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백제 설성산성--경기 이천시

吾心竹--오심죽-- 2009. 7. 5. 16:59

한국의 산성(54) - 백제 설성산성(雪城山城, 경기 이천) 한국의 성(城)/문화

2004/11/1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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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성(54) - 백제 설성산성(雪城山城, 경기 이천)

 

경기도 기념물 제76호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

 

높이 5m, 둘레 1.51km 의 산성은 정상을 감싸 안고 있는 포곡식 석성이다. 내,외성으로 쌓은 이중성으로 북문지, 서문지, 동문지가 있고, 봉우리 정상에는 봉수대터가 있다.

백제가 한성시대에 돌로 산성을 쌓았는가 하는 것이 최근 학계의 쟁점이 되고 있다. 설성산성 2차 발굴 후 가장 쟁점이 되었던 것은 처음부터 석성이었는가 토성에서 석성으로의 개축되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성벽을 완전히 절개하여 조사한 결과 설성산성은 처음부터 돌로 축조되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성벽의 앞(외벽)쪽은 석축으로 축조하였고 뒤(내벽)는 토축한 특이한 형태였다. 이와 같은 축조방식은 4세기 후반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밝혀진 이천 설봉산성에서도 확인된 적이 있다. 설성산성에서도 석축부 하부 진흙다짐층과 토축 하부에서 백제 연질토기편이 출토되었다. 또한 성내부에서 출토되는 4세기후반에서 5세기 경의 토기와 같은 시기의 수혈건물지 등으로 미루어 보아 성벽도 늦어도 5세기 초에는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첫째, 백제의 석성 축조시기가 5세기 이전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특히 백제의 석성축조를 웅진시대 이후로 보고 경기도 일대에서 백제와 신라의 유물이 동시에 출토되는 산성을 모두 신라가 축조한 것으로 보는 학계 일부의 시각은 재고가 필요하다.
둘째, 백제시대 군사용 건물지와 생활용품들이 출토되어 당시 군인들의 구성 및 생활을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셋째, 다양한 종류와 많은 량의 백제토기가 출토되어 백제토기의 제작과 유통에 관한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넷째, 백제시대 다양한 자료가 출토되어 그동안 자료의 부족으로 답보상태에 있는 백제의 남방진출과 지방지배체제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5세기 삼국의 역관계 및 중부내륙지역의 사정 등 한국 고대사의 여러 방면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관련기사] 경기 이천 설성산성에서 한성 백제 軍막사 발견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세계일보 2003-11-18 17:45]

 

<사진>설성산성 발굴조사 중 발견된 한성시대 백제토기

한성도읍기(BC 18∼AD 475) 백제의 군부대 막사가 처음으로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 설성산성에서 확인됐다. 또 이 산성은 백제가 5세기 전후한 시기에 돌을 이용해 쌓은 석성으로 발굴조사 결과 밝혀짐에 따라, 백제에서는 웅진도읍기(475∼536년)가 되어서야 비로소 석축 산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기존 주장이 수정될 전망이다.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소장 박경식)는 올해 제3차 발굴조사 결과 건물터 9곳을 비롯해 한성시대 백제토기만을 집단으로 매장한 곳을 포함한 구덩이 유적 18곳을 확인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지난해 2차 조사에서 확인된 6곳을 포함한 건물터 총 15곳 중 통일신라 말기인 8∼9세기에 등장한 2곳을 제외한 13기가 모두 한성시대 축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백제 건물 터는 대부분 원형으로 땅을 파 내고 진흙을 다져 바닥을 만든 다음 주변을 따라 기둥을 세운 ‘수혈(竪穴) 건물지’이며, 중앙에는 ’一’자, 또는 ’ㄱ’자 모양의 온돌시설을 갖춘 것으로 밝혀졌다. 내부에서는 한성시대 백제토기와 함께 철제 무기류가 출토됐다.

서영일 책임조사연구원은 “이들 건물은 용도가 산성에 주둔하는 군인들의 막사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조사에서 다량의 한성시대 백제토기를 부장한 채 모습을 드러낸 구덩이 유적이 이번 조사에서도 18곳이나 추가로 확인됐다. 경기도 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된 설성산성이 백제 한성도읍기 대표적 산성의 하나로 밝혀짐에 따라 국가사적으로 지정, 보존해야 한다는 지적도 대두되고 있다. 정성수기자

 

 

이천 설성산성 사용 중심 주체는 신라

2001/10/13  13:11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소장 박경식)는 지난8월부터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 고대 성곽인 설성산성을 발굴한 결과 이곳이 신라가 가장 활발하게 이용한 성곽으로 드러났다고 13일 말했다.
산간 계곡을 이용해 쌓은 이른바 포곡식(抱谷式)인 이 성곽은 1942년 조선총독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서 존재가 보고됐고 지난 81년 단국대 학술조사단 지표조사 결과 6세기 중반 한강 일대에 진출한 신라가 쌓았다는 견해가 제출된 바 있다. 이어 지난 99년 10-12월에는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지표 및 시굴조사 결과성곽은 둘레 1천95m로 건물터 12개소, 마당터와 우물 터 각 1곳, 성문터 2곳 등이확인되기도 했다. 이번에 서문터와 성곽 일부를 조사한 결과 문터는 삼국시대 이래 고려 때까지사용되면서 3차례 가량 증.개축이 있었음이 드러났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그동안 조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설성산성을 가장 집중적으로 활용한 주체는 신라임이 분명하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그 증거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대로 편년되고 있는 투창 뚫린 굽다리잔과 기와를 비롯한 이른바 신라계 유물이 다량으로 확인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신라가 이곳으로 진출한 시기는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기록 등을 종합할때 서기 551년 이후 진흥왕 무렵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조사단은 신라 흔적이 농후한 이 산성을 처음으로 쌓은 주체는 백제일수 있다는 여운을 남기고 있어 주목된다. 그 근거로 조사단은 설성산성 성벽이 백제가 처음 쌓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인근 설봉산성과 비슷한 방식임을 들고 있다. 조사 결과 성벽은 비교적 단단한 풍화암반층 위에 기단석을 바로 올려놓고 있는데 이 기단석이 바깥으로 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1-2㎝ 깊이 되는 턱을 파고 있다. 이는 백제가 주체로 드러난 설봉산성 제1차 성벽과 유사한데다, 많지는 않으나 백제 토기도 확인되고 있어 추가 조사가 요망된다. <연합뉴스>

출처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234166§ion_id=001&menu_id=001

http://www.archeology.or.kr/field/field_content.asp?idx=41

http://pluto.dankook.ac.kr:6100/news.asp?key=5&oldkey=3&ctitle=%B9%AE%C8%AD%B1%E2%C8%B9&id=1497 

http://www.parkjaehwa.pe.kr/reboard/content.php3?id=76

http://kimin.cnenews.net/news_view.html?s=index&no=494&s_i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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