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羅

대중국교역의 중요한 항포인 남양만의 당은포를 점유하고

吾心竹--오심죽-- 2009. 12. 23. 12:12

소개글

한국 고대사 발표자료
통일신라 해상활동

목차

발표주제:통일신라의 해상활동 (統一新羅의 對外關係 中)
1) 항로의 개척과 항해술의 발전
(1) 북방해로(노철산항로)
(2) 황해횡단항로
(3) 남방해로
(4) 선박과 항해술

2) 해외무역
(1) 수출품
(2) 수입품
(3) 일본과의 교역
(4) 이슬람과의 교역

3) 당에서의 활동
(1) 유학생과 문인의 교류
(2) 구법승의 순례
(3) 재당 신라인과 무역상

본문내용

신라가 독자적으로 중국과 교류하여 국제무역활동에 등장하게 된 것은 진흥왕 25년 북제와의 교역에서 비롯된다. 이때 신라는 대중국교역의 중요한 항포인 남양만의 당은포를 점유하고 있었으므로 바닷길을 통한 교역이 쉬워졌고 이 뒤로 조공무역은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신라가 독자적으로 중국과 교류하여 국제무역활동에 등장하게 된 것은 진흥왕 25년 북제와의 교역에서 비롯된다. 이때 신라는 대중국교역의 중요한 항포인 남양만의 당은포를 점유하고 있었으므로 바닷길을 통한 교역이 쉬워졌고 이 뒤로 조공무역은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당의 가탐이 저술한 도리기에 보면, 이 해로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는 곧, 중국의 산동반도 등주를 출발하여 동북쪽으로 발해만의 노철산하구를 거쳐 대운만의 동쪽을 지나 압록강 하구에 이른다. 여기에서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대동강 하구와 초도를 지나 옹진만과 강화도·덕적도를 거쳐 남양만에 이른다. 이 뱃길은 진흥왕 13년(552)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유한 뒤로, 때로는 고구려와 백제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으나 멸망할 때까지 중단없이 이용되었다.
신라와 당 사이의 이 항로는 근해 연안 혹은 섬을 따라 항해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였다. 비록 항해거리가 멀고 시간이 걸리지만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에 정치·경제·군사·문화적 의례적인 교빈관계가 이 항로를 통하여 오래토록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