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 歷史 探訪-2

몽양 여운형 생가, 기념관 탐방...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곡(妙谷)

吾心竹--오심죽-- 2019. 8. 12. 15:32
몽양 여운형 생가, 기념관 탐방

몽양 여운형(1886~1947)
1886년 5월 25일 경기도 양근군(楊根郡, 현재의 양평군) 양서면(楊西面) 신원리(新院里) 묘곡(妙谷)에서 아버지 여정현(呂鼎鉉)과 어머니 경주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충북 단양(丹陽)에서 잉태 되었으나 출생은 묘곡임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호는 몽양(夢陽) 동생은 여운홍(呂運弘)이다. 집안은 대대로 소론파에 속하는 양반 가문이었다. 어머니가 태몽으로 태양을 안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호를 몽양(夢陽)으로 하였다. 1891년부터 1900년까지 향리에서 조부에게 한학을 수학하였다. 1899년 아버지의 명으로 용인군 유세영(柳世永)의 장녀와 결혼하였다.
해방 당일 총독부와 5개조에 합의한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해 위원장이 되었으며, 이후 1945년 8월말까지 전국 145개 시 ・ 군에 건국준비위원회 지부가 만들어졌다. 건국준비위원회는 건국동맹을 기초로 조직되었으며, 여운형이 테러로 와병 중일 때 급조된 조선인민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1945~47년간 조선인민당 ・ 사회노동당 ・ 근로인민당 당수를 지냈으며, 1946~47년간 김규식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했다. 남한에서 좌우합작을 성공한 후 이를 남북연합으로 연결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피격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혈농어수...피는 물보다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