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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 온조왕사당 건립, 원래 위치 놔두고 향교 옆 조성 안된다

吾心竹--오심죽-- 2013. 8. 22. 09:51

천안 온조왕 사당복원 위치논란
향토사가 윤종일씨 시의회에 반대의견
2013년 08월 20일 (화) 조한필 기자 chohp11@naver.com
   
 
   
 
"원래 위치 놔두고 향교 옆 조성 안된다"

"역사적 건축물 졸속 결정땐 갈등 초래"

천안시가 복원 추진중인 백제시조 온조왕 사당의 위치가 부적절하다는 반대 의견이 천안시의회에 제시됐다. 사당 복원을 위한 시의회의 공유재산 취득 승인 절차를 앞둔 시점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는 올해 예산 13억원으로 온조왕 사당 부지 매입에 나서 최근 주민설명회와 자문위원회를 거쳐 직산향교와 직산관아 인근 부지로 잠정 확정했다.

그러나 위례문화원 윤종일 원장은 “세종실록지리지 및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온조왕 사당 위치는 그 곳이 아니라 직산읍 판정리 산직촌”이라며 “역사적 건축물 복원이 한번 잘못 이뤄지면 쉽게 바로잡지 못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에선 판정리 산직촌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개발이 어렵다는 이유를 대고 있으나 오히려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땅값이 상대적으로 싸고, 제3탄약창·육군본부 등과 협의하며 토지 사용은 풀릴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윤 원장은 산직촌이 군사작전지역이 아닌데다 온조왕 사당은 사람이 항시 거주하는 시설물도 아닌 만큼 군 당국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천안시 지역의 숙원사업임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면 이곳 복원은 가능한 일이라고 전망했다.

직산읍 판정리 산직촌은 사당의 존재를 입증한 명확한 유물·유적이 발견되진 않았으나, 세종실록지리지의 ‘직산관아 동북방 5리(약 2)’기록에는 부합되는 곳이다. 19세기 자료이긴 하지만 직산현지에도 지금의 산직촌이 있는 ‘용안치(龍鞍峙)’에 사당터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윤 원장은 “사당 복원을 ‘밀어 붙이기식’으로 강행하지 말고 위례산성과 성거산이 훤히 보이는 사당 본래의 터에 세워 천안시의 상징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시의 졸속 행정으로 시민사회의 분열과 소모적 논쟁을 초래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시는 지난달 17일 자문위원회를 열면서 위원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이유로 비공개로 진행했지만 위원회는 시가 이미 결정한 두 개 부지안을 놓고 선택하는 자리였다.

<사진설명>사진은 2011년 온조왕 추모제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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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왕 사당, 후다닥 지을 게 아니다

데스크의 주장
2013년 07월 30일 (화) 조한필 기자 chohp11@naver.com
   
 
   
 
조한필 부국장 <천안·아산>

천안시가 백제시조 온조왕 사당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안에 부지를 마련하고 내년 착공하겠다는 방침이다. 시는 이를 소리 소문 없이 추진해 왔다. 지금껏 그 흔한 보도자료 한 번 내지 않았다.

올해 예산에 부지비 13억원이 책정한 걸 보면 적어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준비해 온 듯하다.

왕조왕 사당 건립은 천안시의 ‘직산 백제 첫 도읍지 선양사업’의 중간 결산으로 볼 수 있다. 천안시는 523m 고지에서 첫 도읍지 위례성(慰禮城) 흔적을 찾으려 수억원을 쏟았지만 2000년 전 유물이나 유적지를 확인하진 못했다. 학술세미나를 열기도 했지만 교수 등 전문연구자들로부터 ‘바라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

천안시는 직산 위례성설이 학계에선 설득력을 얻진 못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대대적으로 천안이 백제 첫 도읍지임을 알리고 있다. 2010년부터 옛 직산현 관아에서 매년 9월 온조왕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 시는 지난해 28개 읍면동 주민자치센터를 돌며 ‘천안 위례성의 역사적 의미’특강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강사들이 대부분 직산위례성설을 믿지 않는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소속이다. 이 연구원은 지난해 펴낸 학술조사 보고서에서 “위례성에선 백제 첫 도읍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냈다.

직산읍은 아예 별도의 ‘첫 도읍지’특강까지 마련하는 상황이다. 천안시장은 대학ㆍ기관을 돌며 하는 천안학 강의에서 이를 알리고 있다.

지난해 3000만원 들여 다큐멘터리 영상물도 만들었다. 천안시는 시민 모두에게 천안이 백제의 첫 도읍지임을 알리겠다는 각오다.

온조가 BC 18년 고구려에서 남하해 백제를 어디다 처음 세웠느냐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향토사학계는 온조가 직산에 도읍을 정했다가 13년 만인 BC 5년 ‘한산(漢山)’ 즉 지금의 경기도 광주나 성남시 남한산성으로 옮겨간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천안은 13년간의 백제 첫 도읍지였다는 것이다. 그 ‘13년’을 잡기 위한 시의 노력은 집요했지만 흔적 찾기란 쉽지 않다.

백제 도읍지를 주장하는 서울 송파구처럼 풍납토성 등 평지성(城)이 없고, 석촌동ㆍ방이동 고분군도 없다. 연고성을 내세우는 데 힘이 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온조왕 사당 복원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온조왕 사당은 “직산현 관아 동북 5리에 있는데 세종 11년(1429년) 7월 세웠고 봄ㆍ가을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서거정(1420~1488)은 시 ‘제원루’에서 ‘왕조왕 사당(始祖祠)은 단풍나무에 가리우고…’라고 썼다. 15세기 직산에 온조 사당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16세기 왜란을 겪으면서 폐허화되자 1603년 충청감사가 조정에 복구해 줄 것을 청했다. 선조는 “지역 형편에 따라 수리하라”고 명한다. 이후 사당의 존재는 확인하기 어렵다. 19세기 간행된 직산현지는 그 터가 관아 뒤편 용안치(龍鞍峙) 중턱에 있었다고 했다.

온조 사당은 인조 때 만든 것이 남한산성에 이미 있다. 한 역사 인물을 기리는 사당은 여러 곳에 있을 수 있다. 그 인물과 연고 있는 지역은 어디든지 지을 수 있다. 지자체마다 ‘역사 끌어대기’가 한창인 요즘, 천안이 가만히 있을 순 없다.

그러나 사당 복원은 돈이 많이 든다. 앞으로 사당과 부속 건물을 짓고, 주위 조경을 하려면 땅값보다 몇 곱절 돈이 든다.

이런 일은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 그 필요성에 대한 지역적 합의가 이뤄진 후 지지와 후원 속에 진행돼야 한다. 밀실에서 입지를 결정해 후다닥 해치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