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하, 건길지, 대형, 태대형에 대한 짧은 생각 (1/3)
2007.06.06 01:29 | 우리 역사 이야기 | buja100kim
어라하(於羅瑕), 건길지(鞬吉支)는 백제(百濟)에서 임금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최치원(崔致遠)이 신라(新羅) 임금의 칭호(稱號)를 전부 왕(王)으로 통일한데 반하여, 김부식(金富軾)은 오히려 신라(新羅) 고유(固有)의 말을 그대로 썼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40(券第四十) 잡지(雜志) 제9(第九)에 나오는 내용(內容)이다.
그 다음에는 대형(大兄)이 있으며,
김부식(金富軾)은 중국의 역사책(歷史冊)인 수서(隋書)와 북사(北史)를 언급했다. 지배하고 있는 한족(漢族)은 대대로 북방(北方) 민족(民族)들의 노예(奴隸) 민족이었다. 한족(漢族)의 조상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면 별로 자랑할 만한 역사가 없으니까, 중국(中國)이라는 이름으로 노예들이 자기 주인(主人)들의 역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일본(日本)도 한 때 중국을 지배했는데, 한족(漢族)들이 왜 메이지(明治)도 자기 조상 이라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자랑스럽게 세계 강대국들과 전쟁을 벌였다고 떠벌릴 수 있고 일본 열도(列島) 까지 자기들 땅이라고 우길 수 있을텐데…)
정리하면서 쓴 책이다. 주서(周書)도 같은 시기(時期)에 쓰여진 책이다.
(鞬吉支)를 빠뜨렸는지는 알 수 없다. 예전의 평가(評價)처럼 김부식(金富軾)이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라서 그런걸까?
볼 근거(根據)가 없다. 또한 요즘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이라는 호칭을 썼는지 알 수 없어서 뺀 것 같다.
아니라 우문각(宇文覺)이 AD 557 년에 세우고 이후 AD 581 년에 멸망한 북주(北周)를 말한다.
한족(漢族) 출신이 아니라 선비족(鮮卑族) 출신이다. 주서(周書)에 의하면 선비(鮮卑) 말로 하늘을 우(宇)라 하고 임금을 문(文)이라 하기 때문에 "하늘 임금"이라는 의미(意味)로 우문(宇文)을 성(姓)으로 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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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하, 건길지, 대형, 태대형에 대한 짧은 생각 (2/3)
2007.06.17 01:26 | 우리 역사 이야기 | buja100kim
어라하(於羅瑕)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한다.
어라하(於羅瑕)의 하(瑕)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받침 없는 것만 빼면 하(瑕)는 우두머리, 수장(首長)을 의미하는 우리말의 "한(翰,邯)", "간(干)"과 음(音)이 비슷하다. 받침이 없으면서 우두머리나 수장(首長)을 가리키는 말로는 "가(加)", "개(皆)"가 있다. <ㅎ>으로 시작 <ㄱ>으로 시작 받침있음 한(翰, 邯) 간(干) 받침없음 하(瑕) 가(加), 개(皆) <ㄱ>의 중간음(中間音)인 <ㅋ>으로 나서 그때그때 들리는 대로 "하, 한" 또는"가, 간"으로 적은 것 같다.
주서(周書)에 백제(百濟)의 임금을 어라하(於羅瑕)로 부른다고 하였으니 하(瑕)가
임금을 가리키는 백제(百濟)의 또 다른 칭호(稱號)을 보면 그 의미(意味)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주서(周書)에는 백제의 임금을 가리키는 칭호(稱號)로 어라하(於羅瑕) 말고도 건길지(鞬吉支)에서 건(鞬)은 "크다"의 "큰"을 한자(漢字)로 음차(音借)한 글자다.
따라서 어라(於羅)는 "크다"라는 뜻을 갖는다고 유추(類推)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아리수"가 적힌 대목을 찾지 못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에 "아리수"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出自北夫餘天帝之子 북부여(北夫餘) 천제(天帝)의 아드님으로부터 태어나셨다. 母河伯女郞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따님(女郞)이셨다. 剖卵降世 알을 깨고(剖) 세상에 내려오시니 生[而*]有聖■■■■■ 나면서부터 성(聖)스러움이 있었다 [판독불가] ■命駕 [판독불가]멍에(駕)를 명(命)하시고 巡幸南下 남쪽으로 내려(南下) 오시다가(巡幸) 路由夫餘奄利大水 길(路)이 부여(夫餘) 엄리대수(奄利大水)를 王臨津言曰 임금님이 나룻터(津)에 이르러 가라사대 我是皇天之子 나는 해님(皇天:日)의 아들이요, 母河伯女郞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따님(女郞)이신 鄒牟王 추모왕(鄒牟王)이다. 爲我連浮龜 나를 위하여 거북이들을 띄어 연결하라 하셨다. 應聲卽爲連浮龜 그 말씀(聲)에 응(應)하여 거북이들이 떠올라 연결되니 然後造渡 그런 후에 [다리를] 만들어(造) [강을] 건넜다(渡). 於沸流谷忽本西 비류곡(沸流谷) 홀본(忽本) 서쪽 城山上而建都焉 성산(城山) 위에 서울을 세웠다.
... ... 敢出百戰 감히(敢) 많은 싸움에 출전(出戰)하였다. 王威赫怒 임금(王)의 위엄(威嚴)이 혁노(赫怒)하였다. 渡阿利水 아리수(阿利水)를 건너(渡) 遣刺迫城 [군사들을] 보내어(遣) [위례]성(城)을 공격하였다. ■■[歸穴]■便[圍]城 [판독불가][구멍으로 돌아가다][판독불가] 성(城)을 而殘主困逼 백잔(百殘)의 군주(君主)가 곤란함을 겪었다. 獻出男女生口一千人 남녀(男女) 천 명(名)과 細布千匹 올이 가는 피륙(細布) 천 필(匹)을 바쳤다. 王自誓 [백제의] 임금이 스스로 맹세(盟誓)하여 가로되 從今以後 오늘 이후(以後)로 永爲奴客 영원히(永) 나라(奴, 고구리(高句麗))의 손(客)이 [내 생각] 지금까지 노(奴)는 노비(奴婢)의 뜻으로 해석하여 노객(奴客)을 백제(百濟) 임금이 하지만 고구리(高句麗)의 오부(五部) 중 네 부(部)가 노(奴)를 쓴다. (소노(消奴), 절노(絶奴), 관노(灌奴), 순노(順奴)) 노(奴)를 노비(奴婢)의 뜻으로 해석하면 고구리인(高句麗人)들이 스스로를 비하(卑下) 노(奴)자에는 분명 다른 뜻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제사(雜志第四)에 보면
노(奴)가 흙 양(壤)에 대응(對應)함을 할 수 있다. 흙은 곧 땅이므로 노(奴)는 나(那) 또는 나라(國)와 같은 뜻으로, 고구리(高句麗) 역사스페셜에서 신라(新羅)가 고구리(高句麗) 땅의 일부(一部)를 점령(占領)한 후에 하지만 위의 예(例)에서 알 수 있듯이 노인(奴人)은 고구리(高句麗) 사람들을 낮춰
한강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면 또 하나의 아리수가 나온다. 바로 압록강(鴨綠江)이다.
"아리"가 "크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라고 하는데, 현대(現代) 한국어(韓國語)에 이 말이
바로 "으리으리하다"이다. 집이 으리으리하다할 때의 "으리으리하다"인 것이다.
마침 거기에 딱 맞는 강(江)이 하나 있었다. 미국 콜로라도(Colorado) 주(州) 산 후안(San Juan) 산지(山地)에서 발원(發源)하여 엘 파소(El Paso)를 지나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國境)을 따라 동남쪽 멕시코 만(灣)으로 흘러 들어가는 총길이 3,034 km 의 "리오 그란데(Rio Grande)" 강(江)이 그 강이다.
스페인어 영어 Rio River Grande Great 1948년에 만들어진 존 웨인(John Wayne), 몽고메리 클리프트(Mongomery Clift)
건길지(鞬吉支)의 건(鞬)은 우리말의 "큰"을 한자(漢字)의 소리를 따서 적은 글자다. 백제(百濟) 임금들 이름에 나오는"근(近)"도 "큰"의 뜻을 갖는다. 현대 한국어에서 길지(吉支)에 비교할 만한 낱말이 있는지 생각해 봤는데, 별달리
길다(長)의 "길"이 아닐까?
뜻이 되어 임금을 칭(稱)하는 말이 되지 않았을까? 앞에 건(鞬)을 붙이면 "큰 기신 분" - "큰 임금" - "대왕(大王)"이 되어 어라하(於羅瑕)와 약간 억지스럽지만 건길지(鞬吉支)를 이런 식으로 풀어보는 것이 전혀 납득(納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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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하, 건길지, 대형, 태대형에 대한 짧은 생각 (3/3)
2007.06.18 01:27 | 우리 역사 이야기 | buja100kim
3. 대형(大兄), 태대형(太大兄) 대형(大兄)과 태대형(太大兄)은 고구리(高句麗)의 관직명(官職名)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대형(大兄), 태대형(太大兄)이 나오는 부분(部分)을 여기에
年代久遠 연대(年代)가 오래되고(久) 아득해서(遠) 文墨晦昧 기록(文墨)이 애매(曖昧)하다. 是故不得詳悉 이런 까닭에 자세하고도(詳) 전체적인(悉) 내용을 今但以其著於古記 지금은 단지 옛기록(古記)과 及中國史書者 중국사서(中國史書)에 적힌 것만 爲之志 적도록 한다(爲之志). 隋書云 수서(隋書)에 적혀있기를 高句麗官 고구리(高句麗) 관직(官)은 有太大兄次大兄次小兄 태대형(太大兄)이 있고, 다음은 대형(大兄), 次對盧次意俟奢次烏拙 다음은 대로(對盧), 다음은 의사사(意俟奢), 次太大使者次大使者次小使者 다음은 태대사자(太大使者), 다음은 대사자(大使者), 다음은 소사자(小使者) 次褥奢次翳屬次仙人 다음은 욕사(褥奢), 다음은 예속(翳屬), 凡十二等 무릇(凡) 열두 등급(等級)이 있다고 한다. 復有內評外評五部褥薩 또한 내평(內評), 외평(外評),
... ... 俟 : [사] 기다리다, 떼지어 가다. 褥 : [욕] 요(침구) 翳 : [예] 깃일산 薩 : [살] 보살
"대형, 태대형"이라고 불렀을까? 당시(當時) 고구리(高句麗) 사람들이 어떻게 불렀을지 추론(推論)해 본다.
형(兄)을 의미(意味)하는 순우리말은 "언니"이다. 언니는 여자 형제(兄弟)들 사이에서 손아래가 손위를 부르는 말일 뿐만 아니라 남자 형제(兄弟)들 사이에서도 손아래가 손위를 부르는 말이었다.
발음(發音)의 유사성(類似性)에서 알 수 있듯이 "아니(あに)"의 기원(起源)은 "언니"다.
대(大)에 해당하는 현대(現代) 한국어(韓國語)는 "큰(大)"이다. 그래서 나는 "대형(大兄)은 고구리(高句麗) 말로 큰언니다"라고 주위사람들에게
"아리(大)"이다. 근거는 앞에서 살펴본 "아리수, 엄리대수, 어라하"이다.
"으리으리하다"를 떠올려 보면 쉽게 문제(問題)가 풀린다.
"크다(太)"와 "크다(大)"를 합쳐 "매우 크다"는 의미를 만들었다. "으리으리하다"도 "으리(大)"를 두 번 반복하여 "매우 크다"는 의미를 만들었다.
한자표기 실제발음 (추정) 대형(大兄) 아리언니 태대형(太大兄) 아리아리언니
어라하(於羅瑕)와 건길지(鞬吉支)가 나오는 주서(周書)는 어떤 책이며 편찬자(編纂者) 영호덕분(令狐德棻)은 어떤 사람인지 마지막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양견(楊堅)은 북주(北周) 정제(靜帝) 때 대승상(大丞相)의 지위에 있었는데, 주(走)는 "갑자기 달리기도 하고 갑자기 멈추기도 하는 등 가만히 있지 않는다"라는
이후 이연(李淵)이 당(唐)나라를 세우자 당고조(唐高祖) 때는 기거사인(起居舍人),
후한(後漢) 말(末) 군웅(群雄)들이 할거(割據)하면서 중국(中國)이 분열됐다가 위(魏), 사마염(司馬炎)이 세운 진(晉)나라는 AD 280 년에 오(吳)를 멸망시키면서 잠시 중국을 이후 북방(北方) 유목민족(遊牧民族)이 침입하여 진(晉)을 멸망시키자 진왕족(晉王族)인
5호16국(五胡十六國)의 시대(時代)가 열린 것이다.
16국(十六國) : 전량(前涼), 후량(後涼), 남량(南涼), 서량(西涼), 북량(北涼),
AD 577 년 북주(北周)는 북제(北齊)를 멸망시키지만 북주(北周) 또한 수(隋)에 의해
동위(東魏) : AD 534-550, 북제(北齊)에 의해 멸망 서위(西魏) : AD 535-557, 북주(北周)에 의해 멸망 북제(北齊) : AD 550-557, 북주(北周)에 의해 멸망 북주(北周) : AD 557-581, 수(隋)에 의해 멸망 수(隋) : AD 581-618, 당(唐)에 의해 멸망
동진(東晉) : AD 317-420, 송(宋)에 의해 멸망 송(宋) : AD 420-479, 제(齊)에 의해 멸망 양(梁) : AD 502-557, 진(陳)에 의해 멸망 진(陳) : AD 557-589, 수(隋)에 의해 멸망
남조(南朝) : 동진(東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
수(隋)나라에 의해 통일(統一)되자, 고구리(高句麗)의 하늘에도 서서히 전쟁(戰爭)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王聞陳亡大懼 임금이 진(陳)나라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크게 理兵積穀 무기(兵)를 손질하고(理) 곡식(穀食)을 비축하며(積) 爲拒守之策 [수(隋)의 침공(侵攻)에 대한] 방어책(防禦策)을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19(卷第十九) 고구리본기(高句麗本紀) 제7(第七)
이어 즉위(卽位)한 영양왕(嬰陽王) 시대에 드디어 수(隋)의 백만대군(百萬大軍)과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상, 하), 을유문화사, 1999
[참고 사이트] 야후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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