각 묘제의 출현 시점 등을 둘러싼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 및 1988년 서울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고분군을 관통하던 도로(“백제고분로”)를 지하화하고 석촌동 3호분, 4호분, 5호분 등을 복원하는 한편 발굴과정에서 새로 발견된 적석총 등을 정비하여 공원화 하여 사적 제 24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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