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 濟

'熊'의 뜻과 구다라[百濟]의 어원

吾心竹--오심죽-- 2010. 1. 29. 15:38

고대사산책 [2]



  고대사산책 (2003-04-27 10:35:06, Hit : 1819, Vote : 87
 '熊'의 뜻과 구다라[百濟]의 어원



● '熊'계열 지명


○ 백제수도 웅진은 신시

지금의 공주는 옛 이름이 熊津으로 사국시대 백제의 도읍지다. 어느 때 이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수도명에 동물이름을 썼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래서 음운변화의 특성을 추적하여 원래의 이름으로 돌려보았다. 고어 음 중에서 지금은 없어진 음이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그 중엔 자음이 몇 개 없어졌고 모음으로는 '아래아'가 없어졌다. 웅진이 원래는 아래아에 해당하는 발음에서 후대에 갈라져 나온 이름으로 판단된다.

흔히 '곰나루'라고 한다. 한자뜻을 직역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루[津]'는 배타는 '나루'가 아니라 '나라'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나라'라는 음에 가까운 훈인 '나루(터)'의 음 '진(津)'을 빌려 쓴 것이다. 제대로 하자면 '나라' 또는 '땅'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 羅, 城, 本, 國, 達, 原, 州, 市 등으로 표기되는 말이다.

곰[熊]은 원래 아래아로 발음되던 것이었다. 즉 '(ㄱ+아래아+ㅁ)[熊]'인 것이다. 이 말이 변화된 과정을 보면 아래아는 두 가지 모음으로 분화되었는데 (아래아>아, 오)로 되므로 "(ㄱ+아래아+ㅁ)>(감, 곰)"이다. 이 중에서 '아'로 분화된 말은 '감[神]'이고 '곰[熊]'은 '오'로 분화된 발음이다. 그런데 감[神]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되고 熊은 이 '곰'을 훈으로 하는 한자를 빌려쓴 것이다. 원래의 뜻 神이 곰[熊]으로 표기된 것이다.  

'감'으로 발음된 것이 지금도 일어에 남아있기는 하다. '감'이 받침이 없는 일어에는 명사형어미 '이'가 붙어 '가미[神]'로 음과 뜻이 그대로 살아있다. 일어의 어원은 한어가 대단히 많다. 가야가 열도를 최초로 대규모로 개척하고 나중에 백제가 뒤를 이어 열도를 제후국으로 병합했기 때문이다.        

기·기의 신대기에 보면 '가무[神]'로도 흔히 읽고 있다. 이것은 한어 음 '감'이 받침 없는 일어에서는 '가미', '가무' 두 가지로 발음됐음을 의미한다. 일본에 건너간 한어가 지금의 한어와 비교하면 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간[神]'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웅진을 최초의 지명으로 돌리기 위해 위에 든 땅을 뜻하는 羅∼市까지의 용례 중에서 적당한 것을 짝맞춤 해보면 '神市'가 될 수 있다. 고조선건국신화에 환웅천왕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베풀었다던 바로 그 神市다. 신시의 뜻은 왕도를 얘기한다. 고대엔 王이 곧 神과 같은 존재였다. 왕이 죽을 때는 붕(崩)했다고 얘기한다. '붕하다'를 일어로는 '가무아가루'라고 한다. '가무'는 '신'이고 '아가루'는 '올라가다', '마치다', '완성하다'는 뜻이 있다. 천신사상에서 "왕이 죽어 하늘로 올라갔다" 또는 "왕이 일생을 마쳤다"는 뜻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고대에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면 그 수도를 신시라고 부르는 전통이 있었던 것 같다. 또 수도를 옮길 때도 새로운 수도 이름을 신시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웅진과 같은 뜻을 가진 지명 중에 전북 익산의 熊浦, 경남 진해의 熊川도 있다.


○ 구마모도[熊本]도 신시

일본에도 똑같은 뜻의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 가야인들이 개척하여 나라를 세웠던 지금의 구주의 중심지에 있는 구마모도[熊本]가 그곳이다. 기·기에 보면 구주서남부의 사쯔마[薩摩]반도와 노마[野間]반도에는 4세기중엽까지 반도의 경주신라와 같은 이름의 新羅가 있었고 이곳은 신라왕자 천일창이 개척한 나라다. 반도에서 열도로 건너가서 "새로 개척한 땅"이라는 의미로 신라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구주에는 이 나라 외에도 가야인이 개척했던 소국이 여럿 더 있었다. 웅습국(熊襲國/襲國), 화국(火國/肥國), 위북국(葦北國), 풍국(豊國), 일향국(日向國), 이도국(伊覩國) 등이다. 기·기에 나오는 신라는 대부분이 가라를 가리킨다. 사기 지리지 함안군조의 이두식 고명 아시라[阿尸良]를 한자로 옮기면 新羅인 것이다. 일어의 '本'은 터, 땅을 뜻하는 '기(基)'와 발음도 같고 뜻도 같다. 모도[本]>모도[基]인 것이다. 즉 熊本도 神市인 것이다.  


○ 熊은 大의 뜻도  

熊의 훈 '곰'이 기·기에 보면 크다는 뜻으로 쓴 사례도 흔히 보인다. 즉 '큰'을 '고노', '구누' 등으로 쓴 것이 자주 보인다. 이것은 '큰(근)'을 열도음으로 하면 '으'에 해당하는 말은 열도어에서는 '스'와 '쯔'밖에 없으므로 나머지는 일종의 원순모음화현상으로 '오'나 '우'로 발음되고 받침 없이 흘려서 발음하면 '고노', '구누'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곰은 '크다[大]'의 명사형인 '큼[大]'이 '콤(곰)', '쿰(굼)'으로 되므로 이 중에서 '곰'을 훈으로 하는 한자 熊을 大의 뜻으로 쓴 것이다.          

고대에는 키역[ㅋ]과 기역[ㄱ]은 엄밀히 구분되지 않았다. 즉 웅진>곰나루>큼나라>큰나라>대국의 의미로도 쓰였던 것이다. 백제를 대국으로 봤다는 얘기다. 미음이 니은으로 니은이 미음으로 변하는 것은 일어에서 '응( )'이 N, m, ng 등으로 발음되는 현상 중에 (N, m)으로 갈라지는 경우와 유사한 경우로 보인다. 또 '굼[熊]'이 일어에서는 받침 없이 명사형어미 '아'가 붙여 읽어 '구마[熊]'가 된 것이다.


○ 웅녀는 신녀

熊이 神이므로 고조선건국신화의 웅녀는 곰녀[熊女]가 아니고 神女인 것이다. 제사나 종교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神'자를 쓴 神女라고 해서 신라의 천관녀 같은 제사를 받드는 데 관여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인들의 신화·설화 구성기법이지 원시종교나 제사의식과는 전혀 무관한 말이다.                

고대인은 천신사상에서 왕을 천신의 아들로 인식하고 왕을 신격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웅천왕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천왕은 곧 천신인 것이고 그 천신과 혼인했다고 설정한 여인을 신녀라고 부른 것인데 한역하면서 웅녀로 표기한 것뿐이다. 또 실사상의 인물이 아니고 의인화된 인물이다. 곰[熊]이란 동물의 이름을 썼다고 해서 토템이니 뭐니 여태 오해들을 해왔으나 토템과도 전혀 무관한 말이다.          


○ 웅진이 공주로 변한 과정

웅진이 공주로 변한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바꾼 시기는 별개의 문제로서 고대인들이 지명을 짓는 발상이 중요한 것이다. 우선 웅진을 직역한 '곰나루'에서 후대에 '州'를 지명에 많이 썼으므로 '(곰)州'로 놓는다. '곰'은 이 말의 음에 가장 가까운 한어 음을 찾아보면 '굼', '궁', '공' 세 개가 있다. 그 중에서 '굼'으로 하면 한자가 없고 '궁'으로 하면 모음도 달라지고 받침도 달라지니 '공'이 제일 가깝다. 그러면 '(공)州'가 된다. 발음을 바꿨으니 뜻만 괜찮은 것을 고르면 된다. 그게 바로 '公'이다. 이리하여 公州가 된 것이다. 무턱대고 아무렇게나 바꾼 것이 아니다. 이러한 논리적인 과정을 거쳐서 바꾼 지명인 것이다. 웅진을 공주로 바꾼 것은 동물이름을 피하기 위해서였든지 백제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지우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 금미달

유사에 평양의 옛 지명이 금미달(今彌達)이라고 나와 있다. 여기서 '달'은 역시 땅을 말하고 '금미'는 '곰'과 유사음으로 보인다. 지명을 기록하는 시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면 약간의 차이는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기·기에 보면 '큰'을 '고노', '구누'라고 이두로 표기한 것이 많다. '으'가 '오'로도 표기되었다는 얘기다. '으'가 '오'나 '우'로 변하는 것은 원순모음화현상이다. '으' 발음이 없는 일어에서는 더 심하다. 그러면 '금미'는 '곰미'가 되고 같은 미음이 겹쳐 '미'가 탈락하면 '곰'이 된다. 금미달>곰미달>곰달[熊達]이 된다. 이 또한 원래의 뜻은 신시다.            

다시 변화를 역순으로 정리하면 금미달>곰미달>곰달>(ㄱ+아래아+ㅁ)달>신시, 금미달>검미달>검달>감달>(ㄱ+아래아+ㅁ)달>신시가 되는 것이다. 해산후에 부정예방을 위해 치는 줄을 검줄[神索]이라 하는데 원래의 발음은 '감줄'이지만 '검줄'로 발음되고 있다.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이 교체되어 발음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검>금이 되는 것은 경상도 사투리에서 '으'와 '어'가 구분이 잘 안 되는 것이 그 사례다.  


● 구다라는 대국


○ 구다라와 오다라

열도어로 백제를 '구다라[百濟]'라고 한다. '구'라는 말은 '큰[大]'으로 해석한다. 서기에 구다라에 상대되는 '오다라[意多郞]'라는 말도 나온다. 구다라는 반도의 백제를 가리키고 오다라는 열도의 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오다라의 '오[意]'는 '오[小]'와 같은 말이다. 열도 또는 열도의 후왕을 가리키는 말로 의다랑(意多郞)이라 쓰고 '오다라'라고 읽은 것이다. 오다라[意多郞]>오다라[小多羅]>小國이라는 뜻이다.

서기 무열기 3년(서기 501년)조에 오다라[意多郞]가 죽었다고 나온다. 이것은 은유인데 그 이전의 백제·왜 분립상태에서 열도출신 동성대왕이 서기 479년에 영토통합을 이룩했고 동성대왕이 서기 501년에 암살되고 무령왕이 즉위하면서 '오다라'가 죽었다고 했다. 무열기 3년조 기록은 동성대왕의 아들이 후왕으로 열도에 있다가 무령왕의 아들로 교체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동성대왕의 아들은 부왕처럼 암살됐을 가능성도 있다.        
    
동성대왕이 즉위한 이후로 대왕의 아들들을 열도에 차례로 후왕으로 파견한 기록이 서기에 나온다. 동성대왕을 등재한 흠명기 4년 12월조에 동성도천(東城道天)이란 인물이 나오고 8년 4월조에 동성자언(東城子言)이 나오며 15년 2월조에 동성자언과 교대되는 동성자막고(東城子莫古)가 등장한다. 동성대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분식이칭을 통해서 바로 알려주고 있다. 東城은 동성대왕 집안인물이란 뜻이고 東城子가 "동성대왕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또 동성대왕을 등재한 무열기 7년 2월조에 무령왕의 아들 사아가 파견되는 것이 분명히 나온다. 무령왕의 휘인 斯摩를 이용하여 "(사)마의 (아)들">(사)(아)>斯我로 만든 이칭이다.

'다라'는 나라[國], 땅[土]의 이두표기로 본다. '다라'는 일어에서 토지, 들, 평야를 뜻한다. 사국시대에 제주를 탐미다례(耽彌多禮) 또는 침미다례( 彌多禮)라고 했고 또 다라(多羅)라는 소국이름이 나온다. 국명 또는 땅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말하자면 땅을 뜻하는 말들 달(達), 벌(伐), 원(原), 시(市), 발(火+本), 국(國), 라(羅), 본(本), 양(壤), 홀(忽), 나(那), 성(城), 주(州) 등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침=심방변+枕-木)

그런데 이 '다라'는 달(達)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달은 우리말 땅[地/土]의 이두표기로 보는데 달에 명사형어미를 붙여 받침 없이 흘려서 발음하면 '다라', '다루', '다리' 등으로 소리나는데 이 중의 하나인 것이다. 즉 땅의 이두표기 '達'에서 2차적으로 파생된 단어로 본다. 다례(多禮)는 다라(多羅)의 다른 발음이라고 해야겠다. 다례(多禮)의 '례'는 경상도사투리에서 '어', '여', '에', '예'를 '이'로 발음하는 경향을 적용하면 '리'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즉 '다례'는 지금과는 달리 '다리'로 발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사기에 신라 14세 '儒禮王'을 '儒理王'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례 중의 하나다.          

또 받침 없이 명사형어미를 붙일 때 열도어 모음 중에서 '에'를 붙인 것이라고 봐도 된다. '나루(터) 진(津)'을 '나라', '나리'로도 표기하는데 이것은 열도어 모음 중에서 각각 '아', '이'를 붙인 것이다. 예를 들면 다다라[盾津/韜비津]의 경우는 다다[盾]+나라[津]=다다라[盾津]가 된 것이다. '나'는 복합어가 되면서 탈락한 것이다.


○ 구다라[百濟]의 어원

구다라[百濟]의 어원을 추적해보면 '일백 百'은 그 자체로 완성된 수로서 '크다[百]' 또는 '많다[百]'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고 '건널 濟'는 열도어로 '와다루[濟]'이다. 여기서 '크다'의 어간 '크[百]'는 열도어에 '크/그'가 없으므로 원순모음화현상이 작용하여 '쿠/구[百]'가 되고 '와다루[濟]'는 복합어가 되면서 '와'가 탈락하여 '다루[濟]'가 될 수 있는데 '나루 津'이 열도어 구마나리[熊津]에서 보다시피 '나리[津]'로 읽히기도 하고 다다라[盾津]처럼 '나라'로도 읽히고, 내/나이[川]가 열도어 구마나레[熊川]에서 보다시피 '나레[川]'로 읽히는 경우도 있으므로 '다라[濟]'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크[百]다+와다[濟]루)>(구[百]+다라[濟])>구다라[百濟]가 되는 것이다.  

백(百)이 많다[多], 크다[大]는 뜻을 가지는 용례가 다름 아닌 칠지도 명문 속에도 들어있다. 백련철(百練鐵)의 '百'은 다회(多回)라는 뜻이고 백병(百兵)의 '百'은 수많은 군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통상 규모가 크다는 의미에서 대병(大兵), 대군(大軍)이라 할 수 있으므로 크다[大]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 각도를 달리하여 백제는 大王이 다스리는 大國이고 열도는 대왕이 임명한 후왕이 다스리는 小國이므로 백제>대국으로 놓고 크/그[大]>구[大]가 되고 國은 한편으로 '땅'의 이두 달[達]>다라(多羅)와 같으므로 구[大]+다라[國]>구다라[大國]>백제로 된 것이기도 하다.  


○ 구다라나이

일어에 '구다라나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전에 보면 시시하다, 하찮다, 가치 없다 등으로 나오는데 원래는 '의미없다', '소용없다'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가치없다'는 말이 가장 가까운 의미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은 백제가 망했을 때 당시 열도는 백제의 후국이었고 백제를 상국이자 본국으로 섬겼고 항상 크게 기대는 언덕 같은 존재였지만 망한 후에는 "이미 망한 본국을 생각하고 아무리 애통하게 울부짖고 몸부림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그 때 당시 열도인들의 심리가 반영되어 생겨난 말이다. '구다라나이'란 말은 이런 상황이 지난 후에 다시는 반도로 돌아올 수 없음을 깨닫고 체념하는 마음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게 된 말인 것이다. 지금은 뜻이 와전되어있다. 원래의 뜻은 "백제는 이제 없다"라는 뜻인데 의미없다, 가치없다로 바뀐 것이다. 한자도 '구다[下]루'로 바뀌었다.                    

    
○ 오국도 구다라

일본서기에는 '구다라'라는 뜻으로 吳國을 쓰기도 했다. 이 '오'의 발음은 역시 우리말 이두표기이고 일어발음 '구루'에서 어간 '구'와 등치시켜 쓴 것이다. 백제를 오국으로 표기한 것은 백제라는 국명을 가리기 위해서였고 「반도어 (오)다 > 반도어 이두 (吳)다 = 열도어 (구)루」 > 「(오)다=(吳)다=(구)루」에서 (吳=구)로 놓고 구다라[百濟]>구다라[吳國]로 바꾸어 쓴 것이다. 일본에 이 이두표기 지명이 지금도 살아 있다. 히로시마 근방의 구레[吳]가 그곳이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오국을 중국의 오나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연대도 틀리고 말도 안 된다. '구다라[百濟]' 대신에 쓰인 말로서 백제를 뜻한다. 일본서기와 고사기는 4세기 중반 이후의 백제와 가야의 실사를 바탕으로 개작한 사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