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 歷史 探訪-1

당항성(黨項城 棠項城)은 당항성(唐項城)이었다

吾心竹--오심죽-- 2009. 9. 16. 19:55

배건너 조회 119 | 08.02.28 23:31 http://cafe.daum.net/hanryulove/5Qxi/2872


  송준희 (2003-03-26 13:59:55, Hit : 1676, Vote : 35
 당항성(黨項城 棠項城)은 당항성(唐項城)이었다


(당항성(黨項城 棠項城)은 당항성(唐項城)이었다)


- 고유명사도 변경시켰다. 동음이자(同音異字)법칙 -


고유명사의 첫자를 바꾸지 않는다.
어떤 보통명칭도 첫자를 변경하면 전혀 다르게 달라지기 때문에 변경시킬 수없다고 본다.

광주(光州)와 광주(廣州)에서 光과 廣을 바꾸면 전혀 다른 지역이 된다.  
동기(銅器)라고 써야 할 것을 동기(童器)라고 쓴다면 전혀 다른 뜻이 될 것이다.

같은 내용에서 글자를 바꾸어 썼다.

㉠ 구당서 권 199에서 黨項城의 음은 당항성이며
㉡ 당서 권220에서는  棠項城이며 음은 당항성이다.
㉢ 삼국사기에서는    黨項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명은 고유명사로 볼 수 있는데 黨項城과 棠項城의 '당'이라는 글자가 棠과 黨으로 변경되어 있고 같은 것은 項城이다.

고유명사일 때 첫글자를 변경할 수 있겠는가 ?
光州를 廣州로 바뀌어도 내용이 같을 수 있을까 ?

동일 사건에서 첫자가 바뀌었다는 것은 지명이 아닐 수 있을 때는 가능하다고 본다.

당항성(黨項城, 棠項城)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舊唐書, '高麗和親通好謀欲取黨項城以絶新羅入朝之路'
(구당서 '고려화친통호모욕취당항성이절신라입조지로')
唐書, 謀取棠項城絶貢道(당서, 모취당항성절공도)
新羅本記, 浴取黨項城以絶歸唐路(신라본기, 욕취당항성이절귀당로)


세 곳의 내용은 이 지명이 당과 신라의 교역항이라는 것이다.

이 교역항을 백제가 고구려와 힘을 합쳐 빼앗으려는 모의가 있었다는 뜻이다.
당과 신라의 교역지점이 당항성(黨項城과 棠項城)이라면 黨과 棠은 唐의 동음이자로 볼 수 있고 항성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

黨과 棠은 당項城의 첫 자로 고유명사의 첫자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唐項城이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는가?

'唐에 인접한 項城'을 동이문자로 표기한다면 唐接項城이라 할 수 있고 接을 빼버리면 당항성이라 표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동음이자화 시킨다면 黨項城또는 棠項城으로도 쓸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기자가 살았던 조선 땅인 하남성 서화 남쪽에 항성이 있다.
서화와 항성은 같은 하남성에 있으며 서화는 주와 조선시대의 경계지명이고 조선땅이다.
조선땅에서 신라로 국호가 변경되었다면 당항성이나 당항성의 해석이 唐項城으로 풀이함이 타당할 것이다.

서화와 항성이 있는 지역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관계하고 있는 지명이 많다.


항성의 주위에서

㉠ 고구려는 남쪽으로 광주, 신안(섭라) 오월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용도, 신성, 고대인성, 은산 등의 지명이 있다.
㉡ 백제는 북쪽으로는 숭산, 진성, 고평, 석문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독산, 동성, 잠산, 덕안등의 지명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주류성, 백마, 동명, 황산, 대산, 청하, 평원, 사자하 등의 지명이 있으며
㉢ 신라는 동쪽으로는 서주, 사지연수, 독산, 동성, 잠산, 제성, 태산, 석문등의 지명과 669년 672년에 자석과 침을 당에 보냈는데 신라침반, 즉 나침반을 만들었던  신라의 지명들이 있었으니 黨項城이나 棠項城은 唐項城의 동음이자 변경이며 이것은 다음과 같이 쓰여졌어야 하는 것이다.


浴取黨項城以絶歸唐路(욕취당항성이절귀당로)은 浴取唐項城以絶歸唐路(욕취당항성이절귀당로)로 쓰여야 함에도 唐字를 두면 역사가 밝혀지는 것이 中和조정이나 해동(반도)조정이 두렵게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동이민족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것이다.
黨項城이나 棠項城은 唐項城이었으며 唐과 접하여 있는 항성을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