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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logue 김수로왕과 열 하나의 알에서 나온 각각의 왕들이 건설한 왕국으로 알려진 가야는, 고고학적인 기준에서 금관가야ㆍ대가야ㆍ소가야ㆍ아라가야ㆍ성산가야ㆍ고령가야 등의 국명들로 알려져 왔다. 이렇듯 소국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던 가야가 고대사학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와 거의 대등한 수준의 비중을 갖는 이유는, 다름 아닌 철의 생산과 생산 체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고대 사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포함한 국력의 상징이 철 생산으로 결정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 가야의 다양한 철제무기들 #3 무기체계의 변천과정과 의미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추측할 수 있게 된 것은 6가야 중심으로 많은 패총들과 유적이 발굴 조사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6가야 중 금관가야였으며, 현재까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목가리개, 고리자루칼, 삼지창 등과 같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고고학 상으로 대가야로 분류되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1906년부터 조사가 시작되었다. 출토유물로는 판갑옷과 투구, 말머리가리개, 화살통과 화살촉 등이 있다. 역시 대가야에 속해 있던 반계제 고분군은, 고리자루칼과 금동투구 등이 발굴되었다. 5세기에서 6세기 아라가야의 것으로 추정되는 함안 도항리 마리산의 철제무기류는 1917년 일제시대에 처음 조사되었는데, 대표적인 유물로는 말갑옷 등이 있다. #5 epilo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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