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安 文化財 探訪

천안 문화재 탐방-14...후령군 이간사당~중구봉 명덕리사지~개목이고개(구항령), 도조 이삼평 비~취암산~은파산 노을

吾心竹--오심죽-- 2012. 12. 27. 18:15

<<< 천안 문화재 탐방-14...후령군 이간사당~중구봉 명덕리사지~개목이고개(구항령), 도조 이삼평 비~취암산~은파산 노을 >>>

 

 

 

 

 

 

* 숭도사 후령군 이간 사당(崇悼祠 厚寧君 李衦 祠堂)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 명덕리 142-2(명덕2길 26)

 

후령군 이간의 사당은 천안시 동남구 북면 명덕리 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예전의 사당을 증개축하였다. 건물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의 규모가 일반 석재의 크기에 비해 상당히 커서 조선시대 왕실가문의 품격과 위상을 보여준다. 나머지 기둥과 기와 등은 현대식으로 지었다.

 

* 조선왕조실록 문종 즉위년 경오 (1450, 경태1) 10월 6일(병자) 후령군 이간의 졸기

후령군(厚寧君) 이간(李衦)이 졸하였다. 이간은 태종(太宗)의 서자(庶子)로서 나이 12세에 군(君)에 봉(封)해지고 계자(階資)가 가정 대부(嘉靖大夫)이었는데, 이듬해에 예(例)대로 정1품에 올랐다. 나이 15세에 어미의 상(喪)을 만나서 병에 걸리니, 세종(世宗)이 이를 듣고 항상 궁중(宮中)에 두고 의원(醫員)으로 하여금 치료하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32세였다. 임금이 육선(肉膳)을 거두고 조회(朝會)와 저자[市]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치조(致弔)하고 치전(致奠)하여 예(禮)대로 장례하였다. 시호(諡號)를 ‘희도(僖悼)’라고 내려 주니, 소심(小心)하여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을 희(僖)라 하고, 중년(中年)이 되어 일찍 죽은 것을 도(悼)라 한다. 아들이 없었다. 【원전】 6 집 294 면

 

* 태종(太宗)의 7남으로 배위는 수안군부인(遂安郡夫人) 평산신씨(平山申氏)와 동양군부인(東陽郡夫人)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신씨는 딸 하나만 낳았고, 조씨가 2남 1녀를 낳았다. 시호는 희도(僖悼)이다. 자식은 정해도정(貞海都正) 이집(李緝)이 있다.

 

* 이간은 태종대왕의 칠남으로 호는 송운(松雲)이니 후령군을 봉하였다. 천성이 고매하고 의리가 있더니 단종이 손위하자 병을 청탁하여 조정에 나가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 었는데 그는 얼마 후에 절사하였다. 설해(雪海) 이의만(李義萬) 그의 죽음을 사육신과 같다 하였고 조정에서는 시호를 희도라 하고 부조묘를 명하였다.

 

* 본관은 전주(全州)로 태종(太宗)의 제11자이며, 어머니는 최씨(崔氏)이다. 시호는 희도(僖悼)《시흥현읍지》(1899) 능묘조에 「후령군묘, 태종대왕의 제 11자로 이름은 간이며 군 서쪽 15리인 박달리에 있다」고 하여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에 있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일제가 이곳에 군용지를 개설하자 1941년 2월 22일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산 19번지로 이장하였다. 사당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 명덕리에 있다.  

 

 

 

 

* 북면 명덕리에서 본 작성산성 // 

 

* 명덕리 절 터...성거산 중구봉 명덕리사지 // 

 

 

 

 

 

 

*  성거산 중구봉 명덕리사지(重九峯 明德里 寺址)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 명덕리 537, 538, 539, 495

 

명덕리 사지는 안고시마을 북동쪽에 위치하며, 사지(寺址)는 남향한 대지 위에 건물터와 5단의 축대위에 있다.

절터 추정되는 면적은 약 2,500여평이며, 뒤편엔 신한은행연수원이 들어서 있다. 축대가 잘 남아있고,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중앙에 민묘가 들어서 있는데 대웅전 터, 중심건물의 터로 추정된다. 민묘 위에 또 민묘가 있고 산자락에 다시금 축대의 흔적이 있어 이곳은 산신각이 있었던 터로 추정된다.

 

밭에는 수많은 기와편이 수습되는데 격자문, 어골문, 무늬없는 기와편이 많다. 사찰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와 자기편 역시 많이 발견된다. 안고시마을은 C자형의 분지형 지형으로 동쪽 입구, 수구(水口)를 막으면 천혜의 성곽처럼 보여진다.

원주 치악산, 조계산 송광사처럼 밖에서 절의 입구가 잘 보이지 않으며 수양 도량으로 명당중의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고 판단된다. 명덕리 사찰은 동서의 양옆으로 계곡을 끼고 있으며 성거산 주맥의 남쪽 줄기가 중구봉을 이루고 연춘리 복구정으로 이어진 산의 능선은 목천 기우제단이 있던 중구봉에 위치하여 복구혈(伏龜穴)의 명당 터라고 불린다.

 

서쪽 산너머엔 목천 용연저수지가 있고 천안의 진산 왕자산과 유려왕산(태조산) 고려 태조가 말을 매었다는 마점이 위치한다. 또한 서쪽 목천면 서흥리 석탑이 있고, 절터가 남아 있다. 목천 서흥리 동네 입구엔 백제시대 석곽무덤도 조사 보고된 바 있다. 또한 북면 매송리 개목이고개 신흥농장 위쪽 중단부에 백제 횡혈식 석실분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명덕리 사지에 석탑도 남아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일제강점기에 외부로 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면 명덕리는 서쪽으로 아홉사리고개, 북으로 만일령, 부소령(부수문이), 북면 대평리 탑골 보현인탑지, 곡간리의 사리재, 남으로 개목이고개(구항령)와 연결되는 고대의 교통로상에 있었다.

 

 

 

 

 

 

 

 

 

 

 

 

 

 

 

 

 

 

 

 

 

 

 

 

 

 

 

 

 

 

 

 

 

 

 

 

 

 

 

 

 

 

 

 

 

 

 

 

* 북면 명덕리 마을 입구에서 본 좌측의 작성산과 우측의 은석산...가운데 개목이고개, 일명 구항령...의구비 전설 //

 

 

* 개목이고개...구항령...//

 

* 북면 매송리 느티나무...개목이고개를 지키는 듯...//

 

* 임진왜란 때...일본 도공으로 끌려갔던 이삼평 추모비 //

 

 

 

 

 

 

 

* 일본 도자기의 원조...이삼평 //

 

 

 

 

 

 

 

 

* 천안시 동남구 북면 매송리 마을유래와 의구비...개목이고개 비, 구항령...의로운 견공 //

 

 

 

 

 

 

 

 

 

 

* 백운산에서 본 취암산 능선과 천안온천, 천안 예술의 전당 // 

 

* 목천 기우제단이 있엇던 취암산, 이빠진 산, 배넘이 산...//

 

 

 

 

 

 

* 백운산 백운사 //

 

 

* 백운산에서 본 광덕산 노을...// 

 

 

* 백운산에서 본 취암산...이빠진산, 배넘이산...// 

 

 

* 백운산에서 본 망경산...배방산 //

 

 

 

 

* 백운산에서 본 취암산 //

 

 

 

* 백운산에서 바라본 광덕산의 노을...//

 

 

 

 

 

 

 

 

 

<<< 오심죽...천안 문화재 탐방-14...후령군 이간사당~중구봉 명덕리사지~개목이고개(구항령), 도조 이삼평 비~취암산~은파산 노을...2012.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