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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最古 백제 이두문 찾아냈다

吾心竹--오심죽-- 2010. 1. 31. 17:29

역사 게시판

   (2003-07-18 08:39:04, Hit : 910
 현존 最古 백제 이두문 찾아냈다
현존 最古 백제 이두문 찾아냈다  


기원후 520년 백제 시대에 쓰인 이두문(吏讀文)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무령왕릉(1971년 발굴)에서 출토된 사마왕 왕비의 은팔찌(국보 160호)에 음각돼 있는 명문(銘文)이 이두문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다. 이 팔찌의 명문은 무령왕릉이 발굴된 지 30년이 넘도록 무슨 의미인지 해석이 되지 않았었다.

정재영(한국기술교육대 국어국문학.사진)교수는 이같은 주장을 담은 논문 '백제의 문자 생활'을 오는 24~25일 '한국과 일본의 한자.한문의 수용'을 주제로 일본에서 열릴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정교수의 논문은 한자가 일본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일본에 영향을 준 시기를 대폭 앞당기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에 주목된다.

팔찌에 새겨 있는 글자는 "庚子年 二月 多利 作 大夫人□ 二百 主耳"다. '경자년(庚子年)'은 서기로 환산하면 520년이다. 이 글씨가 이두문이라면 560년 이후에 쓰인 신라.고구려의 이두문보다 앞선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백제에는 이두문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교수의 주장에 따라 이 문장을 요즘말로 풀이하면 "520년 2월 다리(多利:사람이름)가 만들었다. 대부인(왕비)의 장신구(팔찌)는 1백66g이다"가 된다. 제작자와 제품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 문장에서 백제 시대 문자 생활의 비밀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이 정교수의 주장이다.

정교수가 이 명문을 이두문으로 내세우는 근거는 세가지다. 첫째는 이 문장의 어순이 우리말 어순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말 하듯이 글을 쓰되 문자만 한자로 빌려다 쓰는 이 같은 방식이 이두문의 특징이다.

둘째는 우리가 쓰고 있던 말을 문자로 표현하기 위해 한자를 빌리고 있다는 것이다. 팔찌를 만든 장인인 '다리'의 표기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주(主)'자의 경우도 고대의 무게단위인 '수(銖)'자를 차용해 쓰고 있다고 했다. 이 문장에 나오는 '2백30주'를 요즘 무게 단위로 바꾸면 1백66g 정도가 된다.

다음으로 세번째 근거는 문장 맨 끝에 나오는 '이(耳)'자를 문장 종결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 종결사로 쓰인 '이'자의 용례는 다른 이두문에서도 발견된다. 정교수는 이와 함께 '대부인'다음에 쓰인, 무슨 글자인지 몰랐던 한 글자가 모양상 '영(永)'자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를 장신구로 연결시켰다.

정교수는 "이두문의 또 다른 특징인 구결이나 토를 다는 것은 8세기 이후에나 나오기 때문에, 이 팔찌의 문장에는 구결이나 토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어순, 한자 차용, 문장 종결사를 모두 갖춘 이 문장은 초기 이두문의 가장 완벽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