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羅

북사열전 신라

吾心竹--오심죽-- 2010. 9. 2. 15:55


북사열전 新羅 (신라)

<新羅>者, 其先本<辰韓>種也. 地在<高麗>東南, 居<漢>時<樂浪>地. <辰韓>亦曰<秦韓>. 相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 <馬韓>割其東界居之, 以<秦>人, 故名之曰<秦韓>. 其言語名物, 有似中國人, 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皆爲徒, 不與<馬韓>同. 又<辰韓>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傳, <辰韓>不得自立王, 明其流移之人故也. 恒爲<馬韓>所制. <辰韓>之始, 有六國, 稍分爲十二, <新羅>則其一也. 或稱<魏>將< 丘儉>討<高麗>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有留者, 遂爲<新羅>, 亦曰<斯盧>. 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諸本[雜]訛作[辯], 據《隋書》卷八一《新羅傳》改.$/ 兼有<沃沮>·<不耐>·<韓>·<濊>之地.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初附庸于<百濟>, <百濟>征<高麗>, 不堪戎役, 後相率歸之, 遂致强盛. 因襲<百濟>, 附庸於<迦羅國>焉. 傳世三十, 至<眞平>./$《隋書》作[傳祚至<金眞平>]. 按《通典》卷一八五《新羅傳》云[其王姓<金>名<眞平>],  引《隋東蕃風俗記》云:[<金>姓相承, 三十餘葉.] 這裏[眞平]上當脫[金]字.$/ 以<隋><開皇>十四年, 遣使貢方物. <文帝>拜<眞平>上開府·<樂浪郡公>·<新羅王>.

'신라'는 근본이 '진한'의 종자이다. 땅은 '고려'의 동남쪽에 있고, '한나라'때의 '낙랑'땅에 거한다. '진한'의 역시 '진한'이라고도 한다. 전하는 말로 '진'나라때에 사역을 피하여 온 사람이라고 하니, '마한'이 그 동쪽 경계를 나누어 거하게 하였다. '진'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고로 '진한'이라고 하였다.그 말로 물건의 이름이 중국인과 유사하니 나라의 이름을 나라 하고, 궁을 호라 하고, 적을 구라하고 주를 상이라고 상을 도라고 하니 '마한'과 같지 않다. 또한 '진한'의 왕은 항시 '마한'사람이 하는데, 대대로 전하여 '진한'은 스스로 왕위에 오를 수 없어, 밝혀 유이민이기 때문이다. 항상 '마한'의 제도를 따랐다. '진한'의 처음에 육국이 있었는데, 점점 나누어져 십이국이 되고, '신라'는 그중의 하나였다. 혹 칭하길 '위'의 장수 '관구검'이 '고려'를 쳐서 이를 깨뜨렸는데, '옥저'로 도망해서, 나중에 옛날의 나라로 돌아 왔다. 남는 자가 있어서 '신라'를 이루었다 하니, 역시 '사로'라 불리었다. 그 사람들은 '중국'과 '고려', '백제'와 섞여있는데, '옥저', '불내', '한', '예'의 땅에도 겸하여 있다. 그 왕은 본래 '백제'사람으로 바다로 도망하여 '신라'로 들어가 그나라에서 왕을 하였다. 처음 '백제'에 의지해 있었는데, '백제'가 '고려'를 정벌할 때, 혹독한 사역을 견디지 못하여, 후에 돌아와 강성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백제'를 엄습하고, '가야국'에 의지하였다. 삼십세를 전하여 '진평'에 이르렀는데, '수' '개황'십사년이다.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받쳤다. '문제'가 '진평'을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에 봉하였다.

其官有十七等: 一曰伊罰干, 貴如相國, 次伊尺干, 次迎干, 次破彌干, 次大阿尺干, 次阿尺干, 次乙吉干, 次沙 干, 次及伏干, 次大奈摩干,/$《通典》[干] 作[于], 未知孰是. 又《梁書》云:[其官名有子賁旱支·齊旱支·謁旱支·壹告支·奇目旱支.] 與此不同.$/ 次奈摩, 次大舍, 次小舍, 次吉士, 次大烏, 次小烏, 次造位. 外有郡縣. 其文字·甲兵, 同於中國. 選人壯健者悉入軍, 烽·戌·邏俱有屯營部伍./$諸本及《隋書》[營]作[管].《通典》作[營], 是, 今據改.$/ 風俗·刑政·衣服略與<高麗>·<百濟>同. 每月旦相賀, 王設宴會, 班賚 官. 其日, 拜日月神主. 八月十五日設樂, 令官人射, 賞以馬·布./$《隋書》[每]下有[正]字, [主]字作[至]. 按《隋書》是說正月元旦相賀, 拜日月神; 至八月十五日, 又設樂競射.《北史》疑是脫訛.$/ 其有大事, 則聚官詳議定之. 服色尙 素./$《隋書》無[ ]字. 按 則不素, 疑是衍文.$/ 婦人 髮繞頸,/$《隋書》[頸]作[頭], 是. 此形似致誤.$/ 以雜綵及珠爲飾. 婚嫁禮唯酒食而已, 輕重隨貧富. 新婦之夕, 女先拜舅姑, 次卽拜大兄·夫./$《隋書》無[大兄]二字,《通志》卷一九四《新羅傳》作[次拜大兄, 次拜夫].$/ 死有棺 , 葬送起墳陵. 王及父母妻子喪, 居服一年. 田甚良沃, 水陸兼種. 其五穀·果菜·鳥獸·物産, 略與華同.

관직은 십칠품으로, 일은 이벌간으로 중국의 귀와 같고, 다음은 이척간 다음은 영간, 다음은 파미간, 대아척간, 아척간, 을길간, 사돌간, 급복간, 대나마간, 나마, 대사, 소사, 길사, 대오, 소오, 조위 순이다. 밖으로 군현이 있고, 문자와 갑병은 중국과 같다. 건장한 사람을 가리고 군사로 뽑는데, 봉, 술, 라로 함께 영, 부, 오로 진을 친다. 풍속과 형벌, 정치, 의복은 '고려', '백제'와 같다. 매달 아침마다 하례하며 왕이 연회를 배풀면서 무리에 관직을 하사한다. 그날에 태양과 달의 신에게 절한다. 팔월십오일은 풍류를 베푸는데, 관인이 활을 쏘아 상으로 말과 포를 내린다. 큰 일이 있으면, 벼슬아치들이 모여 의논하여 정한다. 옷색깔로 흰색을 숭상하고, 부인들은 머리를 땋아 목에 두르며, 비단과 구슬을 섞어 꾸민다. 결혼의 예는 술과 음식으로 하고, 빈부로써 경중을 따른다. 신부는 저녁에 가서, 여자가 먼저 시아비와 시어미에게 절하고 다음으로 대형과 지아비에게 절한다. 죽은자에게는 관이 있고, 장사지냄에 봉분을 쌓는다. 왕에서부터 부모처자의 상까지 일년간 복을 입는다. 밭은 물대기가 좋아서 물과 육지의 씨를 겸할수 있다. 오곡과 과채, 조수과 물산은 중국과 같다.

<大業>以來, 歲遣朝貢. <新羅>地多山險, 雖與<百濟>構隙, <百濟>亦不能圖之也.
'대업'때에 왔는데, 해마다 조공하였다. '신라'의 땅은 산이 많고 험하고, '백제'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백제'도 능히 제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