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진천 석장리 고대 철생산 유적...3세기부터 5세기

吾心竹--오심죽-- 2010. 7. 31. 11:12

 


진천 석장리 유적
진천 석장리 유적은 미호천 상류에 형성된 충적대지와 노령화된 낮은 구릉지대로 이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발 105m 내외의 야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완만한 구릉의 서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이 유적은 국립청주박물관이 실시한 진천군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찾아진 유적으로 1994년부터 1997년까지 4차년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는데, 발굴지역에서 모두 36기의 철 생산 또는 철제품 제작과 관련된 노적(爐蹟)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낮은 구릉의 작은 골짜기를 이루는 경사지를 이용하여 한정된 공간에 다양한 노적이 밀집해 있었다. 제련에서 단야(鍛冶)까지 일련의 공정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규모와 형태에 있어서도 장방형의 대형상형로(大形箱型爐)·원형로·방형로·장방형로 등 다양하게 조사되었다.
노(爐)의 구조적인 면에서는 경사지를 이용하여 간단한 기초시설을 한 지하식과 반지하식이 확인되었다. 특히 외곽에 'ㄷ'자 모양의 구덩이를 파고 그 내부에 노를 축조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연대는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볼 때 대체로 3세기부터 5세기 초까지 이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철 생산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진천 석장리 고대철생산 유적은 고대 국가 형성과정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 되었던 철 생산의 양상을 밝히는 중요한 유적으로, 다양한 노의 형태와 구조가 비교적 잘 남아 있어 고대 제련로의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송풍관 조각
제철의 원료인 철광석(혹은 사철)은 녹는점이 높기 때문에 화력이 좋은 참나무 등을 연료로 사용하며 높은 온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강한 바람을 제철로 안에 넣어 주어야 한다. 이때 바람을 넣어 주는 장치와 제철로 안을 연결시켜 주는 도구가 바로 송풍관이다. 제철로 안에 들어간 송풍관의 끝부분은 높은 온도 때문에 녹아내려 있고 원료가 녹는 과정에 생기는 불순물인 슬래그(slag)가 붙어 있다.

이런 슬래그는 일반적인 것과는 달리 자성을 강하게 띠며 철 성분이 많다. 따라서 이런 송풍관은 제철로 안에서도 철괴가 형성되는 높이 정도에 장치되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송풍관에 붙어 있는 슬래그는 모두 흘러내린 상태를 보여 노벽에 비스듬히 삽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노안에 삽입된 송풍관의 안팎에는 굵은 모래가 많이 섞인 흙을 덧발라 균열로 바람이 새는 것과 송풍관의 끝부분이 녹아내리는 것을 방지했다.

대장 도구
단야구는 대장간에서 쇳덩어리[鐵塊]를 달구어 원하는 형태의 철제품을 생산하는데 사용하는 작업도구이다. 그 종류로는 집게·망치·받침모루·끌·숫돌 등이 있으며, 불에 달군 덩이쇠를 집게로 집어 받침모루에 대고 망치로 두들기거나 끌로 잘라내서 여러 가지의 철기를 만든 다음 숫돌에 갈아 모양을 다듬는다.

단야구는 삼국시대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그 중 창원 다호리 17호 널무덤에서 나온 것이 이른 시기에 해당된다. 충북지역에서는 진천 석장리 철 생산 유적과 청원 주성리 유적에서 대장도구가 발견되었다. 한편, 삼국시대 말기에 발견되는 대장도구들 가운데에는 무덤에 넣어주는 명기(明器)와 같이 작은 형태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단양수양개선사유적
단양 적성면 수양개에 있는 후기구석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걸친 유적이다. 남한강가 충적대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을 끼고 있는 주위의 환경이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곳으로, 발견된 석기들은 다양하고 당시 만들었던 기술도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후기구석기시대에서 볼 수 있는 돌날몸돌과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슴베가 달린 찌르개는 중국 화북지방, 시베리아 남부지방, 일본 열도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나온 석기들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구석기시대 유적 주변에서 초기철기시대 집터가 발견되었는데, 집터의 생김새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중원지역 철기시대 생활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수양개 유적은 우리나라 선사문화와 동아시아 선사문화의 교류를 밝히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덩이쇠
백제의 철정(鐵鋌)에 대해서는『일본서기』에 근초고왕이 왜사신 이파이(爾波移)에게 철정 40매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철정은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옹관묘에서 출토되는데, 최근에는 대전 구성동 토광묘와 서천 오석리 토광묘, 청주 명암동 유적, 부여 논치리 유적 등 중부내륙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석장리 출토 철정은 형식상 이른 시기에 출토되는 세형철정으로 충남 대산리 토광묘 출토품이나 영산강유역의 옹관묘 출토품과 함께 한반도의 철정의 발생시기를 올리는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되며, 신라나 가야 지역과는 달리 소형 철정이 이른 시기에 출토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제사토기
진천 석장리에서는 용광로 옆에는 서로 다른 여러 개의 항아리를 모아 두기도 하고, 어떤 그릇은 일부러 깨뜨린 후 숯을 뿌렸다. 그리고 예쁘게 깨뜨린 단지 위에 항아리를 얹어 놓았다. 처음에는 용도를 알 수 없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옛부터 어려운 물건을 만들 때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 좋은 물건이 나오도록 빌었는데, 요즘 도자기를 만들 때도 이런 제사를 지낸다. 쇠 역시 비가 오거나 불을 잘못 다루면 실패하기 때문에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용광로 주변에서 음식물을 올려두는데 사용되는 제사용 그릇과 제물로 바쳤던 동물머리와 신을 위해 만든 장난감처럼 작은 그릇 등도 발견된다. 또 그릇을 깨거나 숯을 뿌려 나쁜 것을 물리쳤다.


#1 prologue
우리나라 고대의 철기는 중국 전국시대 철기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으며, 초기에는 낫, 괭이 등 주조철기 위주의 농공구류가 실생활에 보급되었다.
철기의 자체적인 생산은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여지는데, 이 때부터는 견고성이 요구되는 단조철기도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철기생산의 본격화 및 현지화, 제조기술의 발전은 다른 부분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토기의 출현, 생산력의 증대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이 가속화되어 최초의 국가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2 고대의 철생산 과정
고대의 철 생산은 주로 원료채취에서부터 제품생산까지 일련의 공정을 필요로 하는 생산체계를 갖추었다.
철기를 생산하는 과정은 원료를 채취하는 채광작업, 철광석을 녹이는 제련과정, 그리고 철소재와 도구를 만드는 주조와 단조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3 채광작업
채광작업은 원료가 되는 철광석 또는 사철을 채취하는 과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분석된 철기는 모두 철광석을 원료로 하여 제작된 것으로 분석되어 있으나 최근 진천 석장리 유적에서 사철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4 제련작업
제련작업은 채광된 원료인 철광석이나 사철을 녹여 비중이 낮은 불순물인 쇠똥을 분리하여 선철을 채광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숯, 송풍시설, 제련로 등이 필요하다.
삼국시대의 제련로는 진천군 석장리 유적에서 상형로와 원형수혈로가 조사된 것이 유일하다. 철광석은 녹는 점이 높기 때문에 화력이 좋은 숯을 연료로 사용한다. 풀무에 송풍관을 연결시켜 제철로 안에 오랜 시간 동안 강한 바람을 불어넣어 철광석을 녹이기 때문이다.
장시간 높은 온도의 화력을 지탱해줄 수 있는 강한 바람이 손풀무로 가능한지 복원품을 제작하여 실험해 보기도 하였다.

#5 주조와 단조
주조는,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제품을 만드는 방법으로 주로 농기구나 솥 등 대량으로 철제품을 생산하는데 이용되었다. 또 다른 철기제작과정인 단조는 대장간에서 덩이쇠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들겨 원하는 형태의 철제품을 만드는 방법으로, 주로 견고성이 요구되는 무기제작에 사용되었다.

#6 철기 관련 유적지
한편 철기생산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로는 각종의 철재(Slag)와 철괴, 노벽, 송풍을 위한 송풍관, 주조를 위한 거푸집과 안틀 등이 있다.
대규모 제철소에서 사용되거나 만들어진 유물들은 진천, 청주, 충주, 청원, 단양 등지의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었다.
그 중 원삼국시대의 백제 최대의 제철로라고 할 수 있는 진천 석장리유적은, 철 생산의 전반적인 공정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진천 석장리 제철로에서 생산된 철기류로는 쇠도끼, 송풍관 조각과 송풍관 등이 있으며, 거푸집안틀과 숫돌, 쇠똥 등도 발견되었다.
또한 단지, 독, 굽다리접시 등의 토기류도 다량 출토되었는데, 그 중 단지와 단지아가리, 단지아가리조각 등과 같은 유물은 철기제작과 관련한 제의문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다.
또한 원삼국시대 진천 송두리유적의 발굴유물로는 쇠손칼, 쇠낫, 쇠도끼 등의 철기류와 주머니모양 단지, 손잡이 달린 단지 등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청주 봉명동 무덤유적에서는 쇠화살촉, 쇠낫, 숫돌, 고리자루칼 등과 함께 주머니모양 단지, 흑색토기, 목단지, 손잡이 달린 단지 등이 출토되었다.
단양 수양개유적은 남한강가에 형성된 원삼국시대의 마을유적이다. 발굴유물로는 가지창과 쇠투겁창, 발걸이 등의 철기류와 옥장신구가 있으며, 토기단지, 토기바리 등의 토기류와 제사음식을 만들었을 법한 시루도 발견되었다.

#7 epilogue
이 외에도 청주 명암동과 신봉동, 그리고 송절동, 충주 하천리 등의 유적이 있으며 이런 유적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전해 온 철의 생산과 철기문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죠나단 리빙스턴 2007.06.05 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