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고조선의 후예들에게 관대했던 마한

吾心竹--오심죽-- 2009. 3. 29. 17:31

고조선의 후예들에게 관대했던 마한 | 잃어 버린 마한 2008.09.23 10:24 먼 발치 매운 눈

 

 

 

마한, 진한·변한에게 땅을 나눠 살게 해줘

 

백제가 서기 475년까지 왕성으로 사용했다는 하남위례성은 한강 이남이 아니라 대동강 남쪽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강이남에서 하남위례성에 관련된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못하고 있다. 
 
풍납토성, 몽촌토성도 시대적으로 보아 백제의 토성이라기 보다 마한의 성이고(서기 전 1세기)나중에는 백제가 물려 받았지만 왕성으로 사용한 결정적 증거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대동강지역은 마한의 입장에서는 변방이었기 때문에 초기백제가 쉽게 그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겠지만 마한이 쉽게 그 지역을 내준 것은 마한과 진한이 함께 고조선연방, 즉 같은 나라였고 자연히 진한의 후예국 중 하나인 백제에 많은 호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동부와 만주서부에서 변한, 진한인들이 건너올 때에도 마한은 흔쾌히 땅을 떼어 준다.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그 곳의 노인들이 세대를 넘어 전하기를 '옛날 진역(秦役 : 만리장성 만들기에 동원?)을 피해 망명(亡命)하여 자연스레 차츰 한국(韓國)에 왔다.' 한다. 마한(馬韓)은 그 동쪽 땅을 떼어 내 주었다."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韓(辰韓))>

 

위 기록에서 보듯 백제의 남하 이전인 서기 전 2백 년 경 진한(변한)인들이 한반도에 들어 올 때도 마한은 순순히 땅을 나눠 주었다.

 

사진의 세형동검은 마한 고유의 칼인데 (청천강 이남에서 주로 발견)당대 최고 수준의 검이다.

이런 정도의 검을 사용하던 마한인들이 진한(변한)땅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유독 그렇게 관대했다는 것은 마한 진한 변한이 원래 같은 나라라는 생각이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즉 마한 진한 변한이 고조선연방을 이루고 있었다고 보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