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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금령총 출토 토기 특별전

吾心竹--오심죽-- 2010. 9. 2. 15:26

경주 금령총 출토 토기 특별전

 상형토기란 오리, 말, 거북이등 동물에서부터 집이나 신발처럼 사물의 모양을 본따 만든 토기를 말한다.  그 중 말모양 토기를 통칭하여 마형토기라 하는데, 말은 고대의 가장 중요하고 빠른 육상교통수단이었기에, 다른토기들과는 달리 사람의 형태와 결합되어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말탄 사람의 형태를 갖춘 마형토기를 기마인물형 토기라 하는데, 삼국시대때 만들어진 다양한 상형토기중 단연 으뜸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마형토기는 가야지방에서 발생하여, 신라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또 마형토기는 다른 상형토기보다 고가의 가격으로 평가된 탓에,  도굴의 대상이 되기도 하여 현존하는 작품은 극히 소수이다.

 그러나  1924년 가을에 발굴된 금령총은, 비록 무덤이 소규모이긴 하지만 대단히 경이로운 기마인물형 한쌍이 출토되었다. 
  또한 왕관못지 않은 금관등도 발굴 되어 , 이 무덤의 주인은 단순한 왕의 친인척이 아니라 왕자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기마인물형 토기는 5-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출토당시 인물의 표현 형식이 매우 유사한 두 점이 발견되었다. 말을 탄 두 인물은 복식이나 착장한 마구의 형태로 보아 주인과 그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보고있다.

차림새가 호화스럽고 크기가 큰 인물이 왕족 계급의 신라 기마병, 즉 주인(主人)이고, 차림새가 소략하고 크기가 작은 인물은 주인을 수행하는 종자(從者)로 보는 견해가 다수의 의견이다.
그러나 주인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서 천민계급으로 봐서는 결코 안된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신라는 골품제에 위한 엄격한 계급제 사회였다. 

 따라서 말을 타며 왕족을 수행할 정도의 신분이라면, 아무리 낮게 보아도 일반평민 이하로는 볼 수 없다.

국보 91호 기마인물형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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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된 기마인물형 토기는 두점중 주인상으로 보고있는 토기이다.
토우 높이는 23.4cm이고, 길이는 29.4cm이며, 말탄사람뒤에 있는  깔대기 모양의 입구에 술이나 음료등을 따르면, 말의 가슴 앞에 뿔처럼 돌출된 출구에서 물이나오는, 그러니까 주전자 용도로 쓰인 토기이다.

 고깔 형태의 띠와 장식이 있는 삼각관모((冠帽)를 쓰고 있어 역시 높은 신분임을 보여주고 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갑옷과 끝을 오무린 바지형태인 대구고를 입고 있다. 

  왼쪽에는 칼을 차고 있으며 찰갑으로 하반신을 꾸미고 발은 등자에 얹혀 있다. 말에는 행엽(杏葉), 운주(雲珠), 장니(障泥), 안장(鞍裝), 혁구(革具) 등 마구류(馬具類)를 완전하게 갖추고 있어 이 당시 귀족들의 기마문화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수행인으로 보이는 인물상은 주인상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셋트로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에 주인상과 분리하여 따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또 이작품은 평상복 혹은 장례절차시에 입는 상복의 격식을  갖추고 있어, 주인상못지 않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인물의 머리는 상투로 보는 주장과 꼭지 달린 모자를 쓰고 있다고 보는 두가지 주장이 있다. 또 윗옷역시 소매등을 표시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생략되었거나 아예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오른손에는 방울 같은 것을 들고 흔들고 있으며 등에는 돈꾸러미 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인의 저승길을 인도하는 주술적인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금령총에서는 기마인물형토기외에 역시 한쌍으로 구성된 주형인물토기(노젓는 배모양 토기)가 발견되었다. 밑이 넓은 2단의 원기둥형 굽 위에 배가 얹혀져 있는데, 배 끝머리에는 사공이 등을 잔뜩 뒤로젖혀 노를 젖는 모습이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기마인물형 토기와 마찬가지로 배에 타고 있는 인물을 하나는 주인으로, 하나는 시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토기역시 기마인물형 토기와 마찬가지로  죽은 자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편안히 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배모양 토기는 이것 외에도 3∼4점의 토기가 출토되었지만, 현재까지 인물형의 토우까지 첨가된 것은 이작품이 유일하다. 

 또한 배 모양으로 볼 때, 가야에 이어 신라의 선박기술이 일본의 고대 선박기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