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속의 마한 잃어 버린 마한 2008.10.01 09:24
먼 발치 매운 눈
마한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설명으로는, 경기도에서 전라남도에 이르는 서해안 일대를 장악하다가 백제의 건국에 밀려 남하한, 고대 부족국가 연맹체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마한은 고구려"란 기록이 있을 뿐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백제가 마한을 점령하는 내용도 나오고 있어, 기존의 학설만으로는 도저히 이해 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해 이미 마한은 준왕의 남하에 따라, 두개의 마한으로 분리되었다는 주장을 하였지만, 고구려와 관련된 마한의 기록을 집중 살펴 봄으로써 두 개의 마한설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한다.
우선 삼국유사에는 최치원의 말을 이용하여 "변한은 백제다."라는 내용을 기록하였다. 현재에는 변한을 가야연맹체로 대체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치원은 당대의 석학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완전 무시할 수는 없다. 따라서 마한이 현재 경기도에 중심을 두고 세력을 확장 할 무렵, 변한은 충청도와 전라도를 아우르는 영토를 가졌을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신라가 삼국통일 할 당시 백제의 영토가 변한의 영토와 대체적으로 일치하여, 최치원은 변한을 백제로 인식하였을 것으로 예측 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문헌 해석에 의한 예측임을 밝혀 둔다.
그렇다면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나오는 마한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들여다 보자.
마한에 대한 내용은 고구려 6대 태조왕 69(서기 121년)년에 나온다.
"12월에 왕은(고구려태조) 마한, 예맥의 1만여 기병을 거느리고 현도성을 포위하니,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를 보내어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한의 군사와 힘을 합해 싸웠다.70년에 왕은 마한, 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범하니 부여왕이 구원병을 보내어 고구려군을 부수었다."
마한은 백제 온조왕 27(서기 9년)년에 멸망하였는데 지금 고구려 왕과 더불어 군사 행동을 하였다 하니 멸망 후 다시 일어난 것일까?
이상이 고구려 태조왕 본기에 나와있는 마한의 내용이다. 김부식 자신도 사서를 편저하면서, 이 같은 의문을 품었다. 물론 마한을 국가가 아닌 지역이름으로 해석 할 수도 있다. 즉 고구려에 예속 되어 있는 한 지역일 수도 있다. 혹은 마한이 백제에 멸망한 후 고구려에 투항하였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이후 마한의 기록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구려 속의 마한은, 정말 한 지역의 명칭이거나 혹은 과거 마한의 잔여 세력이었을까?
우선 마한이 백제에 멸망 한 후 고구려에 투항하였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것은 백제가 마한의 북변에서 자리잡은 후, 남쪽 방향으로 세력을 확장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세력이 고구려에 흘러 들어 갈 수도 있었지만, 수천명의 병사를 양성할 정도로 세력이 성장하기는 불가능 하다.
패망한 나라의 잔여 세력은 백년이 넘게 안정되게 수천명의 군사를 양성한다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이해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역시 동명성왕에 나오는 마한 병합기사를 회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동명성왕대에 고구려에 복속된 후, 하나의 부족 세력으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태조왕 시기까지는 부족연맹국가의 형태가 남아있었을 뿐더러, 아직 계로부 고씨의 왕위세습이 고착화 되기 이전의 상태였다.
따라서 마한, 예맥은 고구려의 5부와는 달리 독자적인 세력을 어느 정도 유지 할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면에서 고구려 태조가 마한와 예맥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한나라와 소모적인 전쟁을 벌인 것은 대단히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즉 패배한다 하여도 고구려로써는 나쁠 것이 없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군사력을 소모시킨 마한 마한과 예맥은, 더이상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상으로 고구려 속의 마한에 대해 미읍하나마 살펴 보았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동명성왕 때부터 태조왕때에 까지 존속한 마한이, 과연 준왕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마한과 일치하느냐는 것이다.
설령 마한이 고구려내의 군소 부족연맹체 였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준왕이 세운 마한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선 준왕이 세웠다는 마한이 북한지역에 있었다는 유물적 고찰이 반드시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물적 고찰이 뒷 받침 될 때 백제에 병합된 마한과 고구려에 병합된 마한이 따로 서술되어 있는 것은 삼국사기 저술상의 오류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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