考古學

몽촌토성 축조연대 100년 이르게 설정

吾心竹--오심죽-- 2009. 3. 28. 19:37
연합뉴스

"몽촌토성 축조연대 100년 이르게 설정"

 

 

토기 6천점 분석, 4세기 중반 이후 축조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풍납토성 발굴 전만 해도 백제의 고대국가 성립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 징표로 거론되던 서울 송파구 몽촌토성은 축조연대가 100년 가량 이르게 설정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예상된다.

1980년대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및 올림픽공원 건설 당시 6차례에 걸쳐 발굴된 몽촌토성은 1997년 그 북쪽 1㎞ 지점에 위치한 풍납토성이 활발하게 발굴되기 전까지는 한성도읍기 백제왕성으로 간주되는 한편 축조시점은 3세기 중,후반으로, 이는 백제가 고대국가로 성장한 시점을 말해주는 유적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풍납토성 발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사 신종국(申種國)씨는 최근 성균관대대학원에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 '백제토기의 형성과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에서 몽촌토성에 대한 통설을 뒤집어 출토유물로 봐 이 토성 축조연대는 4세기 중반 이전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단언했다.

논문에서 신씨는 한성시대 백제 강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한강.임진강.남한강.북한강 유역 각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도 기원전 1세기-서기 5.6세기 토기만 무려 6천 점을 정리.분석한 결과 이같이 결론내렸다.

이 논문에서 분석대상이 된 고대 토기 주요 출토유적으로는 ▲몽촌토성 ▲미사리유적 ▲용인 수지유적 ▲풍납토성 ▲횡성 둔내.중금리.화전리 유적 ▲여주 연양일 유적 ▲춘천 중도유적 ▲포천 영송리 유적 ▲파주 주월리 유적 등이다.

이들 유적 출토 토기 6천 점을 신씨는 기능에 따른 기종과 제작기술, 무늬 등을 기준으로 15개 기종군(器種群), 47개 기종으로 분류한 다음, 이들 토기끼리의 상대적 출현연대 선후 관계와 절대연대를 분석했다.

그 결과 몽촌토성 출토 토기는 고구려계 흔적이 짙은 토기를 제외하고는 2천 여 점 거의가 4세기 중반 이후에야 출현하는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몽촌토성 축조연대가 3세기 중.후반이라는 거의 유일한 증거는 성벽에서 출토된 중국 서진(西晉)제 회유전문도기(회색유약을 바르고 동전 무늬를 넣은 도자기)였다.

이에 대해 신씨는 "토성 축조 연대의 상한연대를 추정하기 위한 가장 적당한 유물은 토성 판축토 내에서 출토된 유물이어야 함에도 이 유물(회유전문도기)은 토성 내 포함층에서 출토된 유물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점에서 1988년 토성 판축토 내부 조사 때 그 안에서 안정된 층위에서 출토된 유개고배(덮개 있는 굽다리접시),광구장경호(입이 넓고 목이 긴 항아리),직구단경호(주둥이가 고추선 목짧은 항아리) 및 이와 함께 출토된 중국 6조 시대 청자 조각을 토성 축조연대와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유물로 볼 때 몽촌토성은 "축조 상한연대를 4세기 중엽 이후로 비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 논문에서 신씨는 3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백제토기와 '원삼국토기'로 구분하는 한국고고학 시기 구분론을 해체하면서 토기를 통해 본 백제의 성립은 2세기 말엽이며, 이 때가 바로 풍납토성 축조시점이라고 덧붙였다.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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