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 歷史 探訪-2

택당 이식 묘소와 택풍당 탐방...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314 (쌍학안골2길 66-1)

吾心竹--오심죽-- 2019. 8. 12. 15:40
택당 이식 묘소와 택풍당 탐방...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 314 (쌍학안골2길 66-1)
이식은 1610년(광해군 2)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1613년 세자에게 경사(經史)와 도의(道義)를 가르친 정7품에 해당하는 설서(設書)를 거쳐 1616년 북평사(北評事)가 되었다. 이듬해에 선전관을 지냈다.

1618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정계에서 은퇴하여 경기도 지평(砥平:지금의 양평군 양동면)으로 낙향했다. 그 후에 남한강변에 택풍당(澤風堂)을 짓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했다. 호를 택당이라 한 것은 여기에 연유한다.
1621년 관직에 나오라는 명을 계속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왕의 명령을 어겼다는 죄로 구속되기도 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교분이 있었던 친구들이 조정의 주요직에 진출하게 되자 발탁되어 이조좌랑에 등용됐다. 이듬해에 부수찬·응교·사간·집의 등을 역임했다.

1625년(인조 3) 예조참의·동부승지·우참찬 등을 역임했고 다음해에 대사간·대사성(大司成)·좌부승지 등을 지냈고 1632년까지 대사간을 세 차례 역임했다.

임금의 종실을 사사로이 기리고 관직을 이유 없이 높이는 일이 법도에 어긋남을 논하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 간성현감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633년에 부제학을 거쳐 1638년대제학과 예조참판·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이식은 1642년에 김상헌(金尙憲)과 함께 청나라를 배척할 것을 주장한다고 하여 중국의 심양(瀋陽)으로 잡혀갔다. 돌아올 때에 다시 의주(義州)에서 청나라 관리에게 붙잡혔으나 탈출하여 돌아왔다.

1643년 대사헌과 형조·이조·예조의 판서 등 조정의 주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646년 별시관(別試官)으로 과거 시험의 문제를 출제하였는데 그가 출제한 문제에 역모의 뜻이 있다고 하여 관직이 삭탈되기도 했다.

이식은 문장이 뛰어나 신흠(申欽)·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와 함께 조선 한문 4대가로 꼽혔으며 그의 문하에서 많은 문인과 학자가 배출됐다.
※백제초도 온조왕 위례성시대(BC18~BC5) 13년을 직산땅을 지나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한시로 표현함^^

문집으로는 『택당집』이 전하는데 한시의 모든 갈래에 두루 능숙했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체로 정경의 묘사가 뛰어나고 감상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풍광을 읊은 시가 많다. 고체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오언율시에 특색을 발휘했다.

『초학자훈증집(初學字訓增輯)』·『두시비해(杜詩批解)』 등을 저술했으며 『수성지(水城志)』·『야사초본(野史初本)』 등을 편찬했다.

김택영(金澤榮)에 의하여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의 문장은 우리나라의 정통적인 고문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에는 「사간원차자(司諫院箚子)」 등의 6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여주의 기천서원(沂川書院)에 제향됐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1686년 영의정에 추증됐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택당 이식 묘역에서 본 택풍당^^
*택당 이식의 묘소...명당 터로 전한다^^
*택당 이식 묘소^^
*보수의 괘-澤風大過

현재 한국의 보수가 처해 있는 상황은 택풍대과(澤風大過) 괘(卦)로 보인다.

주역 64괘 중에서 28번째 괘이다.
위에는 연못의 물이 출렁거리고, 아래에는 바람이 불고 있다. 집의 기둥뿌리가 흔들리고 서까래는 천정에서 하나씩 떨어지는 형국이다. 여차하면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 괘는 아주 위태로운 상황을 보여주는 괘이다. 지진이 났을 때 공포를 느끼지 않을 사람 없다. '대과(大過)'라는 말 자체가 '크게 오버했다'는 뜻을 담고 있지 아니한가. 그러나 인생살이에서 대과 없는 사람 없다.

조선 역사에서 훑어 보면 이 택풍대과 괘에 필이 꽂혔던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 1647)이다. 조선의 4대 문장가 가운데 한 명이다. 4대 문장가인 '월·상·계·택' 가운데 '택'이 바로 택당을 가리킨다.

호를 택당이라고 한 이유는 주역의 택풍대과 괘의 택에서 따온 말이다.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쌍학리에 지어 놓았던 정자 이름도 택풍당(澤風堂)이다.

나는 아직 택풍당을 가보지 못했지만 이곳을 답사한 이종묵 서울대 교수의 글에 의하면 '양배추 속에 쌓여 있는 형국'이라서 아주 소문난 명당이라고 한다.

[출처...조용헌 살롱 1100]
*택당 이식선생의 3남...외재 이단하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