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국사연표

吾心竹--오심죽-- 2010. 9. 30. 15:04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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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기사

970205 조선일보

-명당 찾기-

땅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 명당

 

본래 명당이란 천자가 제후들의 문안을 받던 집, 또는 뜰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풍수상 좋다는 땅을 명당이라고 부른다.

좋은 땅이란 무엇인가. 팔대에 걸쳐 정승이 나고 부귀영화를 누리거 나 임금이 배출될 자리를 말하는가. 그런 땅은 정말 존재하는가. 한 마디로 그런 좋은 땅은 없다. 명당의 개념도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귀신 같은 술법이 있다면 당대 풍수계 최고수들을 모아 묘터를 잡은 고려와 조선 왕조가 어떻게 그런 집안 꼴이 날 수 있으며 나라를 망쳐버렸겠는가.

풍수가 진정 중시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사람이다. 땅은 그저 무대일 뿐이다. 그 위에서 이뤄지는 역사는 각본이고 사람은 배우이다. 하지만 좋은 무대를 차지했더라도 시답지 않은 배우가 나쁜 각본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좋은 연극이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땅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위와 역사 의식이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땅의 잘못이 아니다.

망월동의 한은 망월동을 옮겨 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5.18 죄인들은 전직 대통령의 연희동 집이나 선산을 옮긴다고 될 일이 아니다.

 

● 땅과 산을 보는 심안 갖춰야 명당 찾을 수 있어

 

풍수의 기본 자세는 무엇인가. 땅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대한다는 것 을 출발점으로 한다. 더 나아가 땅을 어머니로 대하는 것이다. 땅이 살 아꿈틀거리는 용으로, 어머님의 인자한 품으로 보이기 시작해야 풍수를 말할 수 있다. 흔히 이것을 도안(도를 깨우치는 눈)의 단계에 이르는 풍 수 학인이라 일컫는다. 도안에 이르면 그전까지 그저 단순한 돌과 흙무 더기로 보이던 산이 지기를 품은 삶의 몸체로 보이기 시작한다.

강원도 영월에 가면 요선정이란 정자 옆의 바위 틈새에 뿌리내린 소 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생명이 자랄 것 같지 않은 나쁜 땅인 바위에서 도 생명이 자란다. 땅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무 대신 사람을 대입시키면 풍수의 정의가 나올 수 있다. 결국 좋은 땅이란 없는 셈이다.

땅과 사람이 상생의 조화를 이루었느냐는 것이다. 좋은 땅, 나쁜 땅 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맞는 땅, 맞지 않는 땅을 가리는 우리 선조들의 땅에 관한 지혜가 바로 풍수란 말이다. 발복을 바라는 이기적인 음택(묘 지)풍수는 후대 사람들의 욕심이 만들어 놓은 잡술일 뿐이다.

풍수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그것은 근심, 걱정이 없는 안온한 삶을 추구하는 안정희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터를 잘 잡는 것은 땅과 생명체가 서로 기를 상통시킬 수 있는 자리를 잡는 것이다. 잘 잡힌 터 에서는 평안한 심적 상태를 갖게 된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 품안과 같은 땅이다. 그래서 땅을 혹은 산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어머니 품안 같은 명당을 찾아낼 수 있다.

지금까지 풍수 연구로 나타난 우리 풍수의 방법론적 본질은 본능과 직관, 사랑이란 세 가지로 요약이 가능하다.

첫째 풍수는 순수한 인간적 본능에 의지해 땅을 바라본다. 거기에 어 머니의 품안 같은 따뜻함을 추구하는 마음이 스며 있다. 자생 풍수는 성 적본능에 의한 터 잡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여근곡 설화는 아마 이런 형식의 모형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풍수의 사 신사(청룡 백호 현무 주작) 개념과 일치, 그런 곳을 명당으로 치기도 한 다. <그림1>에서 처럼 주산은 여성의 몸체가 되고 좌청룡은 왼쪽 다리, 우백호는 오른쪽 다리가 된다. 그리고 그 사이 혈처(기가 모인 곳)가 바 로 옥문에 해당된다는 생각이다. 결국 남녀 성기의 결합, 즉 성교를 상 징하는 땅을 명당으로 보게 되는 식이다.

둘째는 직관으로 순수함을 좇는 것이다. 이성과 지식, 따짐과 헤아림 등이 직관의 순수함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풍수에서 땅을 보는 눈은 다르다. 결코 이성에 따라서는 안된다. 그래야 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셋째는 사랑. 우리 풍수의 시조인 도선 국사가 찾아 나선 땅들은 모 두 병든 터였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가 찾아내 절을 세운 땅은 낭 떠러지 꼭대기나 물이 스미고 홍수의 우려가 있는 곳이었다. 괴로운 어 머니에 대한 효성이 참사랑인 것처럼 땅을 좋은 것만 찾을 것이 아니다.

특히 병 들고 늙어 자식에게 줄 것 없는 어머니 품을 찾는 것이 풍수라 는 뜻이다. 하지만 늙은 어머니를 그냥 방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에 우리 풍수의 비보책이 있다. 마치 병든 이에게 침이나 뜸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이치를 적용한 것이 자생 풍수의 비보책이다.

예컨대 전북 진안군 안천면 노성리에 있는 노채마을<사진 1>의 경우, 이 마을의 엄뫼(모산)인 내용의 왼쪽 가지가 모산의 왼쪽 옆구리를 찌 르는 식으로 달려든다. 그래서 바로 그 왼편에 탑과 같은 석물을 배치, 그를 막는 방책을 취하고 있다.

 

● 부모님 모실 자리에 한 시간만 앉아 보라

 

그러면 친상을 당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풍수적인 대처를 해야 하는가. 우선 터를 쓸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다. 대상을 모르고서는 천하의 명당이란 있을 수 없다. 터와 터를 의지할 사람의 관계를 살펴야 하는 것이 풍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보다 고인을 잘 아는 상 당한 사람이 부모님의 자리를 스 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은 기를 통한 사이다. 따라서 동 기감응(기가 후손들에게 전해지는 것)이 가장 정확하게 일어날수 있다.

자식은 우선 부모님을 모시고자 하는 자리의 땅 위에 엉덩이를 붙이 고 돌아가신 그분만을 오로지 생각하며 한 시간만 앉아 있어라. 그것이 권하고자하는 모든 것이다. 그러면 부모님과 이 자리가 맞는 자리인지 판단이 선다. 그 판단은 본능과 직관,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통 하여 전달된다.

달리 말하면 땅이 그 효성에 감응하여 돌아가신 분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사표명을 해올 것이란 뜻이다. 좌향(시신이 놓일 방향) 의 결정방법도 마찬가지이다. 고인이 좋아하실 방향을 고르면 된다. 주 변을 바라보면 이 방향의 경관이 고인이 가장 좋아하실 곳이란 판단이 설것이고 그것이 좌향이 된다는 것이다.

풍수는 『땅은 거짓이 없고 욕심도 없다』고 말한다. 하늘 뜻 그대로 땅은 집행할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소유 대상과 오염으로 전락한 어머니인 땅.

발복을 받아보자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집터나 부모의 묘터를 구한 다면 그것은 좋은 땅을 찾는 반풍수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땅과 인 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터, 바로 그곳에서 명당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창조씨 약력> 1950년 서울 출생 1968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5년 서울대 문리대 지리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8년 국토개발연구원 주임 연구원 1979∼1992년 청주사대, 전북사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역임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풍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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