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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문화재 탐방-13...청절사 유몽인사당,시비,삼강려비~동성산성~광덕산성~동면 상당사~동면 비석

吾心竹--오심죽-- 2012. 12. 2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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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우당 유몽인 시비...병천면 용두리 //

 

 

 

 

 

* 새로 지은 청절사...// 

 

 

 

 

 

 

 

 

 

 

 

 

 

 

 

 

 

 

 

 

 

 

 

 

 

 

 

 

 

 

 

 

 

 

 

 

* 반폐허가 된 청절사 어우당 유몽인사당...하루 빨리 복구가 이뤄져야...//

 

 

 

 

* 청절사 유몽인사당(淸節祠 柳夢寅祠堂)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560-2

 

청절사(淸節祠) 유몽인(柳夢寅) 사당은 병천면 용두리 조병옥박사 생가 서쪽, 녹동천 건너편 용두리 만화마을 입구 커다란 느티나무 앞 산기슭에 있다. 용두리는 유관순열사의 생가로 더욱 잘 알려진 곳이다. 마을은 고흥유씨들의 집성촌이다. 그동안 거의 방치되어 반파된 상태로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일부 둥근런 주춧돌 7개는 주변에 흩어지고, 지붕은 풍우에 반파되어 무너져 내렸으며, 일부 기둥만 복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가로 1칸, 세로 1.5칸의 맞배집 양식이다. 아우내~청주 오창간의 대로변에 위치한다. 최근 청절사가 훼손이 심해 청절사 사당을 마을 뒤편으로 옮겨 새로 신축했으며, 어우당 시비와 삼강비를 세워 정비하였다.

 

* 유몽인(柳夢寅), 1559(명종 14) 서울~ 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문장가 또는 외교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야담집 〈어우야담〉의 지은이로 유명하다. 본관은 고흥. 자는 응문(應文), 호는 어우당(於于堂)·간재(艮齋)·묵호자(默好子). 사간(司諫) 충관(忠寬)의 손자이며 진사 당(檔)의 아들이다. 1589년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했으며, 1592년 수찬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평양까지 선조를 모시고 따라갔다. 임진왜란을 겪는 동안 명나라 관원을 상대하는 외교적인 임무를 맡아 일했다. 광해군 시절에는 북인(北人)에 가담했으나 인목대비 유폐(幽閉)에 찬성하지 않는다하여 배척되었다. 그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서 은거하던 중 대제학에 추천되었으나, 거절했다. 이로 인해 1623년 인조반정 때 화를 면할 수 있었으나 그해 7월 현령 유응경이 광해군의 복위를 꾀한다고 무고하여 아들 약(瀹)과 함께 사형되었다. 그의 깨끗한 이름을 기려 전라도 유생들이 문청(文淸)이라는 사시(私諡)를 올리고 운곡사(雲谷祠)에 봉양했다. 신원(伸寃)된 뒤 나라에서 의정(義貞)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운곡사를 공인했으며 이조판서에 추증했다. 저서로는 야담집 〈어우야담〉과 시문집 〈어우집〉이 있다.<출처-브리태니커>

 

* 어우야담(於于野談)

조선 광해군 때 어우당 유몽인이 엮은 설화집 이다. 5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은 인륜편, 권2는 종교편, 권3은 학예편,권4는 사회편, 권5는 만물편 이다. 이 책에는 인간 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야사, 항담, 가설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주로 풍자적인 설화와 기지에 찬 것들이 대부분이다.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임진왜란 전후의 생활상이 반영되어 있다. 조선후기에 성행한 야담류의 효시이며, 기술 방법이 과감하고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 어우당 유몽인 선생묘는 경기 가평군 가평읍 하색리 산 81번지의 이방실장군의 묘 좌청룡 자락에 위치

서울 방향에서 구리 지나, 청평을 지나 가평 읍내로 들어서기 전, 좌측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이방실장군의 묘가 있다. 이 묘를 향해 들어가는 입구 가까운 곳에 용묘라고 불리는 유몽인의 묘가 있다. 가파른 산을 5분 정도 올라가면 3기의 묘가 있는데 최상부의 묘가 유몽인의 묘이다. 몇년전에는 허름했는데 4년전쯤에 새로이 돌로 장을 하여 규모가 커졌다. 柳夢寅의 자는 응문(應文)이고, 호는 어우당(於于堂),또는 간재(艮齋) 라고 하며, 본관은 고홍사람이다. 이조 명종 1415년에 태어났다.광해군 4 년인1612년에는 도승지를 거쳐 예조참판이 되고 다시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仁祖反正 당시의 사건에 휘 말려 양주에 도피했다가 붙잡혀 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는 처형되기 직전 유언을 하였는데 내가 죽으면 가평군 군내면 하색촌에 묻되 명당(明堂)이라고 발설하지 말 것이며, 손자 셋에게 이르기를 과거를 보아 급제가 하고 싶더라도 세 형제가 함께 과거에 응시하지 말고 따로 따로 응시해야 된다고 일러주었다. 손자 삼형제는 장성하여 어전시(御前試一입금 앞에서 보는 시험)에 응했다. 조부의 유언을 잊고, 어전대과(御前大科)에서 세사람 다 장원으로 합격했다. 이를 심상히 여긴 왕실에서 조사해 보니 지난 인조반정 당시의 파쟁으로 인하여 참형을 당한 유몽인위 손자임을 알게 되어 이와 같은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려면 필시 훌륭한 산소를 썼을 터이므로 확인하라는 어명이 내려 유몽인의 산소에 당도해 보니 가히 천하명당이요, 百代千孫의 三代정승 자리가 분명했다. 그리하여 장원급제한 三兄弟는 물론이고, 八寸이내 형제까기도 모든 관직을 박탈시키고 하색리에 있는 유몽인의 산소를 파게 되었는데 그 속에는 유몽인이 용(龍)이 되어 이제 곧 일어나려고 하는 중이 었다. 그용은 푸른빛의 서광과 구름을 일으키고 일어나더니 당고개 속으로 달아나는 것을 관졸들이 쫓아가 잡아 죽였다고 전한다. 그후 이 마을 주민들은 유언을 듣지 않고 한꺼번에 장원급제를 하여 용이 되어 승천(昇天)하기 전 에 잡혀 죽었다 하여 용이 나온 명당산소 즉 용묘라고 부르고 있다. <출처:서경풍수지리학회, http://cafe.daum.net/allme1>

 

 

 

 

 

 

 

 

 

 

 

 

 

 

 

 

 

 

 

 

 

 

 

 

 

 

* 동성산성...일명 구리성이 //

 

 

 

 

 

 

* 동성산성(구리성이)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 산16-1

 

* 동성산성(銅城山城, 백두대간 금북정맥 만뢰지맥...해발 238m)

산성

위치

시대

축조방식

둘레

대표 수습유물

銅城山城

(農城)

(구리성이)

동면 광덕~

병천면 도원리

마한~백제

(4~5세기 추정)

테뫼식

토석혼축

500m

승석문 토기호, 난형호, 삼발형, 장란형, 고배뚜껑, 기와편

 

◎ 동성산성은 일명 구리성이라 불린다.

서쪽으로 작성산성, 흑성산성을 마주보며, 동쪽으로 광덕산성, 국사봉산성, 환희산성, 남쪽으로 화계산성, 서림산성, 이 주변을 방어하며 철옹성을 자랑한다.

이곳은 백제와 신라의 국경선으로 치열한 삼국 항쟁기의 역사를 대변한다.

동쪽엔 진천의 도당산성, 남쪽엔 청주 상당산성이 있어 신라의 대당교통로 당항성로와 인접한 지역이다.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른 격전이기도 하다.

동성산성 동쪽, 광덕산성 아랫마을의 지명이 두어만이(두촌)이라 전해지며 백제가 멸망할 때 백제유민 2만명이 이곳에 머물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와의 전쟁 때 끝까지 이곳에서 항거해서 목천 오축성(우,마,상,돈,장) 짐승의 성(姓)을 내린 곳이 바로 목주고을 동성산성~광덕산성~환희산성~국사봉산성~서림산성~작성~세성산성~흑성산성을 연결하는 천혜의 험준함을 가진 곳이다.

동성산성은 산정에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의 테뫼식 토석혼축식 산성이다.

철탑이 이곳을 지나며 경관이 흉물스럽다. 삼한시대 농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 광덕산성(廣德山城)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동면 광덕리 산54, 동면 행암리 산64

 

* 광덕산성(廣德山城, 백두대간 금북정맥 만뢰지맥... 해발 297m)

산성

위치

시대

축조방식

둘레

대표 수습유물

廣德山城

동면 광덕리~행암리

백제

테뫼식

300m

토기편

 

◎ 금북정맥 만뢰지맥이 남으로 뻗쳐 몽각산과 만나며 서쪽 능선으로 광덕리와 행암리의 능선 경계에 있다. 테뫼식 산성, 둘레는 약 300m이다. 산성의 석축이 일부 드러나 있으며 북벽은 토석을 혼용하여 쌓았으나 현재는 윤곽만 뚜렷하고 높이를 추산하기가 어렵다. 남벽은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삭토하였으며 내부에는 흙으로 성벽을 보축하였다. 동,서벽은 토석혼용으로 축조하였고 문지로 추정되는 곳은 동벽의 가운데에 길이 3m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산정엔 평평한 지형이며 우물은 없어 보인다. 전시 인근 계곡에서 식수를 구한 것으로 추정되고, 발견되는 고고학 유물은 낙엽이 많아 찾지 못하였다.

 

남쪽으로 서림산성이 있고, 진천으로 통하는 장교치(將校峙)를 마주한다. 진천 만뢰산 김유신장군의 탄생지와 인접해 있다. 동면 행암리는 백제개국공신 마려(馬黎)의 세거지로 전해오며 목천마씨의 세거지이다. 백제의 후손으로 후백제가 고려에 망할 때 목천을 근거지로 치열하게 항전하던 곳이며 고려 태조가 이를 미워하여 짐승의 성씨로 오축성(五畜姓-우,마,상,돈,장)을 하사(下賜) 하기도 했다.

 

광덕산성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동성산성(구리성)과 동쪽으로 하장토성, 환희산성, 국사봉산성 남쪽으로 서림산성을 잇는 거대한 자연지형 또한 험준한 외성처럼 둘러쳐 있어 진천, 청주의 신라군과 접경으로 당항성로(黨項城路)의 치열한 각축장이기도 하다.

 

* 광덕산성 아래에 두어만이(두촌)는 백제유민 2만명이 머물렀다하여 두어만이라고 불린다.

 

 

 

 

 

 

 

 

 

 

 

 

 

 

 

 

 

 

 

* 동면...상당사 묘역...// 

 

* 공조전서공, 지태주사공, 예조참판공 천장비...상당사 묘역 //

 

 

 

 

 

 

 

 

 

 

 

 

 

* 묘역 전면 좌측으로 서림산성이 우뚝 서있다 //

 

 

* 천안시 동남구 동면사무소...선정비, 기송비 //

 

 

 

* 군수 남계석 청덕선정비 //

 

 

* 일동면장 조세증 기송비 //

 

 

 

 

* 천안시 동남구 동면 화계2리...화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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