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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받침대의 발달과정과 역사

吾心竹--오심죽-- 2010. 9. 2. 15:27

 

그릇받침대의 발달과정과 역사
가야와 신라를 중심으로

둥근 바닥의 그릇을 받쳐두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토기이다.
그릇받침대는 한문으로  기대(器臺)라고 일반적으로 표기한다.


<발달과정 및 역사>

둥근바닥 항아리가 유행한 백제, 신라, 가야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특히 경상도지방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납작바닥 토기가 널리 쓰인 고구려에서는 출토 예가 없으며, 둥근바닥 토기가 유행한 백제, 신라, 가야에서 주로 발견된다. 대체로 소백산맥을 경계로 나누어진 백제와 신라·가야의 기대는 같은 기능을 지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형태가 사뭇 다른 지역성을 보여주며, 신라와 가야의 기대는 사용목적에는 공통점이 많지만 형태와 활용에서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인 형태와 특징

기대의 종류에는 노형(爐形), 바리형(鉢形) 또는 고배형(高杯形), 통형(筒形), 환형(環形)이 있다. 

이밖에 바리형 기대는 신라에서 굽다리를 떼어내고 솥뚜껑으로 쓴 예가 있으며, 대가야에서는 늦은 시기에 그릇받침의 용도로 얕게 만든 퇴화된 예가 있다.

기대는 수발부(受鉢部: 그릇을 받쳐두는 부분)와 대각부(臺脚部: 굽다리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구분할 수 없는 또아리 모양도 있다.

몸체와 굽다리에는 삼각형, 원형, 긴사각형(장방형)등 여러가지 형태의 투공이 있거나 돌대(돌림선)가 돌아가기도 하며 장식띠를 붙이기도 한다.

그 형태에 따라서는 바리모양, 원통모양, 화로모양으로 구분된다.

원통모양의 그릇받침은 그릇이 올려져 있는 상태로 고분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그릇받침으로 사용된 것이 틀림없으며, 반면 화로모양과 바리모양의 그릇받침은 자체가 저장용일 뿐만 아니라 일반용기의 그릇받침으로도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노형 및 바리형의 기대는 굽다리 위에 넓고 깊은 수발부를 지니고 있어 저장 효용면에서 그릇받침의 실용성이 뛰어나다.
 바리형 기대는 대체로 노형 기대보다 굽다리가 점차 높아지면서 정형화되는데 이는 일반 용기로서의 의미 약화와 의례용기 기능 강화로도 해석된다


토제유개장경호와 발형기대


목긴항아리: 가야의 목긴항아리(長頸壺)는 입이 나팔모양으로 벌어진 것이 많다. 긴 목의 외면은 물결무늬(波狀文)로 장식하였는데, 이처럼 목에만 물결무늬 장식을 한 것은 가야에서 출토되는 목긴항아리의 특징이다.

그릇받침: 대부분 그릇을 받쳐두는 부분(受部)과 이를 지탱하는 부분(臺脚部)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것도 있다.  가야의 모든 종류의 그릇받침이 고령 대가야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뚜껑높이 : 6.8 cm / 뚜껑지름 : 17.1 cm / 높이 : 26.3 cm / 입지름 : 13.8 cm / 몸통지름 : 22.4 cm / 높이 : 28.7 cm / 입지름 : 31.3 cm / 받침지름 : 21.3 cm
경상북도(慶尙北道) 고령군(高靈郡)
기하문(幾何文) / 파상문(波狀文), 기하문(幾何文) / 점열문(點列文)


토기는 시대에 따라 조금의 변형이나 화려하게 장식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모양의 단순함이 밑바탕을 이룬다. 특히, 가야의 토기는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신라의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뚜껑: 뚜껑의 경우는 꼭지 모양에서 차이가 나는데, 가야의 것은 단추형이 많고, 신라의 것은 투공이 조성된 굽형이 많다. 뚜껑에 따라서는 외면에 무늬를 새겨 장식한 경우도 있는데, 점열문으로 장식한 경우가 많다.

특히 5세기 이후의 것은 제사유적 혹은 무덤의 특정지점에서 주로 발견된다. 신라의 무덤에서는 묘실(墓室)의 한쪽 모서리에 돋보이게 세워두는 공통성이 많이 관찰되며, 대가야에서는 무덤 주위 및 봉토에서 지냈던 묘사에 많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의 기대로는 화로형, 바리형, 원통형이 있다. 낙동강 동안 지역에서 볼 때, 화로모양에서 바리모양으로 변화하는 것이 비교적 뚜렷하다. 원통모양의 기대는 경주와 지방으로 나뉘어 지지만 후에 경주양식으로 대체되는 경향이다.


화로형기대(火爐形器臺)

화로형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대각부(굽다리 부분)가 높아지고 수발부의 굴곡도 약해지고 문양들도 사라진다. 경주지역에서는 화로형기대에 호를 바로 붙여 만든 특이한 형태도 나타난다.

입지름(입지름) : 34.7 cm /
바닥지름(바닥지름) : 25.7 cm / 높이(높이) : 30 cm




노형 기대(器臺)

 

 노형기대는 마치 트로피와 같은 형태인데, 위의 이미지처럼 굽이 몸체보다 길이가 낮거나 거의 비슷한 경우를 화로형 기대라하고, 이처럼 굽이 몸체(그릇받침부분)보다 월등히 높은 경우를 노형기대라고보면 된다.


바리형은 수발부는 깊으면서 화로형에서 보이는 굴곡이 약하게 남아있는 것에서 점차 얕아지고 곧게 나팔모양으로 벌어지는 것으로 변화한다.  문양은 파상문이 주된 문양이지만 경주양식에서는 격자문 또는 집선문과 원문을 조합한 형식으로 정착된다. 경주에서 정형화된 형식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다.


바리형기대

이 그릇받침은 바리모양이며, 가장 기본형이라고 할 수 있다.


굽다리에는 5단의 맞뚫림 창이 있으며 수발부에는 두줄의 음각선 아래 물결무늬, 다시 음각선 순으로 4단의 무늬가 넣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불균형을 이루나 전의 일부, 약 7cm가 깨져 나간 것을 제외하면 상태가 양호하다.

입지름 : 39 cm / 바닥지름 : 24.5 cm / 높이 : 30.7 cm


원통형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며, 4세기대까지 정형화되지 않았다. 
 5세기대도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는데, 이후 신라가 팽창과 더불어 경주에서는수발부는 접시모양으로 굽다리 모양은  나팔모양으로 변화하는데 이후 정형화된 형식으로 각 지역으로 확산된다.


기대형 대부단경호(器臺形臺附短頸壺)


 이 유물은 회청색 경질(硬質)로 거의 완형이다. 전체적으로 통형기대(筒形器臺)의 형태로 수발부(受鉢部)가 따로 없이 대각(臺脚)에 단경호(短頸壺)를 붙인 특이한 형태이다.

 단경호의 입구는 짧게 밖으로 벌어지며 몸통 최대지름은 중위에 있고 몸통 일부에 평행문이 타날되어 있다. 

 토기의 아랫부분인 대각부는 원통형으로 길게 내려오다 하위에서 넓게 벌어지고 6조의 돌대를 돌려 7단으로 구획하였다. 2∼6단에는 사각형의 구멍을 투창하였다. 가장 밑부분인 7단에는 사격자문(斜格子紋)을 시문하였다.

높이 : 49 cm / 입지름 : 13.9 cm /
받침지름 : 24.7 cm / 몸통지름 : 24.7 cm /
굽높이 : 29.1 cm / 두께 : 0.5 cm

경상북도(慶尙北道) 구미시(龜尾市)
물상문(物象文) / 격자문(格字文)

 
원통형 기대와 환형 기대는 처음부터 받침의 용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활유적에서 많이 발견된다. 위의 토기는 기본적으로 통형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대형의 원통형 기대의 경우 4세기경에는 주거지나 패총유적과 같은 생활 유적에서 종종 발견되지만 일상생활에 부적합 할 정도의 높이 솟은 형태로 보아 그릇받침의 단순기능을 넘어서서 의례적 기능이 더 강하다고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이뮤지움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내용은 풀어쓰거나 고쳐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