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흑양군(黑壤)=황양(黃壤)=금물노(今勿奴)의 대응은

吾心竹--오심죽-- 2009. 11. 3. 15:26





  김하준 (2003-11-11 14:57:29, Hit : 409, Vote : 83
 고구려어로 십(十)은 '도오' 가 아니고, '누르' 였다.

①십곡현(十谷縣).<또는 덕돈홀(德頓忽)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고구려/한산주)

위의 ①의 기록을 근거로 고구려어 10(十)이 일본어 10(十)
즉, とお(도오)와 관계가 있다고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百濟의 전명인 十濟도 같은 부여족인 온조세력이
세운 국가이므로 '도오제' 정도로 읽혔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十濟는 큰 성이라는 의미에서 너리재(너리>녀리>녈>열, 十)로
읽혔으리라 추측된다.   백제는 너리재에서 비슷한 의미의 오리재
또는 어리재(오리>오니>온, 百)로 자연스럽게 변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열(十)도 온(百)도 고대에는 많다, 크다 의 의미였다.

그런데, 아래 ②에서 鎭=十, 湍=谷 의 대응을 볼 수 있다.
여기서 鎭은 '누르다'의 의미로 '누르'로 읽혔을 가능성이 있다.
또, 그 아래의 ③의 기사를 보면, 황양(黃壤)=진주(鎭州) 의 대응을
볼 수 있다.   黃은 '누르'로 읽혔으리라 추측되므로 鎭이
'누르'로 읽혔으리라 생각된다.

흑양군(黑壤)=황양(黃壤)=금물노(今勿奴)의 대응은 차후에
별도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십곡(十谷)=덕돈(德頓) 에서 德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④의 德은 仁자와 마찬가지로 '큰' 의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⑤의 경우는 也尸忽=盈德 에서 也尸=盈, 忽=德 로 보고, 忽=德=글
로 볼 수가 있겠다.
⑥의 경우는 今=德=금 의 대응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큰, 굴 또는 글, 금의 차이는 고구려, 백제 및 신라의 지역적 차이로
보고자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고구려의 십(十)은 '도오' 가 아니라,
'눌' 또는 '누르' 였으며, 현대어 '열'과 뿌리를 같이 한다고
생각된다.


②진단현(鎭湍縣)은 본래 고구려 십곡성현(十谷城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곡주(谷州)이다.
(삼국사기 권제35 (잡지 제4)  지리/신라/한주/영풍군)

③흑양군(黑壤郡)<또는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하였다.>은
본래 고구려 금물노군(今勿奴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진주(鎭州)이다.
(삼국사기 권제35 (잡지 제4)  지리/신라/한주/흑양군)  
  
④덕수현(德水縣)은 본래 고구려 덕물현(德勿縣)
(삼국사기 권제35 (잡지 제4)  지리/신라/한주/개성군)

⑤야성군(野城郡)은 본래 고구려 야시홀군(也尸忽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영덕군(盈德郡)이다
(삼국사기 권제35 (잡지 제4)  지리/신라/명주/야성군)

⑥금무현(今武縣)은 본래 백제 금물현(今勿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의 덕풍현(德豊縣)이다.
(삼국사기 권제36 (잡지 제5)  지리/신라/웅주/이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