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와 마한 잃어 버린 마한 2008.10.06 10:25
먼 발치 매운 눈
만주(滿洲)는 원래 마한
만주(滿洲)란 이름은 [만의 땅]이라는 뜻. [주(洲)]자는 지역을 나타내는 말. 그러므로 만주(滿洲)는 원래는 [만]이라는 땅이었고 이는 [마의(마+ㄴ)] 라는 뜻, 즉 만주는 [마의 땅]이라는 뜻. (만주의 滿(만)자는 한국어 [만]을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한자로 옮긴 것.)
중국고대 역사책에도 한민족은 [3한(三韓)]으로 표현된다. 즉 마한 진한 변한, 마한(馬韓)이란 이름은 [스스로를 [마]라고 부르는 한(韓)]을 뜻한다.
마(馬)자 역시 한국어 [마]를 적당한 한자로 옮긴 것.마한(馬韓)은 마한(摩韓)이라고도 했다. (摩 - 갈 마) 즉 만주도 [마의 땅]이라는 소리고
마한인들 역시 자신들을 [마]라고 불렀다. 후에 이 [마]라는 말은 상감마마, 마님 등으로 전승되어 왔다.
[마의 땅]( 마한과 만주)의 특성은 무엇인가.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 등이다.
위 그림은 [고인돌 분포도] 이다. 세계 고인돌의 반 이상이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도 한국에 있다.(8천년전 것 - 전남 화순)
세계고고학계에서 [한국은 고인돌의 나라]로 유명하다. 일본에 있는 고인돌은 약 2천 4백년전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고 당연히 한국에서 건너간 것. 당시 한국에서 금속문명이 건너갈 때 고인돌 문화도 같이 전해진다. 산동반도의 고인돌 역시 한국에서 전해진 것. 공교롭게도 고인돌의 원조인 마한과 만주는 둘 다 자신들을 [마]라고 불렀던 사람들.
대마도(對馬島)는 부산에서 아주 가까이 있다. 맑은날엔 부산에서 맨눈으로 대마도가 보인다. 대마도(對馬島)라는 이름의 유래는 [마한(馬韓)과 마주 대하고 있는 섬]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부산 역시 원래는 마한의 영역이었던 것. 경상도 분들이 말끝마다 ' 마...그래서 마...그런데 마...' 하고 말끝마다 '마...'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아도^^
한국의 현대고고학은 일제때 일본인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이 한국고고학계의 비극. 일제는 그들이 발굴한 한국의 고대유물들을 많은부분 왜곡,날조,파괴했다. 특히 마한의 유물에 대해서 그런 짓이 특히 심했다.
일본의 금속문명, 쌀농사는 2천4백년전 정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는데 이는 한국보다 최소한 수천년 늦은 것이고 일본의 최초 금속문명, 쌀농사는 고인돌문화를 가지고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하여 규슈(구주)에서 시작되는데 이는 일제의 자존심에 심각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일제는 그들에게 문명을 전해준 마한의 존재를 심각하게 왜곡 축소하게 된다. 마치 한반도 중남부에는 기원전에는 별다른 문명이 없었던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 일제의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누가 일본에 문명을 전해주었는지를 모호하게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마한의 유물은 대부분 파괴되던지 백제,신라,가야의 유물로 둔갑되었다. 일제는 마한의 존재 자체를 극히 훼손, 축소하고 일본을 건국한 세력이 백제,신라,가야처럼 북방에서 내려온 기마민족 이라는 학설을 주장하면서 일본을 고구려 백제 신라와 동급으로 만들고 나아가 그보다 더 앞서 국가다운국가를 세웠다는 날조를 자행한 것. 이는 일제 식민지배의 정당성 주장하기 위해서도 그들이 목숨걸고 획책해야했던 '눈가리고 아웅하기' 식의 날조.
그리하여 마한의 존재는 보잘것 없이 왜곡,축소되고 일제의 뒤를 이은 소위 식민사학자들도 그런 일제의 주장을 답습한다.이것이 한국고고학계의 최대 비극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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