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우리나라 고대의 철기는 중국 전국시대 철기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으며, 초기에는 낫, 괭이 등 주조철기 위주의 농공구류가 실생활에 보급되었다. 철기의 자체적인 생산은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여지는데, 이 때부터는 견고성이 요구되는 단조철기도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철기생산의 본격화 및 현지화, 제조기술의 발전은 다른 부분까지 영향을 미쳐 새로운 토기의 출현, 생산력의 증대와 같은 결과를 낳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이 가속화되어 최초의 국가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2 고대의 철생산 과정 고대의 철 생산은 주로 원료채취에서부터 제품생산까지 일련의 공정을 필요로 하는 생산체계를 갖추었다. 철기를 생산하는 과정은 원료를 채취하는 채광작업, 철광석을 녹이는 제련과정, 그리고 철소재와 도구를 만드는 주조와 단조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3 채광작업 채광작업은 원료가 되는 철광석 또는 사철을 채취하는 과정이다. 현재 국내에서 분석된 철기는 모두 철광석을 원료로 하여 제작된 것으로 분석되어 있으나 최근 진천 석장리 유적에서 사철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4 제련작업 제련작업은 채광된 원료인 철광석이나 사철을 녹여 비중이 낮은 불순물인 쇠똥을 분리하여 선철을 채광하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숯, 송풍시설, 제련로 등이 필요하다. 삼국시대의 제련로는 진천군 석장리 유적에서 상형로와 원형수혈로가 조사된 것이 유일하다. 철광석은 녹는 점이 높기 때문에 화력이 좋은 숯을 연료로 사용한다. 풀무에 송풍관을 연결시켜 제철로 안에 오랜 시간 동안 강한 바람을 불어넣어 철광석을 녹이기 때문이다. 장시간 높은 온도의 화력을 지탱해줄 수 있는 강한 바람이 손풀무로 가능한지 복원품을 제작하여 실험해 보기도 하였다.
#5 주조와 단조 주조는,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제품을 만드는 방법으로 주로 농기구나 솥 등 대량으로 철제품을 생산하는데 이용되었다. 또 다른 철기제작과정인 단조는 대장간에서 덩이쇠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들겨 원하는 형태의 철제품을 만드는 방법으로, 주로 견고성이 요구되는 무기제작에 사용되었다.
#6 철기 관련 유적지 한편 철기생산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로는 각종의 철재(Slag)와 철괴, 노벽, 송풍을 위한 송풍관, 주조를 위한 거푸집과 안틀 등이 있다. 대규모 제철소에서 사용되거나 만들어진 유물들은 진천, 청주, 충주, 청원, 단양 등지의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발견되었다. 그 중 원삼국시대의 백제 최대의 제철로라고 할 수 있는 진천 석장리유적은, 철 생산의 전반적인 공정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진천 석장리 제철로에서 생산된 철기류로는 쇠도끼, 송풍관 조각과 송풍관 등이 있으며, 거푸집안틀과 숫돌, 쇠똥 등도 발견되었다. 또한 단지, 독, 굽다리접시 등의 토기류도 다량 출토되었는데, 그 중 단지와 단지아가리, 단지아가리조각 등과 같은 유물은 철기제작과 관련한 제의문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다. 또한 원삼국시대 진천 송두리유적의 발굴유물로는 쇠손칼, 쇠낫, 쇠도끼 등의 철기류와 주머니모양 단지, 손잡이 달린 단지 등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청주 봉명동 무덤유적에서는 쇠화살촉, 쇠낫, 숫돌, 고리자루칼 등과 함께 주머니모양 단지, 흑색토기, 목단지, 손잡이 달린 단지 등이 출토되었다. 단양 수양개유적은 남한강가에 형성된 원삼국시대의 마을유적이다. 발굴유물로는 가지창과 쇠투겁창, 발걸이 등의 철기류와 옥장신구가 있으며, 토기단지, 토기바리 등의 토기류와 제사음식을 만들었을 법한 시루도 발견되었다.
#7 epilogue 이 외에도 청주 명암동과 신봉동, 그리고 송절동, 충주 하천리 등의 유적이 있으며 이런 유적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발전해 온 철의 생산과 철기문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