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 濟

북사열전 - 百濟 (백제)

吾心竹--오심죽-- 2010. 9. 2. 15:53

북사열전 - 百濟 (백제)

<百濟>之國, 蓋<馬韓>之屬也, 出自<索離國>./$《梁書》卷五四《高句麗傳》[索離]作[ 離],《三國志》卷三 《夫餘傳》註引《魏略》作[高離]殿本作[ 離],《隋書》卷八一《百濟傳》作[高麗]. 按[ ]音[高]. [索]當是[ ]之訛. [ 離]卽[高麗]也.$/ 其王出行, 其侍兒於後姙娠,
王還, 欲殺之. 侍兒曰: [前見天上有氣如大鷄子來降, 感, 故有娠.] 王捨之. 後生男,

王置之豕牢, 豕以口氣噓之, 不死; 後徙於馬 , 亦如之. 王以爲神, 命養之, 名曰<東明>. 及長, 善射, 王忌其猛, 復欲殺之.

<東明>乃奔走, 南至<淹滯水>, 以弓擊水, 魚鼈皆爲橋, <東明>乘之得度, 至<夫餘>而王焉. <東明>之後有<仇台>, 篤於仁信, 始立國于<帶方>故地. <漢><遼東>太守<公孫度>以女妻之, 遂爲東夷强國. 初以百家濟, 因號<百濟>.

'백제'라는 나라는 대개 '마한'의 속국으로 '색리국'에서 나왔다. 그 왕이 출행하였는데, 그 시종드는 아이가 임신을 하였다. 왕이 돌아와 죽이고자 하니, 그 시종드는 아이가 말하길, 전에 하늘을 보았는데, 위에서 큰 계란같은 기운이 있어, 내려와서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왕이 이를 버려두었는데, 후에 남자 아이을 낳았다.

왕이 돼지우리에 두었으나 돼지가 입기운으로 이를 보호하여 죽지 않고, 다시 마굿간에 두었으나 역시 이와 같았다. 왕이 신비롭다 하여 명을 내려 이를 기르니 명하여 '동명'이라 하였다. 장성하더니 활을 잘쏘자 왕이 그 용맹함을 꺼려하여 다시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동명'이 이에 달아나 남쪽의 '엄대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모두 다리를 만들었다. '동명'이 이를 타고 건널수 있었다. '부여'에 이르러 왕노릇을 하였다. '동명'의 후손중에 '구태'가 있었는데, 인정이 많고, 어질고 믿음이 있어 나라를 세우니 '대방'의 옛 땅이다. '한'의 요동태수 '공손도'의 여자를 처로 삼으니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 처음 백집으로 시작하니 이로써 '백제'라 하였다.

其國東極<新羅>, 北接<高句麗>,/$諸本脫[北接高]三字, 據《周書》卷四九《百濟傳》補.《隋書》作[北拒高麗].$/ 西南俱限大海, 處小海南, 東西四百五十里, 南北九百餘里. 其都曰<居拔城>, 亦曰<固麻城>. 其外更有五方: 中方曰<古沙城>, 東方曰<得安城>, 南方曰<久知下城>, 西方曰<刀先城>, 北方曰<熊津城>. 王姓<餘氏>, 號[於羅瑕], 百姓呼爲
[ 吉之], <夏>言 王也. 王妻號[於陸], <夏>言妃也.

官有十六品: 左平五人, 一品; 達率三十人, 二品; 恩率, 三品; 德率, 四品;  率, 五品; 奈率, 六品. 已上冠飾銀華. 將德, 七品, 紫帶. 施德, 八品,  帶. 固德, 九品, 赤帶. 季德, 十品, 靑帶. 對德, 十一品; 文督, 十二品, 皆黃帶. 武督, 十三品; 佐軍, 十四品; 振武, 十五品; 剋虞, 十六品, 皆白帶. 自恩率以下, 官無常員. 各有部司, 分掌衆務. 內官有前內部·穀內部·/$《周書》作[穀部肉部]. 按疑此脫[部]字, [肉]訛爲[內].$/內掠部·外掠部·馬部·刀部·功德部·藥部·木部·法部·後宮部. 外官有司軍部·司徒部·司空部·司寇部·點口部·客部·外舍部·綢部·日官部·市部./$《周書》上有[都]字, 疑是.$/ 長吏三年一交代. 都下有萬家,/$諸本[萬家]訛作[方], 據《周書》改. 此涉下文[五方]又[方][万]形似而誤.$/ 分爲五部, 曰上部·前部·中部·下部·後部, 部有五巷, 士庶居焉./$諸本[焉]訛作[馬], 據《周書》改.$/ 部統兵五百人. 五方各有方領一人, 以達率爲之, 方佐貳之. 方有十郡, 郡有將三人, 以德率爲之.

統兵一千二百人以下, 七百人以上./$《周書》[統]上有[方]字.$/ 城之內外人庶及餘小城, 咸分 焉./$諸本脫[人]字,《周書》有[民]字,《通志》卷一九四《百濟傳》有[人]字. 今據《通志》補.$/

그 나라의 동쪽은 '신라'이고 북쪽은 '고구려'에 접하고 서쪽과 남쪽은 큰 바다에 경계하니 소해의 남쪽에 위치한다. 동서로 사백오십리이고 남북이 구백여리이다. 그 도읍을 '거발성'이라 하는데 또한 '고마성'이라고 한다.  그 밖으로는 오방이 있는데, 중방을 '고사성' 동방을 '득안성' 남방을 '구지하성' 서방을 '도선성' 북방을 '웅진성'이라 한다. 왕의 성은 '여씨'이고 '어라하'라 부르는데 백성들은 '건길지'라 부른다. '하'나라 말로 왕과 같은 것이다. 왕의 처는 '어륙'이라 하는데, '하'나라 말로는 비라는 것이다.

관직은 십육품이 있는데, 좌평이 오명으로 일품이요, 달솔이 삼십명으로 이품이요, 은솔이 삼품, 덕솔이 사품, 우솔이 오품, 금솔이 육품으로 이상은 관에 은과 꽃으로 장식을 한다.
장덕이 칠품으로 자주색 띠를 두르고, 시덕이 팔품으로 검정색 띠를 두르고, 고덕은 구품으로 붉은띠, 계덕은 십품으로 청색띠, 대덕은 십일품, 문독은 십이품으로 모두 노랑띠, 무독은 십삼품, 좌군은 십사품, 진무는 십오품, 극우는 십육품으로 모두 백색띠를 두른다. 은솔이하로는 관직이 수효가 없다. 각각 부사가 있는데, 나누어 일을 맡는다.
내관에는 전내부, 곡내부, 내경부, 왜경부, 마부, 도부, 공덕부, 낙부, 목부, 법부, 후궁부가 있다. 외관에는 사군부, 사도부, 사공부, 사구부, 점구부, 객부, 외사부, 주부, 일관부, 시부가 있다. 오래해도 삼년에 한번씩 교대한다. 도읍에는 만가가 있고, 나누어 오부가 있는데, 상부, 전부, 중부, 하부, 후부이고, 부에는 오항이 있어 선비들이 거처한다.

부에는 병사가 총 오백명이다. 오방에는 각각 방령이 한명이 있고, 달솔이 이를 하고, 방좌가 두명이다. 방에는 열 개의 군이 있고, 군에는 장수가 세명이 있는데, 덕솔이 이를 한다. 총 병사는 일천이백명 이하, 칠백명이상이다. 성의 안과 밖의 백성들이 남아 작은성에 나누어 살게 한다.

其人雜有<新羅>·<高麗>·<倭>等, 亦有中國人. 其飮食衣服, 與<高麗>略同. 若朝拜祭祀, 其冠兩廂加翅, 戎事則不. 拜謁之禮, 以兩手據地爲禮. 婦人不加粉黛, 女 髮垂後, 已出嫁, 則分爲兩道, 盤於頭上. 衣似袍而袖微大. 兵有弓箭刀 .
俗重騎射, 兼愛墳史, 而秀異者頗解屬文, 能吏事. 又知醫藥·蓍龜, 與相術·陰陽五行法. 有僧尼, 多寺塔, 而無道士.

有鼓角·  ·箏 · 笛之樂, 投壺· 蒲·弄珠·握 等雜戱. 尤尙奕 . 行<宋>《元嘉曆》, 以建寅月爲歲首. 賦稅以布·絹·絲·麻及米等, 量歲 儉, 差等輸之. 其刑罰, 反叛·退軍及殺人者, 斬; 盜者, 流, 其贓兩倍徵之; 婦犯姦, 沒入夫家爲婢. 婚娶之禮, 略同華俗. 父母及夫死者, 三年居服, 餘親則葬訖除之.

土田濕, 氣候溫暖, 人皆山居. 有巨栗, 其五穀·雜果·菜蔬及酒醴肴饌之屬, 多同於內地. 唯無駝· ·驢·羊·鵝·鴨等. 國中大姓有八族,/$諸本脫[八]字, 據《隋書》補.$/ <沙氏>·<燕氏>·<沙氏>·<解氏>·<眞氏>·<國氏>·<木氏>·<苗氏>. 其王每以四仲月祭天及五帝之神. 立其始祖<仇台>之廟於國城, 歲四祠之. 國西南, 人島居者十五所, 皆有城邑.

백성들은 '신라', '고려', '왜'등과 섞여 있는데, 역시 중국인도 있다. 그 음식과 의복은 '고려'와 비슷함이 있고, 만일 제사지내거나 조알할때는 그 관의 양쪽에 날개를 더하는데, 전쟁할때는 그렇지 않다. 절하거나 아뢰는 예는 양손을 땅에대는 것으로 예를 삼는다. 부인은 화장을 하지 않고, 여자는 머리를 땋아 뒤로 드리우고, 결혼하면 곧 양쪽으로 드리우고, 판같은 것을 머리에 얻는다. 옷은 핫옷 비슷해서 소매가 작으나 통이 넓다. 병기는 활과 화살 도와 창이 있다. 풍속에 기사를 중히 여기고 겸하여 고전도 사랑한다. 뛰어난 자는 글을 짓거나 파자할 줄 알고, 여러일에 능하다. 또한 의약과 점을 칠 줄 알고, 상술과 음양오행법을 안다.
승려와 비구니가 있고, 절과 탑이 많으나, 도사는 없다.

악기로는 고각·공후·쟁우·호적이 있고, 투호·저포·농주·악삭등의 놀이가 있는데, 바둑과 장기를 숭상한다. '송'의 '원가력'를 쓰는데, 인월을 세수로 삼는다. 조세는 베, 명주, 실, 마, 쌀등으로 받는데, 그해의 풍년이나 흉년을 해아려서 차등을 두어 걷는다. 형벌에는 배반하는 자나 후퇴하는 군사, 살인한 자는 죽이고, 도둑질한자는 쫓아 내고, 훔친 물건의 두배로 값게 한다. 부인이 간음을 하면, 그 남편의 집의 노비로 삼는다.
혼인하는 예는 중국의 풍속과 같다. 부모나 남편이 죽으면, 삼년동안 복을 입고, 나머지 친척은 장사가 끝나면, 이내 멈춘다.

밭이 습하고, 기후는 온난하며, 사람들은 모두 산에 거처한다. 큰 밤이 있으며, 오곡과, 잡과, 채소와 술등의 찬거리가 중국과 같은 것이 많다. 낙타, 노새, 당나귀, 양, 거위와 오리등은 없다. 나라에는 큰 성씨가 여덟족속이 있는데, '사씨' '연씨', '사씨(?)', ' 해씨', '진씨', '국씨', '목씨', '묘씨'이다. 그 왕은 늘 사중월에 하늘과 오제의 신에게 제사 지낸다. 그 시조 '구태'의 사당을 나라의 성에 세우고 해마다 네 번 제사지낸다. 나라의 서남쪽에 사람들이 섬의 열다섯군데에 거하는데, 모두 성읍이 있다.

<魏><延興>二年, 其王<餘慶>始遣其冠軍將軍駙馬都尉<弗斯侯>·長史<餘禮>·龍 將軍<帶方>太守司馬<張茂>等上表自通,

云: [臣與<高麗>, 源出<夫餘>, 先世之時, 篤崇舊款. 其祖<釗>, 輕廢隣好, 陵踐臣境. 臣祖<須>, 整旅電邁, 梟斬<釗>首. 自爾以來, 莫敢南顧. 自<馮氏>數終, 餘燼奔竄, 醜類漸盛, 遂見陵逼, 構怨連禍, 三十餘載. 若天慈曲矜, 遠及無外, 速遣一將, 來救臣國. 當奉送鄙女, 執掃後宮, 幷遣子弟, 牧 外廐, 尺壤疋夫, 不敢自有.

去庚辰年後, 臣西界海中, 見尸十餘, 幷得衣器鞍勒. 看之, 非<高麗>之物. 後聞乃是王人來降臣國, 長蛇隔路, 以阻于海./$《魏書》卷一  《百濟傳》[阻]作[沈]. 按[阻]疑是[ ]之訛.$/ 今上所得鞍一, 以爲實矯.]/$《魏書》[矯]作[驗],《通志》作[據]. 按[矯]字無義, 疑誤.$/

'위'의 '연흥' 이년 그 왕 '여경'이 처음으로 관군장군부마도위 '불사후', 장사 '여례', 용양장군 대방태수 사마 '장무'등을 보내어 상표를 올리고 통하였다.

말하기를 신은 '고려'와 함께 '부여'에서 근원하는데, 선왕때부터 오래된 정성이 도탑고, 숭상했다. 그 조상 '쇠'가 가벼이 좋은 이웃을 부시고자, 신의 경계로 넘어왔는데, 신의 할아버지 '수'가 번개같이 군사를 이끌고가 '쇠'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스스로 이후부터, 조용하게 감히 남쪽을 엿보더니, 스스로 '풍씨'에게 수차례 멸망하여 불타고, 달아나 숨었습니다. 이런 나쁜 무리들이 점차 일어나더니, 끝내 위협을 가하여, 원망과 재난이 끊이질 않은지가 삼십여년입니다. 만일 천자께서 자애로와 불쌍히 여기신다면, 멀리 밖이라 여기지 말고 빨리 장수 하나를 보내어, 신의 나라를 구해주시옵서서. 마땅히 어리석은 여자를 받들어 보내니, 후궁으로 삼으시고, 자식과 동생을 함께 보내니, 마굿간지기를 시키던지, 밖으로 폐하던지, 하십시오.
흙이나 갈아야할 필부는 감히 스스로 있지 못합니다.

경진년에 가다가 신의 서쪽 경계 바다에서 시여구의 시체를 보았는데, 아울러 옷과 그릇, 안장과 재갈을 얻었습니다.
이를 살펴보니, '고려'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후세 소문을 들으니, 왕의 사람들이 신하의 나라에 항복하여 오는데, 큰 뱀이 길을 막았다 합니다, 바다가 험합니다. 이제 얻은 말 안장 하나를 올리니, 바로잡아 주시옵서서. 하였다.

<獻文>以其僻遠, 冒險入獻, 禮遇優厚, 遣使者<邵安>與其使俱還. 詔曰: [得表聞之無恙. 卿與<高麗>不睦, 致被陵犯, 苟能順義, 守之以仁, 亦何憂於寇 也. 前所遣使, 浮海以撫荒外之國, 從來積年, 往而不反, 存亡達否, 未能審悉. 卿所送鞍, 比校舊乘, 非中國之物. 不可以疑似之事, 以生必然之過. 經略權要, 已具別旨.]

又詔曰: [<高麗>稱藩先朝, 供職日久, 於彼雖有自昔之 , 於國未有犯令之愆. 卿使命始通, 便求致伐, 尋討事會, 理亦未周. 所獻錦布海物, 雖不悉達, 明卿至心. 今賜雜物如別.] 又詔<璉>護送<安>等. 至<高麗>, <璉>稱昔與<餘慶>有 , 不令東過. <安>等於是皆還, 乃下詔切責之. 五年, 使<安>等從<東萊>浮海, 賜<餘慶>璽書,  其誠節. <安>等至海濱, 遇風飄蕩, 竟不達而還.

'헌문'이 그 후미지고 먼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바치러 오니, 예가 두텁고, 도탑다 하여, 사신 '소안'을 보내어 그 사신과 함께 돌아가게 하였다. 조서에 말하기를 표들 듣고 근심이 없음을 알았다. 경이 '고려'와 화목하지 않아, 능이 범해지는 일을 당하였는데, 순하고 의로와 인으로서 지키고자 하니 역시 어찌 도둑과 원수함의 근심이 없겠는가. 전에 사신을 보내었는데, 바다로 거친 외국으로 갔다. 간지가 몇 년인데,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망했다고 생각했서 자세히 살폈었다. 경이 안장을 보내와 옛날에 따던 것과 비교했었는데, 중국의 물건이 아니었다. 의심함이 이와 같으면 아니되니, 그러함이 지니치어 생긴 것이다. 다스림에 분별력이 필요하니, 갈라서려는 것을 버려야 한다.

또 조서에 말하기를 '고려'는 먼저 조공하였고, 오래전부터 임무에 이바지 하고 있어, 그가 옛날의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영을 범하는 잘못을 하지 않았다. 경이 처음 통하여 벌하기를 구하는데, 벌하는 일을 찾는 것이 아직은 이치에 두루 미치지 않는다. 금과 베 해무을 바쳤는데, 모두다 미치지는 않았지만, 밝은 경의 마음이 이르렀다. 이제 여러 물건을 나누어 하사한다. 또 '련'에게 '안'등을 보호하며 보내라 하였다. '고려'에 이르렀는데, '련'이 '여경'과 옛날에 원수가 있다 하여, 동쪽으로 지나감을 허락하지 않았다. '안'등이 이에 모두 돌아 오자, 이를 책하였다. 오년 '안'등이 '동래'에서 바다로 나아가 '여경'에게 새서를 하사하고, 성절을 칭찬하였다. '안'등이 바닷가에 이르러 우연히 폭풍우를 만다, 끝내 돌아오지 못하였다.

自<晉>·<宋>·<齊>·<梁>據<江>左,/$諸本[左]下衍[右]字, 據《周書》刪.$/ 亦遣使稱藩, 兼受拜封. 亦與<魏>不絶.

'진', '송', '제', '양'이 '강'의 왼쪽에서 일어났는데, 역시 사신을 보내어 번이라 칭하면서, 봉함을 받았고, '위'와도 끊어지지 않았다.

及<齊>受<東魏>禪, 其王<隆>亦通使焉. 淹死, 子<餘昌>亦通使命於<齊>./$《周書》[淹]作[隆], 此作[淹]疑誤. 又《梁書》言<隆>死以其子<餘明>爲<百濟王>, 與此作[餘昌]不同.$/ <武平>元年, <齊><後主>以<餘昌>爲使持節·侍中·車騎大將軍, <帶方郡公>·<百濟王>如故. 二年, 又以<餘昌>爲<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

'제'가 '동위'에게 선양을 받자, 그 왕 '융'이 역시 통하였다. 그가 죽자 아들 '여창'이 역시 '제과 통하고, '무평'원년 '제'의 '후주'가 '여창'을 '사지절 시중 거기대장군'을 삼고, 대방군공, 백제왕은 옛날과 같았다. 이년 또 '여창'을 '지절 도독 동청주 제군사 동청주 자사'로 삼았다.

<周><建德>六年, <齊>滅, <餘昌>始遣使<通周>. <宣政>元年, 又遣使來獻.
'주' '건덕' 육년 '제'가 멸망하자 '여창'이 '주'에 사신을 보내도 통하기 시작하였다. '선정' 원년 또 사신을 보내어 헌납하였다.

<隋><開皇>初, <餘昌>又遣使貢方物, 拜上開府·<帶方郡公>·<百濟王>. 平<陳>之歲, 戰船漂至海東<牟羅國>. 其船得還, 經于<百濟>, <昌>資送之甚厚, 幷遣使奉表賀平<陳>. <文帝>善之, 下詔曰: [彼國懸隔, 來往至難, 自今以後, 不須年別入貢.]使者舞蹈而去.

十八年, <餘昌>使其長史<王辯那>來獻方物./$諸本無[十]字,《隋書》有. 按上文言昌遣使賀平陳, 平陳在開皇九年, 則此不得在八年. 下云[屬興<遼東>之役], 指<開皇>十八年<楊諒>·<高 >攻<高麗>事. 知脫[十]字, 今據補.$/ 屬興<遼東>之役, 遣奉表, 請爲軍導. 帝下詔, 厚其使而遣之. <高麗> 頗知其事, 兵侵其境. <餘昌>死, 子<餘璋>立./$《隋書》作:[<昌>死, 子<餘宣>立. 死, 子<餘璋>立.] 此當脫五字.$/ <大業>三年, <餘璋>遣使<燕文進>朝貢. 其年, 又遣使<王孝隣>入獻, 請討<高麗>. <煬帝>許之, 命 <高麗>動靜. 然<餘璋>內與<高麗>通和, 挾詐以窺中國.

七年, 帝親征<高麗>, <餘璋>使其臣<國智牟>來請軍期. 帝大悅, 厚加賞賜, 遣尙書起部郞<席律>詣<百濟>, 與相知. 明年, 六軍度<遼>, <餘璋>亦嚴兵於境, 聲言助軍, 實持兩端. 尋與<新羅>有隙, 每相戰爭. 十年, 復遣使朝貢. 後天下亂, 使命遂絶.

'수' '개황' 초에 '여창'이 또 방물을 밭치고 '상개부 대방군공 백제왕'을 하사받았다. '진'을 평정한 해에, 전선이 떠돌다 바다동쪽의 '모라국'에 이르렀다. 그배가 돌아 왔는데, '백제'를 경위하자, '창'이 두터훈 재물을 보내고, 아울러 사신을 보내어 '진'을 평정함을 경축하는 표를 받들었다. '문제' 이를 선히 여기어 조서를 내려 말하길, 너의 나라는 멀어 오고 감에 어려움이 있으니 이후로는 마땅히 공물을 받침에 해마다 하지 않아도 된다. 하니 사자가 춤을 추며, 떠났다.

십팔년 '여창'이 사신 장사 '왕변나'를 보내어 방물을 받쳤다. '요동'에서 전투가 일어나자, 표를 받들어 보내길, 군사를 이끌수 있도록 청하자, 제가 조서를 내려, 후이, 그렇게 하라 하니 이에 보냈다. '고려'가 이 사실을 알고, 병사로 그 지경을 침범하였다. '여창'이 죽자, '아들 여장'이 섰다. '대업' 삼년 '여장'이 사신 '연문진'을 보내어 조공하고, 그해 도 '왕효린'을 보내어, 헌납하며 '고려'를 치길 청하였다. '양제'가 이를 허락하고, 명하여 '고려'의 동정을 엿 보았다. 그리하여 '여경'이 안으로 '고려'와 화통하면서, 그 사이에서 거짓말 하며 중국을 엿보았다.

칠년, 제가 친히 '고려'를 정벌하자, '여장'이 신하 '국지모'를 보내어 군사를 보내기를 약속하자, 제가 크게 기뻐하며, 후하게 상을 하사하고, 상서기부랑 '석률'을 보내어 '백제'에 이르르자, 서로 무리됨을 알았다. 다음해, 여섯군대가 '요'를 건너고, '여장' 역시 병사가 지경에 이르러 군사를 돕는다 맹세하니 실로 양단에서 지켜야 했다. 평소 '신라'와는 틈이 있어, 매양 전쟁하였다. 십년 다시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후에 중국이 어지러워지자, 사신이 끊어졌다.

其南, 海行三月有<牟羅國>, 南北千餘里, 東西數百里, 土多 鹿, 附庸於<百濟>. 西行三日, 至<貊國>千餘里云.

남쪽 바다로 삼개월을 가면 '모라국'이 있다. 남북이 천여리이고 동서로 수백리이다. 땅에 노루와 사슴이 많고, '백제'에 의지하고 있다. 서쪽으로 삼일을 가면 '맥국'에 이르는데, 천여리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