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 濟

구다라[百濟]와 오다라[意多郞]

吾心竹--오심죽-- 2010. 1. 29. 15:21

'구다라[百濟]'의 어원을 밝힌다 | 고대 행정,군사 ,제도,민족

전체공개 2004.10.31 00:57
구다라[百濟]와 오다라[意多郞]

일본말로 옛날의 반도백제를 '구다라'라고 한다. '구'라는 말은 '큰'으로 해석한다. 서기에 구
다라에 상대되는 '오다라[意多郞]'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옳다고 본다. 구다라는 반도
의 백제를 가리키고 오다라는 열도의 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오다라의 '오[意]'는 한자
소(小)에 해당하는 말이다. 열도 또는 열도통치권자를 가리키는 말로 의다랑(意多郞)이라 쓰
고 '오다라'라고 읽은 것이다.

서기 무열기 3년(서기 501년)조에 오다라[意多郞]가 죽었다고 나온다. 이것은 굉장한 은유
다. 그 이전의 백제·왜 분립상태에서 열도출신 동성대왕이 서기 479년에 영토통합을 이룩
했고 동성대왕이 서기 501년에 암살되고 무령왕이 즉위하면서 오다라가 죽었다고 했다.

동성대왕이 즉위한 이후로 대왕의 아들들을 열도에 차례로 후왕으로 파견한 기록이 일본서
기에 나온다. 다만 읽으면서 분식된 표면기사만 보니 실사를 몰라볼 뿐이다.

서기 무열기 3년조(서기 501년) 기록은 동성대왕의 아들이 후왕(侯王)으로 열도에 있다가
무령왕의 아들로 교체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무령왕의 아들이 후왕으로서 열도에 부임하
는 기사도 나온다. 동성대왕의 아들은 부왕처럼 암살됐을 가능성도 있다. 무열천황은 백제의
동성대왕을 분식한 인물이다.


'구'의 어원은 우리말 '크다'의 어간

'구'의 어원을 보면 우리말 큰, 크다에서 어간 '크'만 떼서 표기한 것이고 '크'가 원순모음화
현상으로 '쿠'가 된 것이다. 즉 큰>크다>크(그)>쿠(구)가 된 것이다.


다라(多羅)는 나라[國], 땅[土]의 이두표기

그러면 '다라'는 무슨 말인가? 보통 나라[國]나 땅으로 해석한다. 그 어원이 무엇일까? '다
라'는 일어에서 토지, 들, 평야를 뜻한다. 사국시대에 제주를 탐미다례(耽彌多禮) 또는 침미
다례( 彌多禮)라고 했고 또 다라(多羅)라는 소국이름이 나온다. 국명 또는 땅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말하자면 땅을 뜻하는 말들 달(達), 벌(伐), 원(原), 시(市), 발( ), 국(國), 라(羅), 본
(本), 양(壤), 홀(忽), 나(那), 성(城), 주(州) 등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그런데 이 '다라'는 달(達)에서 나온 듯하다. 달(達)은 우리말 땅[地/土]의 이두표기로 보는
데 달(達)에 명사형어미를 붙여 받침 없이 흘려서 발음하면 '다라', '다루', '다리' 등으로 소
리나는데 이 중의 하나인 것이다. 즉 땅의 이두표기 달(達)에서 2차적으로 파생된 단어로 본
다. 다례(多禮)는 다라(多羅)의 이음(異音)이라고 해야겠다.

다례(多禮)의 례(禮)는 경상도사투리에서 '어', '여', '에', '예'를 '이'로 발음하는 경향을 적용
하면 '리'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즉 '다례(多禮)'는 지금과는 달리 '다리[多禮]'로 발음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또 받침 없이 명사형어미를 붙일 때 열도어 모음 중에서 '에'
를 붙인 것이라고 봐도 된다. 나루(터) 진(津)을 '나라', '나리'로도 표기하는데 이것은 열도어
모음 중에서 각각 '아', '이'를 붙인 것이다. 열도어는 반도어 중에서 가야어(=진한어)가 그
어원인 것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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