慰禮 歷史 探訪-1

평택 부락산(負樂山)과 용인의 부아산(負兒山)

吾心竹--오심죽-- 2009. 8. 25. 17:53

<<< 진위현 부락산-負樂山...용인현(한산) 부아산-負兒山>>>

 

● 부소산 : 부소산(扶蘇山)은 백제어로 ‘부소모이’였다. ‘부소’는 ‘솔’(松)의 뜻이다.

부여계어로 ‘부소’ ‘부·’는 ‘솔’을 뜻하는데, ‘솔’은 마한어였다. 전기 백제어 지역에서 이 ‘부소’가 많이 발견된다.

한 예로 ‘부소압(扶蘇押=松嶽=松都)’을 들 수 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위례홀에 도착하여 먼저 오른 산이 ‘부아악’(負兒岳=三角山)이었다.

그런데 兒의 고음이 ‘·’이었으니 부아(負兒)는 당시의 백제어 ‘부·’를 적은 것이다.

이 ‘부·’도 솔을 뜻한다. 마한어 ‘솔’ 지역에 부여계어 ‘부사’가 침투한 것이다.

 

소부리 : 소부리(所夫里)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 이름이다.

백제가 망한 뒤에도 ‘소부리주>소부리군’으로 쓰이다가 신라 경덕왕이 서기 757년 지금의 부여로 고쳤다.

백제 성왕은 천도하면서 백제의 뿌리가 북부여(北扶餘)임을 강조하는 뜻에서

‘남에 있는 부여’란 의미로 국명을 ‘남부여(南扶餘)’라 고쳤다.

경덕왕은 남부여에서 ‘부여’만 따다가 소부리를 부여로 바꾼 것이다.

 현재도 부소산 기슭 마을은 ‘소부리’라고 불린다.

‘소’는 ‘동쪽’이란 뜻(샛바람의 새)이고, ‘부리’는 ‘벌판’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소부리’는 ‘동쪽 벌판’이란 뜻이 된다.

이 말은 경북 상주(尙州)의 옛 이름인 ‘사벌국(沙伐國)’의 ‘사벌’과 같은 말이고,

신라의 서울 ‘셔벌(徐伐)’과 같은 말이다. 이 말이 변해서 오늘의 ‘서울’이 되었다.

그런데 어형 변화 과정으로 따져볼 때 ‘고마’가 줄어 ‘곰’이 되었듯이 ‘부리’가 줄어 ‘벌’이 된 것이니

‘소부리’가 ‘사벌’ 또는 ‘셔벌’보다 이른 시기에 발생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따라서 현대 한국어 ‘서울’의 본 뿌리는 ‘소부리’이다.  ‘님’의 기원은 백제어 ‘니리므’
 <<< 도수희...백제어 연구 >>>

 

***평택,안성,성환의 소사벌(素沙伐, 일명 素沙坪)---위와 같은 방식으로 백제어로 해석한다면

    소사벌<소부리---동쪽의 벌판 // 혹은 사벌--서울이므로 <동쪽의 서울 >...그러면,

    직산(사산) 신라시대의 인물전 <소나-素那>는 일명 쇠내(金川--김천)로 해석한다면...

 

    소사벌--<쇠금(金)+서울>---직산의 안성천,청용천,입장천,성환천의 유역은 사금광(沙金鑛)이 유명하지요.

    직산현의 부소산과 위례성에는 쇠금광이 많았고, 쇠를 다루던 터가 많습니다.(예: 금굴평-金掘坪)

    일제시대 대규모 광산이 입장 양대리의 부소산 기슭에 많이 있었습니다.

    쇠(금-gold)가 있는...즉 왕이 있는 서울...

    뭔가 백제어와의 연관성이 보이는데...연관성을 좀 더 깊이 연구해서 꼭 밝히겠습니다. ///

 

 

● 직산현,목천현 부소산(扶蘇山-459.1m) 유래

 


위  치 :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도림리 산21-3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 산1, 산24

 


 백제시조 온조왕이 마한 목지국의 진왕(辰王)으로부터 동북 100리 땅을

 

 봉토(封土) 받아  백제 첫 도읍지 <하남 위례성>을 세운 곳으로 전해진다.

 


 부소모이 고개는 부소산과 위례산성을 이어주며, 부소령(扶蘇嶺),

 

 부소치(扶蘇峙), 부소문치(浮所門峙) 등으로 규장각 고지도에 전하며,

 

 일명 <부수문이고개>라 불린다.

 

 <비류와 온조>가 첫 도읍을 정하기 위해 십신(十臣)과  함께  올랐던 

 

 한남정맥 용인(龍仁)의 부아산(負兒山)과도 이어진다.

 


 <부소>는 솔(松)의 뜻이며, 백제어로 <부소모이>였다.

 

 부여계어로 <부소> <부·>는 <솔>을 뜻하는데, <솔>은 마한어였다.

 

 마한어 <솔> 지역에 부여계어 부사(夫斯)가 침투한 것이다.

 


 백제는 천도로 위례홀(직산)→한홀(漢城)→고마(公州)→소부리(扶餘)로

 

 바뀌었다.


 서해 아산만과 삽교천의 아산시 인주면 밀두리(密頭里-밀머리, 해빈 미추홀

 

 -海濱 彌鄒忽)에서도 <직산 하남위례성>은 한 눈에 잘 보인다.

 

***진위현 부락산(負樂山, 佛樂山)

  

 

 

 

 

 

 

 

 

 

 

 

 

 

 

 

 

 

 

 ***대동여지도 //

 

***대동방여전도...용인의 부아산 / 진위현의 부락산 // 직산현의 위례고성(부소산) ///

 

***대동여지도...용인(한산) 부아산 ///

 

***광여도 수원부의 부아산 //

 

***광여도 용인현의 부아산 //

 

***해동지도 수원부의 부아산 //

 

***해동지도 용인현의 부아산 //

 

***대동방여전도 용인(한산)의 부아산 //

 

***용인의 부아산 // 진위의 불락산(佛樂山-부락산)

 

***청구도 양성현...진위현의 불락산(佛樂山)...현재는 부락산(負樂山)으로 변함 //

 

 

*** 백제 온조왕 도읍시(기원전 18년)의 위례강역(북쪽) 예상도 ///

 

*** 백제 온조왕 도읍시(기원전 18년)의 위례강역(남쪽) 예상도 ///

***<동사강목-순암 안정복>은 목천현감으로 재직시...목천의 <대록지>를 친필로 찬하면서...

     위례성의 남쪽 목천지역을  백제의 남전(南甸-왕궁의 성밖 경계, 남쪽 들판>으로 해석했습니다.

     * 전(甸) : 경기(京畿: 왕도 주위 500리 이내 지역)

     <건치연혁 : 위례성-마한왕 봉이동북백리지지 본현즉 기남전 백제치대목악군>---

      <馬韓王 封以東北百里之地 本縣卽 其南甸 百濟置大木岳郡>---대록지(大麓誌) ///

     백제개국공신...10신중 1명인 마려(馬黎)와  천안전씨 전섭(全攝)의 봉작지입니다 //

 

***양성현의 한천과 무한성(無限城, 武 (扌+旱) 城)...운수암(雲峀菴, 현재-雲水菴)...고성산(高城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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