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마한의 종족 구성

吾心竹--오심죽-- 2009. 3. 29. 17:36

마한의 종족구성 | 잃어 버린 마한 2008.09.24 11:04 먼 발치 매운 눈

 

한(韓)과 왜(倭), 그리고 예(濊)

 

한(韓)  

삼국지(三國志)에는 원래부터 한반도에 살고 있었던 무리들을 한(韓)으로 적고 있다. B.C 194년에 지금의 평안도 지방에 살던 한(韓) 무리들은 만주에서 이동한 기자조선 유민들에게 일시 공파(攻破)당하였으나, 곧 기자조선 유민들을 한수(漢水) 이남으로 쫓아 버리고 다시 나라를 세웠다.

 

사서에는 이 나라 이름이 나라(樂浪)로 적혀 있다. 이 무렵 지금의 함경도 지방에 살던 한(韓) 무리들은 만주에서 이주한 동옥저(東沃沮) 무리들에게 복속하거나 밀려서 남하하였고, 지금의 강원도 지방에 살던 한(韓) 무리들도 만주에서 이주한 동예(東濊) 무리들에게 복속하거나 밀려서 남하하였다.

 

그리고 한수(漢水) 이남에 살던 한(韓) 무리들도 한수(漢水) 이남으로 남하한 기자조선 유민들 또는 만주 눈수(嫩水), 송화강(松花江) 유역 등지에서 이주한 이주민들에게 복속하거나 밀려서 남해(南海), 대마도(對馬島), 일본열도(日本列島) 등지로 이주하였다. 따라서 B.C 194년 이후에는 한반도의 지배층이 토착민인 한(韓)이 아니고 만주에서 이주한 무리들이었다.

 

위 한(韓)은 만주에 살던 무리들과 마찬가지로 해님과 달님을 숭배하였다. 한(韓)의 신앙을 보면 해, 달, 별 등 천신(天神) 외에 삼신(三神), 토지신(土地神), 산신(山神) 등을 섬겼고, 묘자리 쓸 때, 고기잡이 나갈 때, 진을 칠 때, 길을 떠날 때 반드시 날자를 골라 제(齊)를 올리는 등 잡신(雜神)도 숭배하였다.  

 
왜(倭)  

삼국지(三國志)나 후한서(後漢書)에는 서.남해 섬, 대마도, 일본열도 등지에 거주한 토착민들이 왜(倭)로 적혀 있다.

 

「馬韓在西有五十四國其北與樂浪南與倭接」後漢書 「弁辰在辰韓之南其南亦與倭接」後漢書 「마한의 서해에 있는 중간 또는 큰 섬에 사는 사람들은 키가 작다..선비족처럼 머리를 깎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으며, 소나 돼지를 키우고, 상의는 입으나 하의는 입지 않고 거의 벗고 다니며, 배로 왕래를 하였다. 馬韓之西海中大島上其人差短小..皆0頭如鮮卑但衣韋好養牛及猪其衣有上無下略如裸勢乘船往來」三國志

 

서.남해 섬에 살던 토착민인 왜는 가축사육, 어업, 약탈 등을 생업으로 하였기 때문에 생업상 무력(武力)을 사용할 기회가 많아 강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왜는 왕검조선 때는 마한(馬汗)에게 복속하였고, 왕검조선이 멸망 후에는 홍성 금마 마한(馬韓), 익산 금마 마한(馬韓), 구태백제(九台百濟) 순서로 복속하였다. 마한이나 구태백제는 신라 공격 시 무력이 강한 왜(倭)를 군사(軍士)로 사용하였다. 그 때문에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왜(倭)를 군사로 사용한 마한(馬韓) 또는 구태백제(九台百濟) 군대가 왜(倭)로 적혀 있다.  

 

예(濊)  

삼국지 예전에 적혀 있는 예(濊)는 넓은 의미로는 만주에 거주한 모든 부여 무리 또는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주한 부여 무리를 가리키나, 좁은 의미로는 부여 무리 중 농어업족을 가리킨다. 만주에 거주한 부여 무리 중 일부는 B.C 194년경부터 한반도, 대마도, 일본열도 등지로 이주하여 토착민인 한(韓), 왜(倭)를 정복하거나 밀어내고 소국(小國)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