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城 地名由來

高句麗語 百濟語 韓語 자료- 금물 今勿奴郡(진천) : 검은 (고구려)

吾心竹--오심죽-- 2009. 11. 3. 11:10

방향, 색깔

高句麗語 百濟語 韓語  자료        

   위략    위지 다른표기  삼국사기 北史 백제 일본서기 韓語
동(左)  順奴    順奴  靑, 上    桓那 得安 オコシ(上)
서(右)  消奴  涓奴      沸流 刀先 アロシ(下)
남(前)   灌奴  灌奴    貫那 久知下 アリヒシ(南)
북(後)  絶奴  絶奴    提那 熊津  





나의 판정~

고구려어 동서남북
   順 : 몽골어 중,        터키어 도우(솔) ,      한국어  왼

   消 : 몽골어 바른,     터키어 바티(사아),    한국어 바른,오른  
   灌 : 몽골어 우문,     터키어 쿠제이(왼),    한국어  앞
   絶 : 몽골어 허이뜨,  터키어 규네이,          한국어  뒷

고구려어 색깔
   靑 : 몽골어 허흐,    터키어  괴크,    한국어 하늘
   白 : 몽골어 차강     터키어 베야즈   한국어 흰
   赤 : 몽골어 울랑     터키어 키질      한국어 붉은 
   黑 : 몽골어 카르     터키어 카라      한국어 검은

파란글씨가 고구려어와 젤루 닮은 단어라 생각됨.

 



*삼국시대 색깔 어휘

금물  今勿奴郡  : 검은 (고구려)
사비 : 서울 계통의 어휘 (백제 소부리 , 신라 서라벌)
불구 弗矩內 : 밝은 (신라)
 



위략은 한원에서 인용 내용.다른표기도 한원에 나오는 내용임.
대충 삼국지, 위략에 쓰인건 방향어, 삼국사기엔 색깔로 읽은듯함. 北史는 섞인듯.
5부 이름이 방향어인지 색깔인지 지명인지 장담못함. 한마디로 삽질.
靑은 하늘색에 관련된 어휘로 뽑았음.
白도 밝다로 뽑아야나? 밝다로 뽑으면 터키어 : 팔라크, 몽골어: 멜리지, 한국어 밝은(맑은)  잘 일치함.
아리히시는 알타이어족에 대부분 들어맞는 단어인데 고구려어에서 삐꾸남.
백제의 刀先은 도대체 뭐임 --? 유일하게 어디에도 일치하지 않는 단어.
삼국지, 北史의 두막루국 언어 설명 부분이 신경쓰인다.

 



 

by 밥로스 | 2008/01/08 00:11 | 고구려 | 트랙백(1) | 덧글(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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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Mizlok's at 2008/03/21 00:04

제목 : 고대 한국어(韓語, 신라어?)에서 하늘의 발음은 어..
방향, 색깔일단, 天(sky) = 大(great) = 一(one)이라는 현대 한국어의 "한"을 놓고 보면,관련어로, 해(日, sun)이 있고, 이 "해"는 고어형으로 "살"이고, 살 sar > 사리 sari > (하리) hari > 해hai/hä (새) sai/sä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그리고, 해(새)는 新의 의미를 가지며, 東의 의미를 가지며,모두의 고어형인 "살/설"은 현대어임에도 新,光,齡,元旦의 의미를 가지게......

Commented by 번동아제 at 2008/01/08 00:53
사실 두막루어=거란어라는 기록을 부여어=거란어, 고구려어=거란어식으로 순차적으로 확장시키기에는 좀 부담스러워 보입니다. 사실 고구려어=거란어였다면 두 언어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가 등장했음직도 한데 유독 두막루에 대해서만 그런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 두막루의 성립 과정 자체가 좀 다층척이거나 아니면 무언가 좀 별개(예를 들어 두막루족이 순수한 부여족이 아니라거나, 이동 중에 언어적-종족적 특성이 애매해졌다거나) 로 취급할 사안인듯 보입니다.

Commented by 번동아제 at 2008/01/08 00:54
물론 신경 쓰이는 대목인 것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좀 폭발성이 있는 대목이죠.
Commented by 지나가다 2호기 at 2008/01/08 08:26
북을 나타내는 단어는 "뒷"이 아니라 '뒤'일 겝니다. ㅅ은 사이시옷일 거고.(오코시와 아로시/아루시, 아리히시(중세어 앒-)의 si또한 사이시옷이죠) 이정룡선생 같은 경우는 tVr형에서 기원하지 않았냐고 하더라구요. 絶 (dzot > dziuεt)이 뒤와 관련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는 있는데, 자음대응이 좀 문제긴 하네요.
消奴는 민족의 선각자 두계 이병도선생께서 松壤國과 동일어라고 지적하신 이래, 많은 학자들에게 인정받는 견해가 되어 있지요. 아마 奴나 壤는 아마도 *na의 음을 나타내기 위한 음가였음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고, 松消의 경우, 그 음이 같은 肖(현대한국어로나 초이고, 원래는 消와 발음 같음)가 肖古/速古 같은 이표기를 나타내는 걸루 봐선, *so가 아닐까요.
Commented by mizlok at 2008/01/12 17:57
고구려어로 소나무가 "부소"이므로 普述水, 沸流江/沸流國가 소나무랑 관계가 있을 것이고,
여기에 松壤王이 관계가 있을수는 있는데, 消奴部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을 겁니다
즉, "부소"랑 松을 관계 시키는 것은 무리가 없지만, 消랑 관계 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松壤의 계승어가 消奴라면 松과 消의 관계는 결국 소나무랑은 관계가 없는
다른 단어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Commented by history21 at 2008/02/03 02:44
링크 신고합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Ⅱ at 2008/03/09 15:20
mizlok/ 松이 음독이냐 훈독이냐에 따라 문제가 달라지겠죠. 음독이라면 消奴와 동일하다 봐도 상관이 없고, 훈독이라면 "夫兒/夫蘇"와 동일시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저 지명은 부여계 어권의 지명이라기 보단 오히려 한계 어권의 지명이라 과연 압록강 북쪽에 있었던 고구려인들이 저렇게 읽었는지도 의문입니다.
Commented by 밥로스 at 2008/03/10 08:06
몇달지나고 보니 順이 새(새벽 이나 샛바람에 담긴 어근)정도의 고어라고 판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것들이 부여전통을 따랐으면 가축 이름이름일수도 있고, 소노부가 음머~ 송아지일수도 모르죠
Commented by mizlok at 2008/03/12 18:49
지나가다//한계 어권의 지명이라?....압록강 북쪽에서 어떤 영역을 한계 어권으로 설정하시는지요?
Commented by mizlok at 2008/03/12 19:02
밥로스// 고구려의 東은 s+(V)모음이라고 봐야 합니다.
http://krdic.daum.net/dickr/small_contents.do?offset=Y020712000&query1=Y020712000#Y020712000 새박
http://krdic.daum.net/dickr/small_contents.do?offset=Y020713700&query1=Y020713700#Y020713700 새배
http://krdic.daum.net/dickr/small_contents.do?offset=A020804000&query1=A020804000#A020804000 샛바람

위에서 보듯이, "새"는 新의 뜻과 東, 日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다/헤다(to count), 새(new)/해(new) ex)햅쌀, 햇반
등등의 예로서 보듯이, 고대 한국어에서 s/h에 대해서 선후 관계에 대해서 말은 많지만,
아이누어 sine(一)/한국어 하나(一)의 예에서 보듯이,

한국 고대어 지명 표기에서 h는 없거나 저명하지 않고, 아니면 k와 대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은 s-->h의 관계가 되었을 것 같으며, 최소한 병립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 고대어에서 東은 2가지입니다. kVsV와 sV죠.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옛날 한반도에서 kVsV라는 東을 쓴 종족은 야요이인과 대응되고, sV라는 東을 쓴 종족은 고대 부여/한인과 대응된다고 판단합니다.
Commented by mizlok at 2008/03/12 19:16
소나무의 소/솔은 에벵키어의 holtin(pine tree)에 대응될수는 있는데, 그것보다는
조이(楮), 먹(墨), 붇(筆), 김치(沈菜), 배추(白菜)와 같은 한자/한자어 기원 단어로 봅니다.
즉, 松의 ŋ발음이 l/r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부여어로 松이 bVsV라고 가정하더라도,
신라어를 계승한 개성어를 반영한 계림유사에서는 松曰鮓子南이라고 나오지요.
따라서, 솔/소나무는 고려~조선 사이에서 만들어진 아주 최근의 단어라는 겁니다.

그리고, 솔(brush)는 송>솔(pine tree)에서 연상 작용에 의해서, 의미가 바뀐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Ⅱ at 2008/04/03 06:11
말씀하신 "소나무=부소"에 해당하는 어휘자료인 "夫蘇岬=松岳"은 현재의 개성입니다. "환인 -> 통구"로 중심지가 이어지는 초기 고구려의 강역과는 좀 거리가 멀죠. 개성은 경기도 북부로, 지역적으로 한계라고 봐야 합니다.
Commented by mizlok at 2008/04/03 19:26
일단, 25사에 의하면 경기도 북부 = 한강 이북은 韓의 영역이 아닙니다. 예맥의 영역입니다.

또한
소나무=부소의 증례는 송악이 모두가 아닙니다.
추가적으로 2개의 증례가 존재하고, 그 영역은 경기북부~평양까지 포함됩니다.
평양도 韓界라고 생각하시는가요?
25사든, 한국의 사서든 평양에 韓族이 살았다고 기술하는 역사책은 존재하지 않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평양 주변의 지명을 연구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위 고구려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지명語의 영역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松峴縣 本 高句麗 夫斯波衣縣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K&i=240114&v=46
평안남도 중화 지역의 옛 지명
;중화군은 평양시에 편입된 상태
釜山縣 一云 松村活達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K&i=243399&v=42
경기도 평택지역의 옛 지명

松岳郡 本 高句麗 扶蘇岬
Commented by 지나가다Ⅱ at 2008/04/03 22:27
"昔周宣王亦有韓侯,其國也近燕,故詩云:「普彼韓城,燕師所完 」其後朝鮮亦姓韓,爲魏滿所伐,遷居海中"(잠부론 중)
옛날 주 선왕 시기에 또한 한후가 있었으며, 그 나라는 연나라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시에 이르길 "크구나 저 한성. 연나라 군대가 완성해주었네"라 하였다. 그 후 조선 또한 성을 한으로 하였으며, 위만에 의해 정벌되어 바닷 속으로 옮아갔다.

고대의 한족은 상당히 북부에 있었으며, 위만이 정벌한 조선 또한 한족의 나라였습니다. 이건 한국사 1권에서 이성규 선생이 말씀하시는 바이기도 하지요. 당연히 그 중심지인 평양과 일대는 한족의 지역일 밖에요.
Commented by mizlok at 2008/04/03 23:39
무슨 어드레스와 상관없는 한후 이야기를 하시죠?
고대 한국어에서 韓語는 소위 衆國 또는 辰國의 영역에서 사용한 언어입니다.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辰韓者, 古之辰國也
Commented by mizlok at 2008/04/03 23:44
그리고, 고조선의 언어는 후한서에 나온 조선相의 이름 몇 개 이외에는 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고조선 언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오히려 야요이어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그건 소위 고구려 숫자라고 주장되는 지명어의 분포 영역을 보면 알 수 있죠.
Commented by 지나가다Ⅱ at 2008/04/04 00:14
어드레스가 다르긴요.

그러나 《좌전》중 춘추시대의 주왕이 주왕조의 '北土' 즉 북계를 "肅愼 燕亳"으로 표현한 것은(昭公 9년) 적어도 주초의 貊은 연산산맥 부근에서도 활동한 인상을 준다. 이것은 燕과 亳이 連接한 인상을 주는데, 당시 연의 국도는 북경 남쪽 琉璃河에 있었고, '박'은 貊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함께 흔히 거론되는 것은 周 宣王에 의한 韓侯의 재책명을 묘사한 《시경》韓奕篇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즉 "薄彼韓城 燕師所完 以先祖受命 因時百蠻 王錫韓侯 其追其貊 奄受北國 因以其伯(저 웅대한 한성, 燕師가 완성해 주었네, 네 선조가 명을 받아 百蠻을 관리하였도다. 왕이 한후에게 (다시 명을) 내리니 追와 貊을 (복속하여) 북국을 (어루만지는 명)을 받아 그 伯이 되어라)". 여기서 '追'가 '濊'라면, 이 구절은 ① 당시 예맥이 한성 부근에 존재하였고, ② 한이 이처럼 예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면 위지 동이전에 보이는 한반도 남부의 韓도 西周의 韓城 부근에서 활동한 시기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한국사>1권 중.

충분히 어드레스 맞습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Ⅱ at 2008/04/04 00:18
한계 언어가 한족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언어를 뜻하는 이상, 한족의 강역이나 거주지 문제가 한계 언어의 분포범위와 무관할 리가 없지요.
Commented by mizlok at 2008/04/04 00:28
주왕이 주왕조의 '北土' 즉 북계를 "肅愼 燕亳"으로 표현한 것은(昭公 9년) 적어도 주초의 貊은 연산산맥 부근에서도 활동한 인상을 준다. 이것은 燕과 亳이 連接한 인상을 주는데, 당시 연의 국도는 북경 남쪽 琉璃河에 있었고, '박'은 貊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맥이 연산산맥 부근에서 활동한 증거라고는 빈약합니다.
薄彼韓城 燕師所完 以先祖受命 因時百蠻 王錫韓侯 其追其貊 奄受北國 因以其伯
===>이 문장이 衆國 또는 辰國의 언어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 무슨 도움이 되는지요?
Commented by mizlok at 2008/04/04 00:31
한반도 남부의 韓도 西周의 韓城 부근에서 활동한 시기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님의 주장은 중국에서 韓이 활동했을 가능성이 1% 정도 있기 때문에, 위지 동이전에 보이는 韓(辰)의 영역이 중국까지 연장되어야 한다고 보시는 중인가요?
그래서, 압록강 이북도 韓의 영역이라고 주장하시는가요?
위지 동이전에서 보이는 한강 남북의 지명어의 분리현상을 무시하고, 모두 辰의 언어로 보겠다는 뜻인가요?

도대체 무엇입니까?
Commented by 밥로스 at 2008/04/04 00:32
(숙식)읍루,말갈의 후대 만주족은 퉁구스계로 확실히 고구려계 언어와 구별됩니다. 읍루>말갈은 고구려와 언어 같지 않아 구별되있기 때문에 부여어족 학설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겠죠. 한일의 사서로 보면 삼한은 부여를 포괄하며 요즘의 마한진한변한의 중국식 삼한과는 다른 개념으로 삼국사기에선 말할 것도 없고 전통적인 일본서기의 집필원칙에서도 신공왕후 이래 삼한(고구려 백제 신라)정벌로서 일본의 자존심을 유지해온 가치관에 속하는 개념입니다. 이 부여계 언어영역에 일본어를 끼워넣으려는 시도가 있고 요즘 연구자료를 보면 일본어의 기초어휘들이 환태평양계의 어휘와 근접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링크 카테고리의 일본어에 가까운 어휘편을 보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네요.

중국의 어휘가 삼한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삼국지를 보면 진한에 중국어의 대립이 나오는데 낙랑을 아잔으로 부르고... 賊적을 寇로 부르네 운운하는 구절을 보면 중국어에도 여러 갈래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뭐랄까 3세기 중국인이 보기에 케케묵은 진나라의 어휘를 유지하는 진한이 기특하게 보였나봅니다.

말이 헛나갔는데, 고구려어든 변진한 언어든 전통적인 개념으로 보면 삼한의 언어 범주이고 이것을 압록강 이북으로 나눈다고해서 특출날것은 없다고 봅니다. 옥저와 동예가 포함되기 때문이죠..
야요이계 어휘에 관해서는 왜왕이 吳 太伯의 후예를 자칭한것을 들수 있는데.. 이것이 진한에 피난온 연나라 변방의 이민 행렬과 관계될지도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mizlok at 2008/04/04 00:38
여러번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시는데 다시 설명합니다.
현재의 고대한국어 연구는 대륙조선설이나 삼한이동설의 시기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삼국사기지리지의 3국통일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각각 압록 이남의 고구려와 평양고조선의 옛터의 지명어, 백제의 옛터의 지명어, 신라의 옛터의 지명어를 분석하는 고로,
이는 위지삼국지의 고구려와 濊의 부여계 지명어, 진한변한계 지명어, 그리고 언어유합현상이 발생했다고 추정되는 백제어(부여계 + 마한계)를
분석하는 것으로, 가상적 개념으로 부여語와 韓語를 만들어 냅니다.
Commented by mizlok at 2008/04/04 00:41
Commented by 밥로스 at 2008/04/04 00:32 #
최치원의 삼한론을 보면, 님의 주장이 충분히 용납됩니다만,
실제로 100년 가까이 성립된 지명 대응 연구를 보면 위지 삼국지에서의 마한은 최치원이 주장했듯 고구려가 아니라,
백제 + 영산강왕국입니다.
Commented by mizlok at 2008/04/04 00:47
Commented by 밥로스 at 2008/04/04 00:32 #
일단, 일본어는 단일어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중층구조입니다.
일본어에 가까운 어휘편에서는 환태평양어족과의 관계를 강조를 하던데,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죠.

야요이어의 후손으로 생각되는 오키나와-일본어족은 기초어휘에서 오스트로네시아 어족과의 대응도 있는 반면에,
기초어휘 목록중 가장 중요한 숫자는 몽고어-퉁구스어 관계보다, 퉁구스어-일본어의 관계가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만큼 강렬한 북방형을 보여준다는 말이죠.

Commented by mizlok at 2008/04/04 00:50
또한 중요한 것은 辰韓語에서 중국계 秦語의 유습이라고 전해지는 언어는 秦語라기 보다는
현대 아이누어(또는 재구된 아이누어)에 상당히 대응한다는 겁니다.
물론, 낙랑인들이 辰韓에 이주하면서 중국계 어휘를 상당수 사용했을 수는 있지만,
위지 삼국지에서 辰韓語라고 소개한 언어는 아마도 아이누에 가까운 그 지역 토착민의 언어일
가능성이 가장 많습니다.
Commented by jpn1_rok0 at 2008/04/04 19:27
endea君, また無駄なことをー
Commented by endea at 2008/04/04 21:08
さしでがましい jpn1_rok0
Commented by 지나가다Ⅱ at 2008/07/23 09:53
韓族과 三韓의 명칭이 준이 왕이었던 韓氏의 조선과 유관하다는 논의는 이병도 이래 이루어진 고로, 새삼스러이 논할 건 없는 거 같습니다. 괜히 준왕이 남쪽으로 내려가 마한왕이 된 건 아니죠. 그 근거가 되는 게 위의 잠부론 기사인데, 뭔 말씀이신지 ㅎㅎㅎㅎ
Commented by 지나가다Ⅱ at 2008/07/23 09:58
그리고 오부를 오행의 오방색에 연결시킨 것은 사실 시대적으로는 후대의 것이구요, 이것에 의한 일반적인 학자들의 의견은 후대에 중국의 오행사상에 의거해 오방색을 오부에 부회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색깔은 저기서 같이 논하기 어렵습니다.

북사에 나오는 백제의 여러 지역들도 알고 보면 그냥 남쪽에 이런 성 북쪽에 이런 성이 있다는 정도의 기술이지, 방위어하고는 무관할 것입니다.
Commented by mizlok at 2008/08/07 03:45
한씨조선은 삼한과 상관없습니다.
관계가 있다면 마지막 한씨조선왕이 삼한왕이 되었더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