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 歷史 探訪-2

다산 정약용기념관 생가 묘소...한강 두물머리(양수리) 탐방

吾心竹--오심죽-- 2019. 8. 12. 15:47
다산 정약용기념관 생가 묘소...한강 두물머리(양수리) 탐방
다산 정약용이 쓴 자찬묘비명 광중본(Self 묘비명...자신이 자기의 묘비명을 직접 씀)에도 서용보의 이름이 등장하네요.

평생 많은 책을 쓴 다산...
자신의 묘비명도 직접 쓰고
죽어서 남들이 자신을 추모하며 평가 받는게 싫어서 아님 자신이 박학다식한데 굳이 남한테 부탁하기 싫어서 암튼 대단한 분입니다.

백제 첫도읍지
<직산 위례성-제원루기>를 쓴
조선 세종때 서거정의 글을 혹독하게 비판한 <다산의 아방강역고 위례고>와 서거정의 후손인 서용보와의 끈질긴 악연으로 18년간 긴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이 얼마나 한이 덜 풀렸으면 이빨 갈리는 서용보를 죽어서 땅속 광중까지 그 이름을 가지고 갈까 그 심정을 한 번 헤아려 봅니다.

그리고 <아방강역고 위례고>를 쓰면서까지 서용보의 선대 조상인 서거정까지 싸잡아 욕하시니 제발 무덤속에서 천주교의 한없는 사랑을 베푸시고 편히 쉬세요.

그리고 세종대왕이 세종실록지리지에 직산이 백제초도라고 기록했고 온조왕사당도 충청도 직산현에 세워 향축을 하사하여 제향도 올리라고 했으니 세종대왕을 나무라시고 무덤속에서 위례고를 천천히 재검토하시고 그 노여움을 푸시길 바랍니다.

다산님 때문에 백제초도 직산 위례성을 부정하여 얼마나 많은 한국사 역사학을 연구하는 수많은 분들이 생고생하는 줄 아세요?

저는 <위례고>를 읽는 순간
다산이 저술도 많이하고 실학의 완성자 서울대학교에 최초의 경제학자 운운하는데
다산이 졸장부처럼 느껴졌고
더 이상 다산의 책조차 펴보기도 싫었습니다.

그 이유는 위례고를 이성적 논리적으로 서술했다고 보기 어렵고 서용보에게 한을 품고 서거정 정인지를 감정적으로 욕보인 모습에 큰 실망했습니다.

제발 무덤속에서 세종대왕을 꾸짓고 원망하시길 바랍니다.

<백제초도 위례성은 직산이 맞습니다>
직산현, 직산읍~성거읍~입장면~성환읍 일대의 땅에서 발굴되는 백제초도기 고고학 유적과 유물이 서서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다산선생님 보다 오심죽 제가 정확히 200년 늦게 태어났네요.
*여유당
*다산 정약용, 자찬묘비명(Self 묘비명)

백제 첫도읍지 <직산 위례성과 제원루>를 쓴 조선 세종때 서거정의 글을 혹독하게 비판한 <다산의 아방강역고 위례고>와 서거정의 후손 서용보와의 악연으로 18년간 긴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이 얼마나 한이 덜 풀렸으면 서용보를 자찬묘비명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하네요.
*다산의 아방강역고 위례고...서거정이 삼국사기 한권도 일찍이 펴보지 못했으니...
*여지서를 이어받아 드디어 없어지지 않는 모범을 만들었다. 이로써 길가의 작은고을(직산현, 백제첫도읍 위례성)에 그럴듯한 서울의 이름을 씌웠다...위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